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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를 씻어 바구니에 담아두고 동치미 담글 준비를 합니다.
싸리 빗자루나 몇 개 만들 심산으로 뒷산에 갔다가 뜻밖에도 돌배를 한 자루도 넘게 따왔습니다.
작지만 옹근 돌배들이 참 많이도 열렸더군요.
따 가는 사람이나 짐승이 없어서인지 나무 밑에는 이미 떨어져 썩어 가는 돌배가 지천이었습니다.
여느 해보다 바람이 적었던 까닭에 올해는 산과 들판마다 과실들이 넘치도록 풍성했지요.
지난달 주워 항아리 가득 담아둔 감식초도 벌써 익어가는지 시큼한 냄새가 마당까지 풍겨옵니다.
돌배의 물기가 빠지면 노화도로 가져가 즙을 내와야겠습니다.
뒤안 우물가 유자술 담았던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아내고, 도구통에 절여두었던 무를 광주리에 담아 나릅니다.
일주일 남짓 간간한 소금물에 절여 삭힌 풋고추와 절인 쪽파를 항아리 밑바닥에 깔고 무를 하나씩 올려놓습니다.
조금 크다 싶은 무는 반으로 자르고, 작은 무는 통째로 포전리 염전에서 사온 소금에 절여두었었지요.
실상 여기 풍습으로는 조금 이른 김장입니다.
하지만 시원한 동치미를 얼른 먹고 싶은 욕심에 서둘러 담기로 했지요.
이곳은 겨울이 따뜻한 편이라 육지보다 김장이 한 달 이상 늦습니다.
많은 집들이 보통 12월 하순부터 김장을 시작하고 어떤 집들은 1월이돼서야 합니다.
무를 나르고 있는데 아내가 세살문을 열고 빠끔 내다봅니다.
나는 손을 젓습니다.
어떤 계간지 주간인 아내는 늦어진 겨울호 원고 쓰느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동치미 담는 일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을 말렸지요.
그랬더니 미안한지 자꾸 문을 열어 보는군요.
서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미안할 것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항아리 가득 무를 쟁이고 그 위에 마늘과 생강 자른 것을 싼 삼베 주머니를 올려놓은 뒤 돌로 눌러둡니다.
마지막으로 국물을 붓습니다.
어제 저녁에 물을 끓여서 식힌 후 찹쌀 가루로 풀을 쑤어넣고, 구운 소금으로 간을 맞춰두었었지요.
밀가루 풀보다는 찹쌀로 풀을 쑤어 담가야 톡 쏘는 맛이 더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던 까닭입니다.
이제 동치미 한 독이 아주 쉽게 담가졌습니다.
겨울 날 준비 하나가 끝났습니다.
이런, 빠진 것이 있군요.
나는 얼른 대밭으로 가서 댓잎을 한 움큼 따옵니다.
동치미 항아리에 댓잎을 띄우자 항아리 속 대숲이 출렁입니다,
뒤안의 대숲도 함께 따라 출렁이고,
대숲 사이로 초겨울 저녁이 서둘러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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