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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인 내가 천주교 신자로서 최근에 가장 크게 보람과 긍지를 느낀 것은 교회의 '참회'를 경험한 일이었다.
가톨릭교회는 지난해 2000년 '대희년'을 지내면서 교회가 200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지니게 된 갖가지 역사적 과오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하고 참회하는 예식을 거행했다. 이 참회 예식을 거행하면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교회의 그 모든 역사적 과오들에 대해 진심으로 하느님과 세계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내가 지금 그 '과오'의 세목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충이라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십자군 원정,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에 대한 파문, 2차 대전중 나치에 대한 묵인 등등이다.
이런 세계교회의 역사적 과오들에 대한 참회에 따라 2백 수십 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교회도 2000년 대희년의 중요한 일의 하나로 역사적 과오들에 대한 참회를 했다. 한국교회의 역사적 과오들 중에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단순 살인 행위로 간주하고, 그에게 고백성사를 집행한 사제의 성무를 정지시킨 일과 일제 때 신사 참배를 묵인한 일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가톨릭교회의 이런 참회는 나에게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무오류성(無誤謬性)'이 신성불가침적인 교리의 하나로 깊이 내재화되어 있는 교회가 역사적 과오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과 참회를 하면서 용서를 빈다는 것은 신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가톨릭교회는 역사적 과오들에 대한 2000년 대희년의 참회를 바탕으로, 지난 5월 4일 가톨릭 교황으로서는 1291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스 땅을 밟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과거 가톨릭 신자들이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식 사죄를 했고, 6일에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시리아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 종교간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평화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나는 특히 교황이 그리스정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크리스토돌로스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13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가톨릭 신자들이 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약탈한 사건에 대해 용서를 청하며 그리스도인들의 분열에 대해서도 "제 탓이오"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바로 2000년 대희년의 그런 스스로의 참회가 있었기에 2001년의 그런 사죄와 화해를 위한 교황의 순방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평화를 위한 역사적인 진보의 발걸음을 옮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교회의 놀라운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참회'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앙 생활에서 참회는 참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기도'의 4가지 요소는 '찬미·참회·감사·청원'인데, 이 4가지 요소가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함은 물론이다.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 일각의 '기복 신앙'은 신자 생활을 하고 기도를 함에 있어서 기도의 4가지 요소 중의 하나인 '청원' 쪽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기도의 4가지 요소 중에서 굳이 하나를 더욱 중요한 것으로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참회'를 꼽고 싶다. 일단 참회를 하고 나 자신을 정화시켜야 하느님께 대한 찬미도 떳떳해지고 감사도 진실성을 지닐 수 있고, 아울러 청원도 효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회는 우선 깊은 성찰을 전제로 한다. 자신의 과오들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참회는 가능해진다. 그리고 참회는 '갱신'의 의미를 포괄한다.
참으로 겸허하고 정직한 성찰에 의해 이루어지는 절절한 참회는, 그것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는 더없는 기쁨이 되기도 한다. 고귀한 '성숙'의 느낌을 안겨 주기도 하고, 새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찰과 참회와 갱신의 의지―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참으로 귀중한 덕목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 삶의 고귀한 가치다.
그런데 사람의 성찰과 참회와 갱신의 의지는, 그것 자체로서 어떤 역동성과 생명력을 지니는 매우 오묘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일회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순환적으로 지속되는 것이라는 뜻만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참으로 진실한 성찰과 참회와 갱신의 의지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자신의 내면은 물론이려니와 외부로도 자신도 측량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을 발산하게 된다. 그것을 자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 신비로운 기운은 인간 사회 공동체에 양질의 에너지를 공급하고 또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겸허한 성찰과 참회와 갱신의 의지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이 알게 모르게 인간 사회 공동체에 매우 순기능적인 양질의 에너지로 작용한다는 것은, 평범하고도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우리가 깊이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사항이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우리의 사고를 녹슬지 않게 하는, 사고 능력을 계속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성찰과 참회와 갱신이라는 의미로운 언어들을 거의 일상적으로 접하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솔직히 말해 이런 화두의 거울로 우리의 역사와 우리 시대, 우리 사회를 비추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안타까움과 비애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역사에는 도대체 반성과 참회라는 게 없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참회의 역사를 만들지 못하며 살아왔다. 참회의 역사를 만들지 못했다는 말은 곧 민족 정기를 세우지 못했다는 말과도 일맥 상통한다.
