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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아주 장한 일을 해냈다. 그렇지 않아도 새해를 맞아 담배를 끊어볼까 궁싯거리던 흡연자들에게 확실한 금연 의지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폐암에 걸려 수척해진 모습으로 TV에 나타나 담배 덕분에 폐암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간절함으로 금연할 것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의 호소는 담배를 끊으라는 일방적인 호통이나 협박이 아니었다. 그저 나를 보라고 이 모양 이 꼴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정말 괴롭고 고통스럽고 후회스럽다고.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판단해보라고 덤덤하게 일러줬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새해 들어 담배 소비량이 전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는 있지만 그 결과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으랴. 어차피 해마다 반복되는 작심삼일짜리 결심이고 무너지기 쉬운 결심인 것을.

20세기 가장 성공한 산업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디딘 콜럼버스가 원주민들이 태우던 담배를 문명세계로 전파한 이후 담배와 인간은 무척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한때는 담배가 병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전염병이 돌던 시절 나라에서 흡연을 적극 권장했던가 하면, 영국 이튼 칼리지의 어린 학생들은 하루 일과인 흡연을 하루라도 거르면 채찍질을 당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니 세상 참 변해도 많이 변했다.

인류가 소비하는 제품 중에서 가장 유해하면서도 가장 중독성이 강한 것이 바로 담배다. 첫 발을 들여놓게 만들기가 어려울 뿐 그 이후에는 저절로 알아서 충성을 다하는 담배의 소비자들. 이런 특수한 배경 덕분에 담배산업은 씨앗에서 연기까지 3천 5백억 달러의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분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자, 세상 어디든 둘러보라.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평범한 형태의 담배를 한 개피 내밀어 보라. 그는 대번에 그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것이고 오히려 우리에게 불까지 붙여달라 청해올 것이 틀림없다.

그 어떤 편리성과 효용성을 가지지 못했으면서도 이처럼 강력한 인지도를 자랑하는 담배와 그 추종자들. 담배산업이 더 이상 단순한 산업이 아닌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낮은 제조원가 높은 판매가

책의 1장에 약술된 담배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두 가지 드러난다. 하나는 담배의 대대적인 보급에 전쟁이 기여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담배를 피우기 위한 비용과 노동을 절감해 준 궐련 형태의 담배가 대중화의 기반 마련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2장에서는 담배산업의 기본 특성이 드러난다. 제조원가가 지극히 낮으면서도 높은 판매가를 유지하는 이유는 막대한 광고와 마케팅 비용, 최근 불고 있는 흡연자들과의 소송 비용등을 고스란히 판매가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은이의 분석이 날카롭게 빛난다.

3장은 담배산업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기술적 기초사항들이 담겼다. 티코틴의 특성과 연기 흡입이라는 소비방법의 특징을 중독성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4장에서는 마케팅과 광고를 다루고 있으며 5장에서는 건강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이 대목이야말로 담배 산업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포인트다.

6장은 1990년대 벌어진 일명 '담배전쟁'의 흥미진진한 모습을 소개한다. 청문회에 끌려나온 담배산업의 거물들과 그들의 거짓말. 그 후 내부고발자에 의해 밝혀진 진실을 통해 오늘날 거대 담배회사들이 처한 위기상황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담배를 끊으라고 협박성 조언을 늘어놓거나 도덕적인 원칙만을 늘어놓는 대신 스스로의 담배 중독을 인정하고 담배와 담배 산업의 진실이 무엇인지 이해하라고 말하고 있어 그 어떤 금연 제안보다 확실하고 강력하게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 담배, 돈을 피워라
타라 파커-포프 / 코기토 / 256쪽 / 12,000


담배, 돈을 피워라 - 씨앗에서 연기까지 담배산업을 해부한다

타라 파커-포프 지음, 박웅희 옮김, 들녘(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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