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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가 '조정래'를 처음 접한 것은 '태백산맥'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당시 남도 사투리의 리듬을 탈 수 없었던 나는 몇 장을 못 넘기고 다음을 기약하며 책을 접어야 했다. 그에 비해 박경리의 '토지'는 단숨에 읽을 수 있었으니 그것 또한 토지의 사투리 때문이었다. 토지 속의 말들은 타지방 사람들에게는 생경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우리 부모들의 말이었고 나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이 다음에 토지처럼 술술 읽혀질 때 읽으리라 미뤄두었던 태백산맥을 다시 읽게 된 것은 남도 사투리의 묘미를 알고 나서였다. 한때 같이 근무하던 친구들이 고향이 광주였는데 언뜻언뜻 비치는 그 '징헌' 뉘앙스가 너무 맛깔스러웠다. 내가 어설프게 그네들의 사투리를 흉내내면 그들은 질세라 나의 사투리를 흉내내면서 점점 우리들은 서로의 사투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TV에서 할머니로 자주 등장하는 탤런트 김지영 씨의 남도 사투리를 들으면 그녀의 고향이 어딘지 모르지만 내 귀에는 거의 '신기'에 가깝게 들린다. 마치 최병서가 김동길보다 더 김동길답게 그의 흉내를 내었듯이.
아무튼 전라도 말의 묘미를 느낀 후 나는 다시 숙제처럼 묵혀 두었던 태백산맥을 읽었고 그후 태백산맥이 영화화되었을 때는 장구한 태백산맥을 두어 시간 영화로 끝내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게 각색된 드라마 '허준'이 재탕 삼탕을 하면서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서 허구적 허준에 재차 삼차 목을 맬 게 아니라, 역사물을 방영하고 싶으면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차례로 방영하는 것이 손 안대고 코풀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살아 있는 현대사 백 년을 고스란히 쉽고도 의미 있게 접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황사가 끼어 다소 우울하게 시작된 봄. 그러나, 조정래의 한강이 있었기에 이 봄이 짭짤했다. 한강을 읽으면 우리의 부모 세대들과 지금 4,50대들이 어떤 삶을 헤치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알찬 종합선물 세트처럼 고스란히 없는 것 없이 다 볼 수 있다.
막연히 들었던 서독으로 돈벌러 갔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힘든 생활과 죽음을 담보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월남전에 뛰어든 사람들. 그들이 결국은 자신을 위하여서는 돈 한 푼 못 쓰고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찌들고 마는 살신의 희생 덕분에 고국의 형제 자매들은 가난을 극복하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고국 또한 그만큼 달러를 벌어들이고, 달러를 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조정래의 전작들도 그렇지만 그의 한강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감동하는 것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아파하며 보여주는 대목이다.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던 서진규 씨가 가발 공장에서 일했음을 얘기할 때마다 그 일의 어려움보다는 '그 시대엔 가발이 수출의 한몫을 했다지' 정도로 생각했다. 참 별난 수출도 다 있었다는 느낌과 함께.
그러나 한강을 읽고서야 그 가발공장 노동이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라. 가느다란 머리카락 하나 하나를 심어서 머리통 하나를 만들려면 목이며 눈이며 손가락 마디마디며 허리며 얼마나 아리고 결렸겠는가.
청계천 미싱사, 시다들의 생활은 또 어떻고. 고교 졸업 후 두 달 동안 시다로 일한 적이 있었다. 런닝이며 내복이 될 재단된 천들을 언니들이 박을 수 있게 접거나 언니들이 박은 것들을 다시 개어서 다음 공정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나 같은 시다의 일은 눈이 아플 리는 없었지만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어떤 땐 야근이라 해서 10시까지 연장하고 나오면 어깨가 무척 결렸다. 그뿐인가 섬유에서 나오는 먼지로 목과 코가 칼칼 매캐하고... 나야 진작에 한시적으로 한 것이었고 또 오래 하려고 했다쳐도 중도에 '이렇게는 살 수 없다'하고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청계천 그들의 어깨엔 그들만 믿고 있는 가족들이 줄줄이 있었기에 폐병으로 쫓겨나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버티고 살았던 것이다.
유일민, 일표 형제의 얘기를 읽으면서는 독재정권의 빨갱이 사냥에 몸서리 쳐졌다. 빨갱이 말만 들었지 내 고향은 전화가 휩쓸고 간 지역이 아니라 우리 친척 중엔 속칭 빨간줄이 긁힌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광주의 친구는 '빨간줄'에 묶인 친척들의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몇몇 대통령 경선 후보들이 '아직도' 빨갱이 타령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밖에도 한강에는 다양한 삶이 있다. 열심히 살아도 늘 힘겨움만이 깃드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굴절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행세하는 사람들의 면면도 보여준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려야 할 사람들은 정작 누리지 못하고 누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행세하고 사는 현실이 분노스럽다.
영국은 세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꿀 수 없다고 하였다지만 정말 조정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나라의 보배다. 인간도 동물이지만 동물 중에서도 인간만큼 격차가 지는 동물은 없다. 호랑이야 아무리 잘 생겨야 거기서 거기고 아무리 힘이 세어봐야 다 수준급에서 조금의 우열이 있을 뿐이겠지만 인간은 그에 비하면 정말 천차만별이다.
일당 백, 천, 만의 무게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금수만도 못한 사람들도 즐비하고 말 그대로 가지각색의 수준이고 색깔이다. 그러함에 비춰볼 때 조정래는 일당 백, 천, 만의 무게가 느껴지는 존재이다. 그의 책 한강에 '말로 지은 죄는 백 년을 가고 글로 지은 죄는 만 년을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는 그와 반대로 '말로도 글로도 만 년을 가는' 복을 지은 사람이다.
이봄 한강과 더불어 지난 시대의 힘겨움과 안타까움을 껴안아보고 현재의 삶을 다시 한번 재정립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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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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