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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울산은 자가용 보유율이 전국 1위라지요? 그래서인지 대중교통은 정말 형편없습니다. 여기저기 노동조합을 방문하는 게 저의 일인데 고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버스로 한 시간 거리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아예 교통편이 없는 곳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의 숙원 사업은 '오너 드라이버의 동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저는 가끔 신분증을 꺼낼 때나 "아, 나도 면허가 있었지" 되새기는 '장롱 면허' 소지자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의 기회가 왔습니다. 출산 휴가를 받은 한 선배가 차를 바꾸면서 노쇠한 티코를 제 동료에게 넘긴 것입니다. 93년형인데 10만 킬로미터도 넘게 탔습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 건 차가 생겼다는 겁니다.

한 일주일 신나게 몰고 다녔지요. 그런데 그게 우리 인연의 전부일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병원에 입원한 효성 해고자 한 분을 찾아뵙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도로에 합류하기 위해 왼쪽을 보며 차가 오는지 살핀 것까진 좋았지만, 아뿔싸, 오른쪽에 뭐가 있는지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정신을 차린 순간 우리 티코의 본네트가 구겨진 채로 눈 앞에 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거대한 버스 뒤꽁무니가 보입니다. 주차되어 있는 통근 버스를 들이박은 것입니다.

버스에서 기사 아저씨가 내려오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사실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좁은 골목길도 아니고 8차선 도로입니다. 지나가는 차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쿵 소리가 나서 나와보니 웬 티코가 머리를 들이박고 있는 것입니다. 거의 자살테러 수준입니다.

피해 차량(?)은 범퍼가 움푹 들어갔는데 출고한 지 두 달도 안되었다고 합니다. 티코의 참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어쩌겠습니까. 꼼짝없이 물어 주어야지요.

'사망 직전'의 티코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은 사고보다 더 괴로웠습니다. 기어를 바꿀 때마다 들리는 그 이상한 '끼이익' 소리는 공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신호 대기로 설 때마다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저게 어떻게 굴러 가지?"

정비소에 가서 일단 견적을 알아 보았습니다. 요모조모 살펴보던 아저씨가 "한 50만 원은 나오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절망했습니다. 이 차를 등록할 때 감정가가 33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한 방에 수리비가 50만 원이라니요. 게다가 넘겨받을 때부터 '시급한 수리'를 요하던 부위가 또 50만 원입니다. 버스 물어준 것 빼고도 100만 원입니다. 이 돈이면 똑같은 티코 3대를 사고도 만 원이 남습니다.

우리의 '보물단지'는 순식간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무실의 한 동료가 중재안을 내놓을 때까지 우리는 "차라리 폐차를 시키자" "그럴 순 없다" 격론을 벌였습니다. 중재안은 다름 아닌 최소의 비용으로 수리를 하자는 것입니다. 폐차장에서 범퍼를 사오고, 우그러진 것은 망치와 해머로 두들겨서 펴고, 스프레이로 색칠을 하면 남 보기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몰고 다닐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티코는 폐차 신세는 면했지만 아직은 사고 당시의 처참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사무실 뒷골목에 놓여 있습니다. 버스 뒷범퍼 물어주느라 이번 달은 이미 파산이거든요.

주인 잘못 만난 티코와 불시에 우환을 당한 우리 모두, 하루 빨리 이 충격에서 헤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33만 원짜리 티코에 100만 원짜리 사고라니, 액땜 한 번 참 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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