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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판은 아동심리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전문가를 찾을 때까지 2차재판을 연기합니다."
지난 11월 1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무안 유치원생 성추행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은 출석한 사건 관련자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가해 용의자에 대한 구속이 있기까지 2차례의 영장 기각 끝에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됐던 이 사건이 이제 재판과정에서 아동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만으로 나이가 3년 5개월인 '피해자' 유치원생의 진술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해 아동심리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겠다는 것이다.
전남 무안에서 발생한, 한 시골마을의 유치원생 '성추행' 사건이 네티즌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부터다.
성추행 피해자의 엄마인 하모(27) 씨를 포함해 친척들이 작성한 글이 지난 9월 사건관할 경찰서인 전남 무안경찰서 홈페이지 게시판을 비롯해 국무총리실, 검찰청 그리고 언론사 할 것 없이 국내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을 대부분 점령하다시피 급속도로 전파되면서부터다.
용의자로 지목된 ㅊ유치원 사무장 안모(36. 구속 중) 씨가 처음에는 불구속되자 하모 씨 등 가족과 일부 친척들은 '범인이 분명한데도 검찰이 용의자 안 씨측 변호인과 친분이 있어서 불구속 수사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용의자 안씨가 구속되고, 사건발생 3개월이 다 된 지금도 인터넷에 계속 퍼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검찰과 경찰은 네티즌들의 표적이 됐고, 용의자 안 씨는 인륜을 저버린 파렴치범이 됐다.
피해자가족, 인터넷 통해 여론화
용의자 안씨는 지난 9월 말 결국 구속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지금도 성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측의 주장만 인터넷에 전파되면서, 용의자로 지목된 안 씨에게는 '형 확정이전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일반적인 법률상식도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사법부의 1심 선고도 있기 전에 여론재판에서는 이미 그에게 '용서받지 못할 파렴치범'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과연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 경찰 등 수사기관이 작성한 5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사건기록과 주변 인물 인터뷰 등을 통해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해 추적해 본다.
유치원 등원 20여 일만에 발생
피해자 송모(4) 양의 가족이 광주광역시 인근인 전남 화순에서 무안으로 이사 온 것은 지난 8월 16일.
그로부터 1주일 뒤 인 8월 21일부터 ㅊ유치원을 다니게 된다. 송양이 유치원을 나간 지 20여 일이 되는 지난 9월 10일 밤 송 양의 가족은 무안경찰에 딸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를 하게 된다. 송 양의 엄마인 하모 씨는 경찰에서 유치원 사무장인 안 씨가 손으로 성기를 만지는 등 수 차례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하 씨는 경찰진술에서 "딸이 처음부터 스타렉스 아저씨(안 씨 지칭)가 그랬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고소한 다음날 송 양에 대해 병원에서는 다발성 찰과상과 요도염 진단을 내리게 된다. 이튿날 진단을 했던 무안병원 산부인과의사 문모 씨는 경찰진술에서 "성기나 손가락 또는 손으로 그 부위를 만지거나 비볐을 때 생긴 상처이며 출혈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유치원에 대한 현장조사와 함께 안 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안 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검찰, 영장기각 보완수사 지시
경찰은 나름대로 증거를 토대로 안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영장을 신청하면서 '(유치원 남자 종사자 중) 안 씨만 원생들과 일과를 같이 하고 있어 범행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용의자일 뿐 아니라 피해자가 계속 지목하고 있는 점 등 모든 정황을 종합할 때 안 씨가 송 양을 성폭행한 범인이 틀림없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여러 정황 증거의 불충분 등을 근거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지난 9월 12일 검찰은 영장을 기각하면서 ▲송 양이 추행당한 날이 진단서에는 9월 10일로 돼 있는 경위확인 ▲피해자가 말한 현장 목격자 확보 ▲범행 당시 상황 자세히 조사할 것을 경찰에 지시했다.
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을 접한 송 양 가족은 인터넷에 억울하다는 글을 올렸고 사건 자체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송 양의 어머니 하 씨는 인터넷을 통해 경찰과 검찰이 범인 봐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들의 귀띔으로 사무장이 능력 있고 똑똑한 변호사를 샀는데, 이 변호사가 영장청구를 기각한 검사랑 친분이 있는 사이이고 그런 연유로 두 번이나 영장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찰의 보강 수사는 계속됐다. 특히 송 양이 성추행 당할 당시 유리창 밖에서 보고 놀렸다는 이른바 '언니, 오빠'들에 대해 유치원생 90명과 교사 등 종사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으나 경찰은 목격자 확보에 실패했다.
결국 목격자 확보 못해
9월 20일 검찰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추행 행위가 2회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경찰에 다시 보완수사를 지시한다. 그 후 9월 24일쯤 송 양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안 씨가 유력한 용의자임에도 수사기관이 불구속해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목격자가 없고 범행장소에 대한 피해자 측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는 등 의문점이 있다고 보고 안씨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지시했고, 안 씨는 9월 25일 광주에 있는 전남지방경찰청까지 가서 조사를 받게 된다. 조사 결과 거짓말 탐지기는 '안 씨가 거짓말하고 있다'하고 판명하게 된다.