우리는 해방 후에 참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대 '청산'의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민족 정기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표현으로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친일파들을 색출하여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킨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이 '반민특위'의 어이없는 실패를 뼈아프게 경험해야 했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협잡 세력―친일에서 반공으로, 또 재빠르게 친미로 변신한 반민족 무리들이 갖가지 공작과 테러로 '반민특위'의 활동을 무력화시키고 마침내는 '해산'을 결과해 낸 탓이었다.
그후 우리는 친일 세력들의 환호작약과 득세를 보면서 민족 정기의 말살을 뼈아프게 감내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친일 세력으로부터 유래되고 이어지는 긴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민주화를 갈망하며 오랜 세월을 피흘리며 살아야만 했다.
36년 동안이나 완전히 주권을 잃고 일제로부터 지배를 당하고 풀려났으면서도 친일 세력에 대한 청산의 역사를 만들지 못한 우리는 그후로도, 정치적 격변기를 여러 번 거치면서도 한 번도 '참회'의 장을 만들지 못했다.
비록 김영삼 씨의 이른바 문민정권 시절에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를 단죄하는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이 있긴 했으나, 그것은 김영삼씨가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감행한 비장의 카드 뽑기였을 뿐 전혀 철학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일이었다. 단죄를 당하면서도 그들은 얼굴을 들고 살았다. 그들의 입에서 참회라는 말은커녕 반성이라는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드리고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하다느니, 하는 말들은 그저 정치적 수사일 뿐이었다.
전두환씨가 재판을 받는 법정에까지 몰려와서 시끄럽게 응원을 해대는 불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감방 안에서 매일같이 불경을 읽는다고 하면서도 끝내 반성이라는 말 한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 전두환씨를 보면서 '불교는 과연 참회가 필요 없는 종교인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의문은 오늘도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김영삼씨의 오늘의 행태를 보면 우리 민족이, 특히 정치인들이 얼마나 반성과 참회를 할 줄 모르는가를 절로 실감하게 되고, 따라서 우울한 절망감도 갖게 된다.
우리는 참회는 물론이려니와 '성찰'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참으로 익숙치 못하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판단 능력은 겸허한 성찰로부터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이성의 한가지 충실한 형태다. 그러나 거기에 감정이, 더구나 집단 감정이 과잉적으로 끼어들면 이성은 곧 마비되고 성찰 능력은 덧없이 유실되고 만다.
이성의 마비 현상을 우리는 수없이 겪으며 살고 있다.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것들이 색깔론이고 지역감정이다. 색깔론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 거의 분명하지만, 지역감정은 그 독한 생명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참으로 암울하기만 하다. 우리 민족의 일체성과 화합을 파괴하는 악성 종양과도 같은 그것은 너무도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다.
1992년 제14대 대선 당시의 부산 '초원복국집사건'이 그것의 한 예를 여실히 보여 준다. 당시 민자당 후보였던 김영삼씨를 돕기 위한 부산의 주요 기관장 회의가 '초원복국집'이라는 데서 있었다. 그 비밀 모임을 포착한 정주영씨의 국민당 사람들이 몰래 잠입해 들어가서 도청기를 설치하고 그들의 말을 녹음하는데 성공했다.
부산 주요 기관장들의 그런 회합이며 그들의 입에서 질펀하게 나온 말들은 참으로 경천 동지할 내용들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건의 노출로 말미암아 처음에는 경상도 지역에서 김영삼 씨가 표를 많이 잃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그 일로 말미암아 표가 줄 것을 염려한 경상도 사람들이 방어적으로 더욱 똘똘 뭉치는 바람에 김영삼씨가 오히려 더욱 큰 덕을 보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지역 감정이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이렇게 천박한 지역감정 따위에 여지없이 휩쓸리고 녹아버리는 국민들의 이성을 누가 붙잡아주고 일으켜 세워줘야 하는가. 대중 심리에 약한 국민들 앞에 우뚝 서서 그들의 판단 능력과 성찰 능력을 일신시켜 주고 키워줘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의 몫이 아닌가.
