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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불통에 대책 없는 할아버지가 잔디 깎는 기계에 나무 판자를 이어 붙여 만든 수레를 매달고 길을 떠난다. 73세의 나이, 시력은 나쁘고, 관절염이 심해 지팡이도 한 개로는 안 돼서 양손에 한 개씩 두 개나 짚고, 허리가 아파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 할아버지가 500Km의 먼 길을 떠난다.
10년 동안 서로 등지고 살아온 형이 얼마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 형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앨빈 스트레이트 할아버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랐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지금은 언어 장애가 있는 딸 로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로즈는 아이를 돌볼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네 명의 자녀를 당국에 빼앗기고, 그리움에 애를 끓이며 지낸다.
길을 나선 앨빈 할아버지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 임신한 몸으로 가출한 여자 아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젊은이들, 자신의 차에 부딪혀 죽은 사슴을 앞에 두고 소리지르는 젊은 여자 운전자, 잠자리를 내주고 호의를 베푸는 작은 마을의 친절한 사람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저 너머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주름진 얼굴, 떨리는 손, 아프고 불편한 다리, 그래도 앨빈 할아버지는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 먼 길을 가고 또 간다. 차로 목적지까지 가도록 도와주겠다는 고마운 사람에게도 '나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다'는 간단 명료한 말만 할 뿐이다.
길에서 만난 젊은이가 묻는다. 나이 들어서 좋아진 것도 있지 않겠느냐고. 앨빈 할아버지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그래서 부질없는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답한다.
아, 앨빈 할아버지는 그래서 길을 떠날 수 있었구나. 서로에게 씻지 못할 말로 상처를 주고 등을 돌려버린 형을 만나러 10년만에 길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부질없이 얽매일 필요 없이 씻어내야 할 감정의 앙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형은 네 발 달린 보행 보조기를 짚고 동생을 맞는다. 집 앞에 나란히 앉은 형제. '평화롭게 둘이 같이 별을 보는 것'을 소망하던 앨빈 할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대낮이지만 이미 밤하늘의 별이 가득 들어찼겠다.
잔디 깎는 기계에 앉아 달려온 먼 길의 끝에서 할아버지 형제는 단 한마디 씩의 말을 나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저걸 타고 여기까지 왔니?"
"그래, 형."
인생의 길은 어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달리고 또 달려 도착한 그 곳에서 만나는 한마디의 말 같은 것.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 서 있는 우리, 저 멀리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마디 말은 어떤 것일까.
(스트레이트 스토리 The Straight Story / 감독 데이빗 린치 / 출연 리차드 판스워스, 싯시 스페이섹, 에브릿 멕길, 존 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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