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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상영>
- 미니시리즈 5부작 "전복" -


원작 : 마르쉘 뒤샹
제작 : 루이스 브뉘엘
감독 : 표찬용
프로듀서 : 배을선

주연 : 용변보는 여자들, 용변보는 남자들
조연 : 변기 1,2,3,4,5,6,7,8,9,10... 가슴조각 1,2,3,4,5,6,7,8,9,10..
특별출연 : 욕조, 세면대, 배설물 1,2,3,4,5..





1부 : 변기에 앉아서 환경을 염려하다

스페인 영화감독 루이스 브뉘엘의 <자유의 환영, 1974년(Le Fantome de la Liberte)>은 부르주아의 정상(正常)성과 위선을 고발하는 영화다. 영화에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경찰대학의 교수가 참석하는 '부르주아들의 만찬'에서는 부르주아들의 이중성을 가장 신랄하게 엿볼 수 있다.

그들은 화장실 변기가 의자로 놓여진 거실에서 용변을 본다. 그리고 스페인의 마드리드는 아침마다 음식냄새 때문에 고역을 앓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1인당 하루 배설물이 0.5킬로, 소변은 1.5킬로나 나온다며 세계인구 40억을 곱해 대충 하루에 60억 킬로의 배설물이 분비된다면서 20년 후의 생태학과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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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그리고 변기
ⓒ 배을선


잠시 후 그 교수는 화장실을 찾고, 그 안에서 은밀한 식사를 한다. 배변과 식사의 장소가 전복된 이 장면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혹시 당신이야말로 오늘 아침 화장실 변기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보지는 않았는지?

2부 : 변기에 앉아서 뒤샹을 사색하다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 다임에서는 누구나 <자유의 환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7월말까지 상설 전시되는 "21세기 뒤샹의 사색전 - 환영"은 조각가 표찬용(34)의 작품들. 카페로 운영되는 갤러리 전시장의 변기에 앉아 인간과 예술의 정상성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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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이곳이 영화<트래인스포팅>의 변기 안이 아닐까? 배설물 조심!
ⓒ 배을선
뒤샹은 참가비 6달러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앙데팡당전에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의 변기를 전시함으로써 미술계에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뒤샹은 꽤나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에 한 걸음 맞추어 예술과 인민을 화해시키려 노력했으며, 여성의 누드, 즉 성(性)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어떠한 비판에도 겁먹지 않는 희귀한 예술가로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미술을 만들어나간 거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3부 : 변기에 앉아서 '물' 한잔 마시다

갤러리 다임에 들어가자마자 당신을 반기는 것은 V자로 거꾸로 벌려진 여성의 섹시한 두 다리, 그 사이를 통과하면 당신은 영화 <트레인스포팅>처럼 이미 변기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혹시 위에서 배설물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고 조바심에 천장을 올려다보면 더욱 가관이다. 용변을 보는 남녀의 모습이 실제 크기로 천장에 달려있는 데다, 남녀의 성기가 극사실주의의 표현만큼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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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기에 앉아서 '물'을 버려야 하는 걸까? 마셔야 하는 걸까?
ⓒ 배을선


조명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각각 다른 모양의 수십 개의 유두(乳頭)및 가슴조각들이 오른쪽 장식장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놓치지 말자. 가슴조각의 모양은 서로 다르며 살결도, 피부톤도 모두 다르다.

왼쪽의 플라스틱 커튼을 들치면 화장실을 응용한 카페가 '물'이나 한 잔 버리고(?) 가라며 재미있는 유혹을 한다. 이 곳이 바로 '물' 한 잔 마시는 갤러리 다임 카페.

변기 위에 앉거나, 혹은 여성이 목욕을 하고 있는 욕조 위에서 커피를 마시는 색다른 재미. 조각가 표찬용과 함께 그 재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4부 : 변기에 앉아서 예술을 이야기하다

요즘 여기저기서 엽기가 유행이다. 표찬용의 변기 전시를 '엽기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정작 창작인은 '엽기'에 대한 생각은 엽전 한 닢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마르쉘 뒤샹의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화장실 문화가 급변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화장실이 우리 문화에 얼마나 친숙한가를 성이라는 코드와 함께 가볍게 다루어 보고자 했다. 마르쉘 뒤샹의 작품들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영감을 가져다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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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기에 앉아서 용변을 보고 있는 남자 다리
ⓒ 배을선


그가 만들어낸 변기들은 뒤샹의 '샘'처럼 일단 만들어진 '레디-메이드'변기들이다. 그는 이 변기들에 이것저것들을 갖다 붙이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조각가에서 설치미술가가 된 셈이다. 용변을 보고 있는 남녀를 만들 때는 실제 사람의 사진을 찍어 피부, 즉 닭살까지 포착해 표현했다.

선배 미술가들에게 표찬용은 너무 앞서가는 예술가이고, 후배 미술가들에게 표찬용은 이미 진부한 세계를 펼치는 예술가이다. 그러나 예술이 예술가들에게만 평가받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일반 대중들은 그의 세계를 어떻게 탐험하고 있을까?

그는 일상적으로 보아왔던 모든 것들이 예술적 선상에 서지 못하는 것들을 아쉬워했다. 일상용품에 새로운 조형적 감각과 요소를 입혀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길, 그것이 표찬용이 새롭게 시도하는 미술의 한 맥이다.

5부 : 변기에 앉아서 정상성 전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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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가 표찬용
ⓒ 배을선
앞서 말한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를 다시 예를 들어보자. 부르주아들이 주름잡고 있는 이 시대의 정상성은 무엇인가? 싫어도 싫은 내색 안 하기? 있어도 없는 척하기? 알아도 모르는 척하기, 혹은 그 반대.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정말 정당한 것인가? 혹시 너무 위선적인 것은 아닐까.

뒤샹과 표찬용의 이야기를 또 한번 꺼내어 보자. 예술가들이 주름잡고 있는 이 시대의 예술성은 무엇인가? 고급예술? 비싼 예술? 일상적이지 않은 예술? 예술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정말 정당한 것인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서 '복사'가 아닌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것,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것, 금기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신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전시 일정 안내
- 7월말 까지 상설 전시
- 인사동 수도약국 맞은 편 관훈빌딩 지하 갤러리 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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