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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경찰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최근 행해지고 있는 여러분의 비열하고 반인륜적인 불법 폭력행위를 중단하십시오. 만약 상부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라면, 여러분에게 양심적 명령불복종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국민들이 하급경찰공무원들이나 전경, 의경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모자라 인간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도록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당신들을 미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전 최옥란이라는 여성장애인이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죽음보다 고통스런 삶을 살다가 끝내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어야 하는 기막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살아 생전에, 목숨걸지 않고 편안하게 버스 한번 타보겠다고, 허울좋은 생산적 복지 운운하며 만들어놓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받는 생계보조비로는 먹고 죽을래야 그럴 수도 없다고 눈물을 흘리며 거리로 나와야 했습니다.

그때 당신네 민주경찰들이 휠체어에 몸을 실은 그녀에게 주었던 것은 살인적인 폭력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짧지만 그렇게도 한 많았던 삶을 살다 간 그녀가 살아서 투쟁했던 곳인 명동성당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치러야 했던 노제와 장례식도 당신들의 비열하고 반인륜적인 폭력으로 좌절되어, 가슴 속 깊은 한을 고스란히 가지고 한줌 재가 되어 쓸쓸히 떠나야 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망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이었고, '확인사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반인륜적 불법폭력행위를 알리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게 하기 위해 서울시경찰청 정문 앞에서 진행하려 했던 기자회견도 마찬가지로 불법과 폭력으로 저지하려 하였습니다.

어제 민중대회에서는 장례도 치르지 못한 고인의 넋을 달래기 위해 분향소를 설치하려던 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여 여학생 한 명이 피를 토하며 병원에 실려가게 하고,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5명의 동지들을 연행해갔습니다.

또한 이에 분노한 민중연대 동지들이 연행된 동지들을 만나고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성동경찰서로 갔으나 그곳에서도 당신들은 폭력을 앞세워 항의방문중인 장애인들을 비롯한 동지들을 밀어내려 하였습니다.

또, 진술서를 작성하는대로 모두 풀어주겠다던 약속을 받고 모두 해산하였으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당신들은 우리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무시해버렸습니다.

96년 제가 대학 신입생일 때, 학교 선배였고 투쟁의 현장에서 바로 제 옆에서 교육재정 확보와 대선 자금 공개를 부르짖던 고 노수석 동지가 당신들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의해 운명을 달리했던 때의 당신들의 불법성과 폭력성, 반인륜적이고 비열한 작태들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저의 대학생활은 그러한 당신들 때문에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항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저는 대학원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6년간의 분노를 삭이고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당신들과 맞서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제 곁에서 저와 함께 이동권과 생존권 보장을 부르짖던 고 최옥란 동지의 영정 앞에서 다시 한번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당신들에 대한 살인적 분노의 감정이 끌어 오르는 것은 제가 인간인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고, 또 다시 신입생 시절을 당신들에 대한 분노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물론 저는 장애인이라 군대에 갈 수 없습니다. 의경이나 전경으로 복무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도 살기 위해 맞고 싶지 않아서 부당한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해야 하고 그래서 더욱 심한 폭력을 자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후에 말로 표현 못할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런 양심의 가책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일지를 말입니다.

얼마 전 오태양 씨를 계기로 이 사회에 적지않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있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대체복무제 등 대안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들의 폭력저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노조가 출범하였고, 선진국에는 경찰노조(우리 나라에서 경찰은 국방부가 아니라 행자부소속 공무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들도 무언가 움직여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훈련이 잘된 맹인안내견들도 주인의 잘못된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양심을 걸고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십시오. 결코 우리는 당신들이 외롭게 싸우도록 버려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들에 대한 분노를 거두고 싶습니다. 더 이상 당신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양심의 힘을 발휘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현재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단체학과에서 장애인운동의 올바른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으며,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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