정치인들이야 어차피 현실 조건을 좇아 사는 무리들이니 그들에게서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어느 정도 이성을 챙길 줄 아는 국민들도 막상 결정적 국면에서는 대중 정서에 휩쓸려버리고 마니, "모든 것을 국민 스스로 판단한다"고 하는 말은, 아직은 충분히 신용할 만한 말이 못된다.
그러니 온갖 모순과 불합리의 복판에 서서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별하고 설파하는 지식인의 모범적이고도 당당한 모습은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지성은 허약하고, 가치관도 뒤죽박죽 지리멸렬하다. 반민족 행위에 대한 장엄한 청산의 역사를 만들지 못하고, 현대사의 굽이굽이에서도 한 번도 국민적 반성이나 참회의 장을 만들어보지 못한 우리네 삶의 풍토에서는 진정한 가치관이 바로 서기가 참으로 어렵다. 오히려 민족 정기를 우습게 여기는 풍토와 혼탁한 상황이 계속될 뿐이다.
그리하여 친일과 친독재로 성장해 온 <조선일보> 같은 족벌 신문이 민족지로 둔갑하고 정론지를 가장하며 지식인 사회까지 쥐락펴락하면서 엄청난 언론 권력을 형성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가짜 지식인들의 자기합리화와 갖가지 자기 모순을 분식하기 위한 궤변들이 속출하고 창궐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뿐인가, 바로 그런 풍토 속에서 친일파 시인 미당과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본 관동군 장교 출신 박정희를 부정하면 '악령'이라는 말이 대학교수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친일파 시인을 기리기 위한 문학상이 또 하나의 족벌 신문인 <중앙일보>에서 제정되고, 자신이 일제시대를 비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대한민국의 최고 작가라는 사람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것이다.
프랑스의 나치 점령 시기 5년과 한국의 일제 지배 36년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며, 자신이 일제 시대에 태어났으면 자신도 필경 친일을 했으리라는 뜻의 이문열의 그런 발언은 참으로 놀랍고도 흥미롭다. (이 얘기를 가지고 차후 재미있는 글을 하나 써볼 생각이다.)
대학교수와 작가라는 지식인들의 사고 방식이 그러하니 거기에 감염되어 친일을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더 나아가 정당화하는 논법들도 마구 생겨난다. 스스로 자신을 일러 '보수 꼴통'이라고 하는 '정보동' 사이트의 이소득이라는 이는 일제 시대에 국민의 80퍼센트가 친일을 했노라고 기염을 토한다. 일반 백성의 순응적인 삶을 싸잡아 친일이라고 하는 것도 억지이고 민족에 대한 모독이지만,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것으로 친일파들의 친일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문인과 지식인의 친일은 더더욱 민족을 배반하는 행위인데, 시대 여건상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친일 정당화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무려 36년 동안이나 일제의 지배를 받았으면서도 어느 한구석에서도 참회의 장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도 슬프다. 가령 육당이나 춘원이나 미당 등의 문인을 포함하여 민족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 중 누구 하나라도 해방된 민족 앞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든지, 눈물로 참회의 모습을 보였더라면, 오늘날 우리네 삶의 가치관이 이렇게 지리멸렬 혼탁하게 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불행한 시대적 여건 때문에 친일 세력을 끝내 단죄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들이 그것을 다행으로만 여기지 말고, 문인의 진정한 자존심과 지식인의 참 양심으로 스스로 참회를 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솔직히 자신의 민족 배반 행위를 민족 앞에 고백하고 눈물로 용서를 빈 사람이 왜 우리 나라에는 한 사람도 없는가?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 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게 되자 국민 앞에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정공 민영환 선생 같은 이가 해방 후에도 있었다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민족 앞에 자신의 친일을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그것이 개인적인 사건일지라도 우리는 작게나마 의미 있는 참회의 역사를 지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일제 시대를 살아왔던 신문들이 족벌 소유 구조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 일제 시대에 자행했던 갖가지 친일 사항들을 민족 앞에 고백하고, 참회에 의한 갱신의 의지를 만천하에 공표했더라면, 우리는 더욱 탐실한 참회의 역사를 지닐 수가 있었을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민족의 정기는 그런대로 힘차게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친일 족벌 신문들은 해방된 민족 앞에서 참회와 갱신의 모습을 보여 주기는커녕 민족지요 정론지라는 거짓 미명을 앞세우고 재빨리 반공으로, 친미 사대주의로, 친독재로 변신의 묘수를 다 부리며 국민들의 가치관을 진흙탕 가시덤불 속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나는 거대 신문들의 영향력이 독자들의 사고 방식이나 가치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도 막강하다고 보고 있다. 