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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선산 벌초가는 길입니다.
그새 또 한 해가 지났습니다.
작년에는 낫 한 자루 들고 오르던 산길을 오늘은 예초기를 지고 오릅니다. 일흔 넘은 문중 할머니 세 분이 낫을 들고 힘겹게 쫓아옵니다.
해마다 음력 7월20일은 문중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벌초를 하는 날입니다. 문중 사람이라 해봐야 젊은 사람은 내가 유일하고 모두가 노인분들뿐입니다. 그나마 남자들은 대부분 먼저 세상을 뜨고 거의가 할머니들이지요.
고향에 돌아온 뒤로 해마다 하는 벌초지만 해가 갈수록 내키지 않습니다. 나 혼자 빠지면 그뿐이겠으나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가 빠지더라도 어차피 연로한 노인네들이 하실텐데, 그 또한 못할 짓이지요. 그분들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함께 나섰습니다.
모두 여섯 분상의 봉분이 있는 부황리 선산. 봉분 둘레에 에프킬러를 뿌리고 예초기의 시동을 겁니다. 약 냄새를 맡았는지 봉분에서 벌떼가 몰려 나옵니다.
옥바시, 작은 벌이지만 이놈들은 한 번 쏘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지독한 놈들입니다. 약을 뿌려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봉분 둘레로 약을 몇 번 더 뿌린 다음 잠시 뒤로 물러섭니다. 옥바시떼 웅웅 거리는 바로 옆에서 이번에는 말벌들이 떼로 몰려나옵니다. 한 봉분에 벌집이 두 군데나 있군요. 저 말벌에 쏘이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저 징한 말벌, 저 참에 한번은 싯노오란 옷 입고 나갔더니 조선 팔도 벌이란 벌은 다 달려들어 혼구멍이 나부렀다께."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할머니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벌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갔는지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올해도 벌초하다 벌에 쏘여 죽은 사람이 여럿 있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다들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도 잠시, 그 봉분은 놔두고 다른 쪽부터 조심스레 벌초를 해가기로 합니다.
예초기 톱날이 풀밭을 휘저어 나가자 여치, 메뚜기, 사마귀, 온갖 풀벌레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 다들 정신없이 도망치고 더러는 허둥대다 톱날에 허리가 잘리고 아예 가루가 되버리기도 합니다. 잔디와 들꽃들이 잘리고, 고비무더기가 베어지고, 소나무, 잣밤나무, 사철나무, 후박나무, 쥐똥나무 어린 묘목들이 사정없이 잘려 나갑니다.
한가롭던 숲속이 풀들, 나무들, 벌레들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이 됩니다. 평화롭던 풀밭에 풀과 나무와 벌레들이 흘린 녹색의 핏물이 넘쳐흐릅니다. 죽은 사람 집 단장하기 위해 산 생명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갑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데 사람은 죽어서도 유택에 들어 앉아 산 생명들의 피로 연명하는가. 벌초를 하는 내내 마음은 돌덩이처럼 무겁습니다. 할머니들도 풀을 베는 것이 힘에 부치는지 자주 쉽니다.
일전에 어느 젊은 엄마가 불치병으로 죽어가면서 화장하여 집 앞 나무에 뿌려달란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아직은 어린 나무로 서 있지만 그 엄마는 머지않아 큰 나무로 자라나 아이들에게 푸르름을 주고 열매를 주고,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또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주겠지요.
세상에는 그렇게 온전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죽음도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지 않고 생명을 키우고 살찌우는 죽음도 있습니다.
이제 올해 문중 선산 벌초는 끝나고 직계 조상님들 묘 몇 분상의 벌초가 남았습니다. 추석은 다가오는데, 예년처럼 벌초를 해야 할 것인지 나는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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