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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자는 나무야 다리 아프지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배웠음직한 동요의 한 대목. 항상 제자리에서 변함없이 서 있는 나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꿋꿋하게 서서 자라나는 나무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누워서 자라는 노랫말까지 지어냈을까.

사물에 감정이 이입되면 그 사물은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디 사물 뿐이랴. 세상사 온갖 것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이해되어 불현듯 깊은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무 세기는 공부다

매 학기 강의시간마다 '나무 세기'를 과제로 내는 괴짜 교수가 있다. 이 교수의 이름은 강판권. 중국사를 전공한 그가 수업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나무 세기를 과제로 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학생들은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탈이긴 하지만.

지은이는 스스로를 '나무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무의 이름과 갈래는 물론 그에 얽힌 역사와 사연들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어느덧 인류의 기나긴 정신사적 궤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이 시대에 나무를 통해서 인류의 정신사를 들여다본다니. 학자의 공부법 치고는 유별난 방법임에 틀림 없다. 그가 말하는 나무 세기는 단순한 나무의 수량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 하나하나가 지니고 있는 섬세한 특징과 의미를 들여다보라는 말이다.

지은이의 말을 빌자면 '성리학적 격물치지'의 학문 방법이 바로 '나무 세기'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물(物)에 이르러 이치를 깨닫는 방식.

다시 말해 사물을 가까이 그리고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사유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인 것이다. 지은이가 옛 성리학자들의 '근사록(近思錄)'에 각별한 관심과 의미를 두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근사적 학문의 자세야말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인문학이 새로운 부흥을 가져올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박달나무와 한민족의 관계를 밝힌다

근사적 학문의 자세니, 격물치지니 하는 말 덕분에 이 책이 젊은 인문학자의 지루하고 고루한 논문쯤으로 여길 독자들이 있을까 싶어 해명하자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니 전혀 부담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

단군 신화의 의미를 따라가던 지은이는 이내 박달나무의 존재와 마주치게 된다. 태백산 또는 박달나무로 풀이되는 '신단수'에 대한 해석을 살피던 지은이는 예상 밖으로 박달나무에 대한 연구가 미비함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의 나무 세기 열병은 곧 박달나무를 찾아나서는 것으로 이어진다. 몇날 몇일을 돌아 간신히 발견한 것이 길가에 서 있는 '물박달나무'였다. 박달나무의 사촌쯤 되는 나무이긴 했지만 그것이라고 찾아 품어본 것이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고 깨달음이었다.

그러던 와중 자신의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몇 장의 사진을 들고 찾아왔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오매불망 찾아헤맸던 박달나무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 있었다. 마침내 해인사로 가는 길에서 지은이는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박달나무의 겨울 자태를 확인하고 만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에게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되었을 박달나무. 홍두깨와 빨래방망이는 물론 마차의 바퀴에도 널리 쓰였던 이 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물질적인 혜택은 물론 정신적인 혜택까지 고루 주었던 쓸모 있는 나무였던 셈이다.

결국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박달나무의 의미는 이렇게 젊은 학자의 나무 세기를 통해서 우리 앞에 그 해석의 일단을 드러낸 셈이다.

이 밖에도 화가 고흐의 자살과 측백나무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팔만대장경의 재료로 쓰였던 산벚나무와 돌배나무에 숨어 있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나무 읽기가 책 가득 펼쳐져 있다.

덧붙이는 글 |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강판권 / 지성사 / 256쪽 / 13,000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강판권 지음, 지성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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