그들은 일찍부터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신했고, 신문의 거대 권력화를 지향했다. 그리하여 오만 방자해진 그들은 자신들의 추악한 과거를 철저히 분장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인 '어두움의 기운'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그리하여 민족의 화합과 일치를 추구해야 할 때도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민족 분열을 부추겼고, 오랜 세월 국민을 옭아맸던 반공 이데올로기―색깔론을 지금도 걸핏하면 만병통치약인 양 사용하고 있다. 용공 조작이 곧 만병통치약이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보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올바른 통일 논의로 국민의 통일 역량을 키워가야 할 이 시대에도 색깔론으로 민족 통일에의 꿈을 훼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족벌 신문들에게도 반성과 참회의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자신들의 참회와 갱신이 민족 정기를 확립하는데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확실한 역사의식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현대사의 한 굽이에서 적절한 기회를 틈타 참회의 장을 만들 수도 있었다고 보는 것은 나만의 순진하고 독단적인 발상일까?
그러나 그들은 소유 구조의 문제와 오랜 세월의 권언유착에 의한 권력의 맛에 젖어 참회와 갱신의 기회를 찾지도 않았고, 그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해 왔다. 그리하여 언론 권력의 폐해는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깊이 쌓여만 갔다. 언론 권력의 폐해를 느끼고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이 결국은 오늘의 '언론 개혁'이라는 대명제를 촉발시키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에도 여전히 반성할 줄을 모른다. 참회의 역사를 만들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실은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반성할 줄을 모르니, 그들에게는 오로지 뻔뻔스러움이 최대의 무기다.
자신들의 막강한 언론 권력의 남용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 수많은 피해자와 적(敵)을 만들어 내었고, 편가르기를 자행해 온 것이 자신들임에도 오늘 맹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언론 개혁 논의에서는 국민 사이의 적대감 고조 현상을 한껏 개탄한다. 자신들이 그것의 한 축으로 맹렬히 온갖 기능을 다 발휘하면서도, 심각한 편가르기 현상의 책임을 언론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전가하면서 그것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온갖 술수룰 다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들에게서 반성과 참회를 기대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그들을 껴안고 국민이 다 함께 참회의 역사를 만들며 나아가는 길밖에는 없다. 앞으로 그들의 저항은 더욱 극렬해질 것이다. 그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으로 언론의 자유라면, 그리고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보수라면, 언론 개혁이라는 이름의 참회의 장을 마련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언론 자유를 우리 사회에 확립하기 위해서 지금 언론 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언론 자유 수호'라는 것은 허구이고 미명일 뿐이다. 그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의 권력 체제이고 수구적 퇴행적 가치관이며 기득권일 뿐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반성과 참회의 장을 마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나는 차후에 진정한 보수의 본질과 진보의 가치를 비교 관점으로 파악하는 글을 한번 써볼 생각이다.)
우리의 삶에 반성과 참회는 참으로 필요하다. 그것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집단적·사회적 참회는 사회를 성숙시키는데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경험적 가치가 된다.
참회와 갱신 의지의 기반 위에서 우리는 새로운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딜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역사적 과오들에 대해 참회하고 용서를 빈 가톨릭교회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참회와 갱신 의지의 바탕 위에서 종교간의 화해를 추구하며 세계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더욱 확실하고 착실하게 내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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