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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문제가 또 불거지는 걸 보니 선거철이 오긴 왔나 보다. 우리 지역의 얘긴 아니지만 자민련 광주.전남지부가 김종필 총재의 광주방문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한 10여명의 기자들에게 15만원씩이 든 봉투를 돌렸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오마이뉴스에만 보도됐다.

촌지수수는 선거법 위반

사실 선거철 정치인과 기자간의 촌지수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기자사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출마예정자나 정당이 촌지를 돌리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다. 특히 촌지를 제공한 사람이나 정당에 유리한 보도를 했다면 징역 5년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중죄에 해당된다.

또한 촌지가 심각한 것은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은근히 기자의 약점을 잡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비밀로 해야 할 일을 가지게 됨으로써 소신있는 보도를 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일단 촌지를 받은 기자는 절대로 특종을 못한다. 촌지를 준 후보자의 결정적인 잘못이 드러나도 자기가 먼저 보도하지 못한다. 다른 매체와 함께 보도하거나 한발 늦게 보도한다. 그가 앙심을 품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고백컨대 95년 6.27 지방선거와 96년 4.11 총선 때 <경남매일> 정치부에 있었던 기자도 촌지를 받은 바 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당시 분위기에서 후보자가 주는 촌지를 받지 않으면 그 후보자의 진영으로부터 ‘적대적인 기자’로 찍히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아예 취재원에 접근이 어려웠다. 지금은 이런 분위기가 거의 사라졌을 거라고 기대해보지만, 정치팀의 얘기를 들어보면 완전히 근절되진 못한 듯하다.

신문사 간부 만나려는 출마예정자들

촌지 뿐 아니라 향응도 심각하다. 대개 출마예정자들은 뜻을 세운 직후부터 언론사를 돌기 시작한다. 그들은 편집국장과 정치부장.사회부장, 그리고 담당 정치부 기자와 식사나 술자리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언론을 우군으로 만들어 놓고 싶어하는 후보자의 심리다. 어떤 경우에는 식사나 술자리가 끝난 후 촌지봉투를 건네기도 하고, 심지어 3차를 주선하기도 한다.

이런 자리를 거절할 경우 그 후보자로부터 ‘적대적인 언론사’로 간주당하게 됨은 물론이다. 이런 자리에서 받는 촌지봉투는 대개 정치부의 공금으로 잡혔다가 선거가 끝난 후 질펀한 회식비로 사용된다.

이 또한 언론윤리에 심각하게 반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에 대한 기준이나 규정이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지만, 혹시 있더라도 ‘밥도 한그릇 못하냐’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사주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해

국민주신문이나 도민주신문이라면 모르되, 특정 자본의 지배를 받는 언론사라면 사주의 입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우리나라 언론현실로 보아 거의 절대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자본의 속성은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게 기본이다. 또한 언론사주들은 평소부터 지역의 정치인이나 권력자들과 오랜 기간 유착돼 있다. 서로 친하다.

선거과정에서 보도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자나 정치부장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보다 자신과 잘 통하는 사주에게 바로 전화를 한다. 그러면 영락없이 편집국장과 정치부장이 사장실에 불려 올라갔다. 결국 불공정한 보도가 이뤄진다.

옛 경남매일 시절에는 이러한 사주의 요구를 잘 받아주지 않고 버티다가 선거직후 부서 자체가 공중분해되어버린 일도 있다.

이러다 보니 선거보도에서 언론은 대개 ‘현직’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권력에 약한 언론의 속성이다. 특히 지역언론의 경우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정권에 정면으로 대항해본 역사가 없다. 이승만 정권시절 대구매일신문이 ‘학생을 도구로 이용하지 마라’는 사설(55년 9월13일자)을 실었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지만, 다른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힘있는 쪽에 붙는 해바라기 근성

이처럼 권력에 철저히 순응해온 지역언론의 역사 때문에 아직도 지역언론에는 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해선 안된다는 막연한 금기의식이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반공의식을 의심받을 수 있는 이념문제는 아예 건드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남아있다. 이건 군부나 독재정권 치하에서 순응하며 살아남은 언론인들의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이 때문에 언론은 권력자를 구체적으로 콕 집어 비판하지 않는다. 두루뭉실하게 정책을 비판한다든지 행정을 나무라긴 하지만 현직 도지사나 시장.군수를 직접 비판하는 기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그런 이유다.

선거보도 또한 대개의 경우 당선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비위를 특별히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이뤄진다. 또 어느정도 경합이 될만한 후보라면 역시 그의 비위를 거슬러선 안된다. 그러나 영 당선가능성이 없는 군소후보는 철저히 무시한다. 참으로 소심하고도 비겁한 태도다.

이번 선거에선 어떤 언론이 군소후보를 얼마나 무시하는 지를 두눈 부릅뜨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경남신문><경남도민일보><경남일보> 등 지역일간지들이 모두 '선거보도준칙'을 발표했고, 특히 경남도민일보는 △출신지역과 소속 정당 등의 이유로 후보자를 차별하지 않으며 △소수세력일지라도 정치개혁.선거개혁에 기여하는 후보의 경우 소외시키지 않고 적극 발굴해 보도한다고 했으니 기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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