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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지렁이 한 마리가 마을 사람 모두의 삶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메르딩거 초등학교에서 불어닥친 이 생명의 바람은 머리만 비대해진 현대인의 생명과 환경에 대한 인식에 지금 바로 실천에 옮기라는 소중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교장선생님은 농부 아저씨

독일 메르딩겐 지방의 메르딩거 초등학교에는 괴짜 교장선생님이 한분 계셨다. 교장선생님의 이름은 '쉐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공부하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농사짓는 일에 뜻을 두고 농업학교에 입학, 그 뒤 교육대학을 거쳐 선생님의 길을 걷게 된 대단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 농사짓는 일에 평생을 바치려고 마음 먹었던 만큼 이 선생님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심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 쉐퍼 선생님이 교장으로 있던 1980년대 중반의 메르딩거 초등학교는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였다.

쓰레기통에는 각종 쓰레기가 넘쳐났고 그 많은 쓰레기를 감당하지 못해 급기야 마을 근처 산을 쓰레기 매립지로 만들어야 할 만큼 이 마을의 상황은 심각했다. 보다 못한 쉐퍼 선생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먼저 선생님은 재활용 쓰레기의 분리수거를 통해 상당량의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아이들 스스로 그 동안의 생활 방식을 고치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상황은 잠깐 나아졌을 뿐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쓰레기가 넘쳐났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지렁이 카로'였다. 선생님은 커다란 유리와 나무판으로 만든 상자에 지렁이를 넣어두고 썩는 쓰레기와 그렇지 않은 쓰레기를 함께 넣어 아이들과 함께 관찰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나뭇잎이나 음식 찌꺼기와 같은 쓰레기들은 카로가 먹어치운 덕분에 모조리 사라졌지만 알루미늄 캔이나 플라스틱들은 처음과 똑같은 모양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또 각종 수업 시간에 카로를 등장시켜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면서도 결코 강요하지 않는 방식의 교육과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사소한 실천으로부터 생명과 환경이 지켜질 수 있음을 깨닫도록 만들어 준 덕분에 메르딩거 학교는 물론 마을까지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자연을 보살필 때

사실 도시에 사는 나로서는 자연과 환경의 문제가 그리 절박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만큼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리라. 사정이 이렇다보니 환경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대해서도 머릿속으로만 이해할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상황이다.

자연에 대한 문제는 인간 스스로를 옭아맨 자본과 발전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너무나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무리한 발전과 편리함의 환상은 인간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이미 깊숙한 곳까지 물들어 버린 우리들은 항상 입으로만 자연을 말할 뿐 손끝 하나 움직이는 데 인색하기 그지 없다.

메르딩거 학교의 쉐퍼 선생님과 아이들이 보여준 것은 바로 이 실천의 결과들이다. 물론 대도시처럼 복잡하지 않은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마음만 먹고 눈을 크게 뜨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널려 있으리라는 반성과 기대를 품게 만든다.

이 학교가 일궈낸 것은 단순한 자연보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보호하고 더 이상 소외되지 않는 소중한 존엄성을 일깨운 현대문명에 대한 근엄한 경고의 메시지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라 매우 쉽게 읽히며 분량도 부담이 없다. 어린이들에게도 필요하겠지만 우매한 우리 어른들에게도 중요한 깨달음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적극 읽히고 싶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이마이즈미 미네코 / 이후 / 123쪽 / 8,500


지렁이 카로 - 쉐퍼 선생님의 자연 학교

이마이즈미 미네코 지음, 강라현 옮김, 김우선 그림, 사계절(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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