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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이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진리를 의심해본 적은 없는가. 없다면 당신의 삶은 너무 무미건조하게 보인다. 그랗다면 한번쯤 너무 당연하여 그렇지 않으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할 불변의 진리에 대해 의심보라. 재밌잖은가. 방법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부터 당신의 방에 있는 사물들의 이름을 이렇게 바꿔 부르기로 하자.
침대는 사진으로, 책상은 양탄자로, 의자는 시계로, 신문을 침대로, 거울을 의자로, 시계를 사진첩으로, 옷장을 신문으로, 양탄자를 옷장으로, 사진을 책상으로 그리고 사진첩을 거울로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아침 풍경을 앞에서 바꿔놓은 사물의 이름으로 묘사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익숙한 이름 바꿔 부르기

아침에 당신은 오랫동안 사진 속에 누워 있었다. 아홉 시에 사진첩이 울리자 당신은 일어나서, 발이 시리지 않도록 옷장 위에 올라섰다. 당신은 자기 옷들을 신문에서 꺼내 입고 벽에 걸린 의자를 들여다보고, 양탄자 앞 시계 위에 앉아 당신 자기 어머니의 책상이 나올 때까지 거울을 뒤적였다.

재밌다고 하기 앞서 내 정신상태부터 체크하자고?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이 장난 - 글쎄, 장난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 은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니니까 내 정신 상태와는 무관하다.

대신 독일 작가 페터 빅셀이 정신 감정을 받아야 하리라. 이 이야기의 원전은 바로 그의 작품 '책상은 책상이다'(Ein Tisch ist ein Tisch)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알만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이다. 1969년 발표 당시 모더니즘의 '언어 위기' 문제와 결부되면서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1970년대 말에 우리 나라에도 소개됐었다. 나도 학창 시절 대단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생생할 정도. 그때 내가 읽은 것은 페터 빅셀의 단편집 3권에서 선별해 묶은 것이었다.

뜬금 없이 내가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바로 그의 작품집 중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아이들 이야기」(Kindergeschichten)가 정식 계약을 거쳐 「책상은 책상이다」(예담)는 제목으로 다시 선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믿지 못하겠다며 확인해보려고 길을 떠나는 남자, 기존의 언어 체계에 답답함을 느껴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다 결국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된 사람,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남자, 수십 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혼자 발명에 전념하다 천신만고 끝에 발명해낸 물건이 이미 세상에 다 보급되어 있는 텔레비전임을 알게 된 발명가…등 이 작품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이미 완결된 체계에 대해 부정하거나 회의한다.

아웃사이더들의 서글픈 이야기

너무 당연하여 그렇지 않으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할 불변의 진리에 대해 의심한 그들은 기존의 사유와 언어의 뒤집음을 통해 기성 체계의 권위와 권력에 도전장을 내민다.

지구가 둥근지를 확인하러 떠났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다 그만 실어증에 빠지는 등 주인공들은 결국 하나 같이 소외되고 고립된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안락하게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믿는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는 아웃사이더들의 서글픈 이야기는 단절이라곤 도무지 있을 것 같지 않은 21세기형 인간 우리들에게 성찰적 반성의 계기를 만든다.

그렇다. 비록 30여 년 전에 쓰여졌지만 이 작품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현재성을 담고 있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따스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고립'을 되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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