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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제 비석의 이름만으로 남고 지금은 어디십니까.
가을맞이 햇살이 설움일 리 없습니다.
긴 장마 속에 장대비가 오고 가는 틈 사이에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어찌 그리도 하늘은 맑았으며 어찌 그리도 거치는 일이 없이 흘러왔는지요.

49제를 마치고 와서 어머니의 무덤 앞에 이렇게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절을 올립니다. 한 달 조금 지난 그 때 2년은 더 살겠다하시던 어머니는 지금 우리들 앞의 무덤에서 2년이 아니라 영생의 거처를 삼으시다니요.

잠시 아프면 나을 병이려니 했건만 당신은 기약조차 없는 먼길을 가듯 병원에 가신 것을 우리 자식들은 효도로 알았고, 당신은 자식들 잘든 덕으로 아셨습니다.

긴 병을 무서워하며 고통 없이 죽게 해달라며 천지신명께 새벽 기도 올리신 보답이 그리했답니까.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와 함께 한 무덤에 계십니다.
육신을 불에 사르고, 뼈 몇 개를 수습하여 모셨으니 생전에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한 무덤에 있지 않겠다 하시던 말씀을 늘 해오셨지요.
우리를 나아주신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여자를 대하듯 사랑을 주시지 않았음을 서러워해서였지요.

그러나 일생 반 백년을 함께 늙어오셨으니 미운 정이 더 모진 정이랍니다. 요 근래와서는 "그래, 네 아버지와 함께 너희들이 묻는다면 죽은 내가 어찌하겠니" 하시던 말씀대로 어머니는 아버지와 한 이불을 덮으시듯 같은 무덤 뚜껑을 가슴에 덮고 계십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이름을 세상 어느 종이에 쓸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여기서만 이름을 남기셨습니다.

어머니의 이름, 글월 문(文) 빛날 채(採) 구슬 옥(玉).

어머니의 어머니가 다정하게 부르셨고, 젊은 날은 젊은 연인에게서 그립게 다가오던 이름을 우리는 이제 다시 쓸 일이 없습니다. 쓰는 대신에 돌에 새겨진 어머니의 이름을 당신을 만지듯 만집니다.

9월의 햇살이 당신을 뜨겁게 달구어놓던 병상의 체온 같아 당신 생각에 목 메이게 합니다.

어머니 어디 계십니까.
어머니 댁 짐 정리를 하고 떠날 때 자식들 가슴에 들어왔던 어머니.
49재를 세곡동 법수선사의 대법당서에 칠일마다 어머니를 모신 재를 지냈습니다.

"내가 죽으면 49재 한 번으로 해라" 하시는 말씀을 염두에 두었으면서도 당신이 살아서 쓰고자 했던 살림살이 피땀어린 돈을 어머니의 가시는 길을 닦는 일이기에 7번의 재를 자식들이 간절하게 치렀기에 어머니는 평안한 길을 진정 가셨나요.


인연따라 모인것은
인연따라 흩어지니
태어남도 인연이오
돌아감도 인연인걸
그무엇을 애착하고
그무엇을 슬퍼하랴

스님의 독경이 매정하여 미웠고

태어났다 죽는 것은
중생계의 흐름이라.
이곳에서 가시며는
저세상에 태어나니
오는듯이 가시옵고
가시는듯이 오신다면
이육신의 마지막을
걱정할것 없잖은가
일가친척 많이 있고
부귀영화 높아어도
죽는 길엔 누구하나
도움되지 못한다네.

하고 스님의 독경은 이어가니 절로 그 말씀이 옳았습니다.

이세상의 삶과 죽음
물과얼음 같으오니
육친으로 맺은정을
가벼웁게 거두시고
청정해진 업식으로
극락왕생 하옵소서.

하고 스님이 독경하듯

어머니, 살아서는 천당도 극락도 욕심 아니 내시어 어린 소녀시절에 이웃 할아버지가 섬기시고 시집와서는 당신의 남편에게서 정화수 떠놓고 비는 천지신명만 함께 찾으셨으나 죽어서도 정한 곳을 정하셨다면 그 곳이 어디 입니까.

네 병을 내가 고쳐주마하시며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저는 지금도 가슴앓이 병을 가슴속에 어머니와 함께 담고 있습니다. 때 없이 토하는 잔기침은 당신이 가신 뒤로 더 깊어졌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당신의 이름자를 다시 손끝으로 당신의 육신을 만지듯 만지면 내 가슴속의 어머니는 당신의 이름 속으로 스미듯 가십니다.

이름만이 남은 어머니. 돌아서 가는 자식들 뒤로 어른대는 모습은 햇살 때문의 눈부심 때문인가요. 자식들을 배웅하는 두 분,' 아버님과 어머님 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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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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