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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정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파타야에서 전직 수상들을 초청해 관료 개혁 세미나를 가지려는 계획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전직 수상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한다는 데 왜 비판 여론이 이는 것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수많은 태국 국민들을 학살한 독재자들을 모셔 놓고 무슨 관료 개혁 세미나'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번에 초대되는 전직 수상은 모두 9명인데 이 중에서 타놈 끼띠까촌, 수친다 까파윤 두 전직 수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타놈 전 수상은 군 장성 출신으로서 지난 1964년부터 1973년까지 권좌에 머물렀던 인물이다. 그는 1973년 6월 헌정복귀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저항에 직면했는데 같은 해 8월 14일 방콕에 있는 타마삿 대학에서 학생 시위대를 잔인하게 진압했다. 지난 5월 타마삿 대학에서 만난 타마삿 대학 학생 아케 씨는 아직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친다 전 수상도 역시 군 장성 출신으로 태국 현대사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쿠데타의 주인공이다. 그는 1991년 무혈 쿠데타에 성공해 정권을 잡은 후 1992년 자기 스스로 자기를 수상에 임명한 인물이다. 이는 물론 국민들의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국민들의 저항을 수친다 전 수상은 군대를 동원해 진압했다. 이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실종 상태다.

이 두 전직 수상 외에 다른 4명의 전직 수상 또한 군사정권의 지도자였거나 군인 출신이다. 이번 세미나는 군부 쿠데타로 점철된 태국 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방콕에서 발행되는 영문 일간지 방콕 포스트는 3일자 사설에서 탁신 수상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보다는 정치적으로 점수를 얻는 것만 고려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 사설은 특히 현 시점이 탁신 수상의 재산 은닉 혐의에 대한 헌법 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다음 주로 예상되고 있는 시점임을 꼬집었다.

방콕 포스트는 또한 아직까지 단 한번도 참회하거나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한 적이 없는 전직 수상들의 죄상을 하나 하나 열거하면서 "탁신 수상이 아무리 현재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민주항쟁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수상이 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사설을 마무리지었다. 상당히 강력한 톤으로 경고한 것이다.

물론 탁신 수상 측에서는 '협력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상의 이야기에서 우리들은 역시 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보게 된다.

군사 독재자 아니 학살자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전직 수상들, 이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면죄부를 주면서 국민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관예우'를 해주는 현직 수상, 너무도 우리와 닮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헌정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해주자고 건의한 것이었고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도 해외를 나갔다 올 때마다 그들을 청와대로 모셔 자문을 구하고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많은 국민들에게 전직 대통령이기 이전에, 1980년 무고한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그 후 대법원에서 반란 및 내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가 아니던가. 많은 국민들이 김 대통령의 정치행위를 '이해'는 하지만 '납득'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 준 한 월간지에서 3당 정책연합을 성사시킨 뒤 세 명의 정치인이 함께 찍은 사진을 봤다. 자민련 총재 권한대행 김종호, 민주당 대표 김중권, 민국당 대표 김윤환. 이들 세 명 모두가 전두환과 노태우 밑에서 한 자리하던 사람들임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태국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보다 우월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태국 사회는 현직 수상이 학살자들을 전직 수상으로 예우할 때, 정치적 면죄부를 줄 때 '그건 아니오'라고 말하는 언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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