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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그리도 심술이 났는고? 충주 단호사에 있는 철불좌상으로 아래로 향한 눈꼬리나 두툼한 인중 등 무언가에 잔뜩 심술이라도 난 것 같은 표정이다. 고려 시대에 각지에 선종사찰이 세워질 때 지방 호족들의 후원을 받는 과정에서 이런 독특한 모습의 철불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 권기봉

고려 시대 충주 지방 호족들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철불이 있는 단호사. 근 10년만에 찾은 단호사는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국사 선생님과 함께 찾았던 그때의 다정하던 절집과 사뭇 느낌이 달랐다.

석재 가공공장도 아닌데. 석불이나 법수 등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길가다 만나는 석재 가공공장의 풍경 같다. ⓒ 권기봉

그때의 단호사는 낮은 기와 돌담 위로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퍼져나온 자잘한 가지들이 보이던, 그런 아늑한 절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 들어 대웅전을 짓는 듯 중창하는 과정에서 그 정겹던 맛을 잃게 된 것 같다.

5백년 묵은 소나무. 단호사 경내에 있는 소나무에 대한 재미난 유래가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 심겨진 것으로 보이는 이 소나무는 강원도 지방에서 문약국을 운영하던 사람이 재산은 많아도 슬하에 자식이 없어 단호사에 불공을 드리면 득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와 불공을 드리다 적적해 하던 찰나에 심은 것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 권기봉

돌담 바깥에서부터 이전에는 없던 잡다해 보이는 법수와 석불입상이 외지의 방문객을 처음 맞고 있는데 왠지 차를 타고 지나다가 보게 되는 여느 석재 가공공장의 돌무더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이왕 오랜만에 답사를 왔으니 일단의 희망을 가지고 돌담을 넘어선다.

이곳은 있을 곳이 아닌가 합니다. 단호사의 규모에 걸맞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미륵불이다. 1973년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6m에 달한다. ⓒ 권기봉
불행은 혼자 오는 게 아니라던가. 이전부터 절과 그토록 잘 어울리던 몇 백년은 먹었음직한 소나무가 반겨주긴 하지만, 그 오른쪽으로 역시 절의 규모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6m 규모의 석불입상을 보며 왠지 어색한 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석불입상이야 1973년에 세워진 것으로 이전에 왔을 때도 보고 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때 이미 단호사가 이렇게 되리라는 짐작을 했어야 했던 것일까.

한편 단호사의 부조화스런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들어온 문을 중심으로 석불입상의 반대편에는 보도 블록으로 보이는 듯한 것들로 만든 탑과 대웅전과 약사전 사이의 뒤쪽 구석에 자리잡은 탑이 바로 그것들이다. 요새 퓨전 음식이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던데 탑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도 일종의 '퓨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런 '중창불사'를 하고 남은 자재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일까. 솔직히 그 이유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탑에도 퓨전의 물결이? 독특하다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그 연원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는 탑들이다. 두 탑 모두 보도 블록이나 건축 자재로 만들어진 것인데, 과연 무슨 의미로 그렇게 한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 권기봉
대웅전 안에서 염불을 하는데 집중하던 스님 한 분만이 보일 뿐 다른 이들은 보이질 않아 그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일 그 이유를 알았다 해도 이 절집의 조화스럽지 못한 모습을 이루는 다른 여러 요소들에 대한 갖가지 질문들이 터져나올 것에 지레 겁을 냈던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단호사의 중심 건물 대웅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눈에 거슬린다는 표현밖에는 할 말이 없다. 아직 단청을 입히지 않은 대웅전은 절 규모와는 절대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이전에 단호사의 정취이던 돌담 일부를 무너뜨리고 지은 것이라 그런지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단호사에 대한 정도 금세 사라져 버린다.

ⓒ 권기봉
다만 단호사를 찾은 이유이기도 한 철불좌상이 안치되어 있기에 들어가 보기로 하자. 원래 이전에 단호사를 찾았을 때에는 석불입상의 왼쪽에 있는 조그마한 약사전 안에 모셔져 있었으나 대웅전이 만들어지면서 이리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 좌상은 무엇에 심술이 난 것인지 눈꼬리부터 가늘게 날이 선 코, 두툼한 인중, 삐쭉삐쭉한 나발 등 어디에도 인자하거나 근엄한 부처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 심술 가득한 얼굴의 부처는 비단 단호사 철불좌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충주 시내에 위치한 대원사의 충주 철불좌상도 살이 좀 덜 쪘을 뿐이지 무섭고 불친절해 보이는 모습이 강하면 강했지 단호사 철불좌상에 뒤지지 않는다. 이 같은 모습은 충주 지역의 고려 시대 철불에서 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모습들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단호사를 답사함에 있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다. 이 삼층석탑은 충북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세월의 풍파를 모두 겪어낸 듯한 이끼가 잔뜩 끼어있어 그 연륜에서 오는 편안함과 위세 부리지 않는 모습에서 위안을 느낀다. ⓒ 권기봉
그래도 다행인 건 절집이 아무리 부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다고 해도, 부처가 아무리 심술 맞게 사람을 맞아도 한 기의 정겨운 석탑이 있다는 것일 게다. 대웅전 앞에 있는 소나무 가지들 사이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작은 삼층석탑 한 기는 이전의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에 앉아 답사객을 맞이해주는데, 다만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세월의 그늘에 의해 이끼가 생긴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는 것 정도이리라. 이 삼층석탑이 아직 그 자리에 서 있기에 단호사에 일어난 너무나 뜻밖의 변화에서 놀란 가슴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듯 하다.





철불좌상의 옛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때나마 철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는 약사전으로 미륵불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 권기봉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www.SNUnow.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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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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