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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에서 배를 탄다. 현재 한창 공사중인 창선대교가 완공되면 자연히 사라지게 될 이 왕복선은 삼천포 남해를 있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삼천포 어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남해 사람들과 어떻게 알았는지 승용차를 왕복선에 실어놓고 남해대교로 돌아가지 않아 시간을 벌었다며 좋아하는 관광객, 그리고 모든 일이 시큰둥해져버려 '남해의 힘'을 느끼러 가는 나 같은 사람들도 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삼천포 화력발전소 높은 굴뚝을 뒤로 하고 남해 창선에 도착하면 또 다시 사람들은 차를 배에서 빼내랴 시장에서 꾸려온 짐들을 찾느라 잠시 분주해진다.

남해에 오면 딱히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데로 떠난다. 창문을 열면 아직 찬기운이 느껴지지만 봄과 바다 내음이 코를 스치고,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늘푸른 남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관광객들은 남해대교를 거쳐 상주해수욕장이나 남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금산, 금산에 있는 영험한 기도도량인 보리암을 먼저 찾아가게 마련이다. 4월 초순이면 남해대교서부터 남해읍까지 이어지는 국도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볼 만하고, 남해대교 밑으로 빠져 해안도로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좋다.

주머니 사정만 허락한다면 상주해수욕장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미조'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여기서 횟거리를 사 송정 해수욕장 소나무 숲에 앉아 소주한잔 기울인다면 남해여행의 백미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신발을 벗고 아무도 없는 깨끗한 모래밭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송정해수욕장은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여름철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깨끗하고 분위기 좋은 곳이다. 남해를 자주 찾은 사람들이라면 항상 북적대는 상주해수욕장보다 송정이나 두곡, 사촌해수욕장을 찾는다.

남해에서 이름난 볼거리는 모두 보았다고 생각이 들면, 좀더 이색적인 볼거리를 찾아나서게 마련이다. 내가 찾아간 곳은 천연기념물 150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동면 물건리의 방조어부림과 조선 숙종때 세워진 천왕각(사천왕상을 모셔놓은 곳)이 유명한 이동면의 용문사. 용문사는 지도를 도로의 표지판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외진 곳에 있다.

물건리의 방조어부림은 2천여 그루의 상수리나무, 참느릅나무, 동백나무, 보리수나무 등으로 300여 년 전부터 가꾸어져 왔는데, 바닷바람이 불어 가지들이 울면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마을사람들은 이 숲을 해치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고 믿으며, 매년 음력 10월 15일에는 당산나무에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방조어부림보다 멋진 것이 이곳 마을 '물건리'인데, 여물게 쌓아 올린 돌담과 마을 앞 층층이 논밭, 포근하게만 느껴지는 뒷산이 눌러앉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물건리를 떠나 용문사에 도착하니 유명한 사천왕상이 떡 입구에 버티고 있었다. 사천왕과 천왕각뿐만 아니라 색이 바랬기는 하지만 대웅전의 곱디고운 단청을 볼 수가 있다. 한참이나 모자라는 눈썰미지만 용문사 단청은 지금까지 가본 사찰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주었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맵시 있는 자태랄까.

한려수도 푸른 바다의 쪽빛을 가진 단청의 아름다움에 취해 대웅전을 한바퀴 돌아보던 중 대들보에 적힌 '대웅전 단청 도편수 김혜각'이라는 글귀가 적힌 것을 보았다. 용문사 대웅전의 단청은 1998년 입적하신 단청장 혜각 스님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스님께서 단청을 그리실 때 눈앞에 펼쳐진 남해 바다의 그 빛깔을 그대로 대웅전 처마에 담아두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였을까. 용문사가 큰절은 아니지만 사천왕과 아름다운 단청만으로도 이름 값을 하고, 물건리와 마찬가지로 가슴이 확 트이는 바다를 앞에 두고 있어, 어머니 품안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는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매력이다.

남해의 힘은 어딜 가나 가슴 뚫리는 시원함과 억센 마음을 가라앉히는 편안함에 있다. 벚꽃 피는 4월에도 다시 남녘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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