이에 앞서 사건초기인 지난 9월 11일 밤 송 양 어머니 하 씨와 경찰서에서 만난 안 씨는 "송 양을 추행하지 않았다. 한 번 선처해 달라. 풀어주더라도 도망가지 않겠다. 어린이집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7분간 계속된 대화 내용은 송 양의 어머니인 하 씨가 전부 녹음해, 나중에 증거자료로 경찰에 제출하게 된다.
안 씨는 당시 대화내용 중 '선처해 달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지난 11월 2일 열린 1차 공판에서 "사실상 원장역할을 맡고 있어 진실규명 차원에서 유치원 관리자로서 책임지겠다는 표현이었는데 자백한 것으로 공표했다"고 진술했다. 안 씨의 경우 사무장이지만 지난 8월부터 원장이 몸이 불편해 출근하지 못하자 사실상 원장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안 씨는 거짓말 탐지기의 '거짓반응'으로 인해 9월 28일 영장이 집행돼 무안교도소에 구속돼 있는 상태다.
안 씨는 경찰진술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 전날 밤에는 그 동안 계속 된 경찰수사로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서 우황청심환 등 약을 먹고 3-4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일 열린 1차 공판에서 안 씨는 송 양의 성추행 사실에 대해 완강하게 부인했다.
이날 변호인 반대심문에서 안 씨는 "성추행 장소로 지목된 사무장실은 원생들이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없다"고 진술했다.
안씨는 또한 "송 양 엄마인 하 씨가 처음 경찰 진술에서 차 안에서 성추행했다고 진술한 뒤 다시 사무장실로 번복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특히 안 씨와 변호인측은 이날 공판에서 "9월 11일 있었던 유치원 현장조사에서도 송 양이 성추행 당한 장소를 처음에는 다른 여교사 책상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다가 다시 사무실 소파로 바꾸는 등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추행 장소의 의문점
그렇다면 이번 사건의 의문점은 무엇인가.
첫째는 범행장소가 개방되다시피 한 사무장실이다. 5평 남짓 되는 사무장실에는 문이 3개나 있다. 밖으로 출입하는 문과 주방과 교실로 통하는 문 등이다. 이곳에는 소파와 책상 2개 그리고 원생들이 사용하는 교재가 있다. 사실 사무장실이라기보다는 교무실인 셈이며 밖에서도 안을 쉽게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특히 이곳은 교재나 교구 그리고 전화 팩스, 복사기 등이 있어서 4명의 교사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장소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사들에 따르면 아침 9시부터 원생들이 귀가하는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한 교사당 평균 10여 차례 이곳을 출입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바로 옆에 있는 주방담당자를 제외하고도 6시간 동안 사무장실에는 40여 차례 교사들이 출입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장소에서 소파에 눕히고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모든 정황면에서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만약 범행장소가 옆에 있는 밀폐된 화장실이라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지난 1차 공판에서 안 씨는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초순이어서 주방쪽 문과 바깥쪽 문을 열어 놓은 상태라고 진술했다. 더구나 사무장실은 원생들이 혼자 들어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종종 반담당 교사와 함께 출입한다고 유치원측은 밝히고 있다.
차 안에서 사무장실로 진술 번복
두 번째 의문은 성 추행의 장소와 시기가 문제다.
처음 피해자측 엄마 하 씨는 "차 안에서 만졌다"고 진술했다가 장소를 사무장실로 변경했다. 뿐만 아니라 창 밖에서 지켜본 목격자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경찰이 원생들을 상대로 조사했지만 목격자를 찾아내지는 못한 상태다.
3년5개월 된 어린이 증언 신빙성 주목
세 번째는 4살 된 어린아이가 한 증언의 신빙성이다.
유치원 사무장인 안 씨는 원생들의 등하원을 위해 차량(스타렉스)을 운전하고 있다. 송 양은 8월 21일 처음 이 유치원에 등록할 때부터 9월 10일까지 아침에 등원할 때는 안 씨가 운전하는 차량에 탑승했다.
경찰은 안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송 양 등 피해자측이 '스타렉스 아저씨'로 일관되게 증언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송 양(98년 4월생)은 아직 3년 5개월 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임에도 차량명칭까지 기억하면서 '스타렉스 아저씨'를 지목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 동안 원생들도 모두 '사무장님'으로 호칭하지 스타렉스 아저씨로 부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 아동심리학자 물색
이처럼 인터넷상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무안 유치원생 성추행 사건은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규명해야 할 의문점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2차 공판에서는 아동심리학 전문가를 배석시킨 가운데 송 양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자신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파렴치범으로 세상에 알려진 안 씨는 목포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교회와 사회단체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98년 11월 이 유치원이 개원하면서부터 줄곧 근무해 왔고 자신의 4살 된 아들도 송 양과 같은 반에 다니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이번 안 씨의 사건을 접하고 단호하게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구들이나 그를 겪어본 주위 사람들은 그를 "누구와 싸우거나 얼굴을 붉힌 적도 없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90여 명의 유치원생들이 다니고 있는 ㅊ유치원의 학부모들은 사건발생 직후 대책회의를 갖고 자신의 자녀들도 비슷한 피해를 당했는지를 조사했지만 유사사례는 없었다. 유치원생 중에 사건 논란 이후 ㅊ유치원을 그만둔 경우도 거의 없다.
유치원 사무국장 안씨, 그가 인륜을 저버린 성 추행범인지, 마녀사냥의 희생자인지는 아동심리학 전문가를 배석시킨 재판에 의해 가려질 전망이다. 2차 재판은 11월 30일경에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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