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문의 미덕은 아마도 작가의 인간미와 부담 없는 글읽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다 인문학적인 깊이가 있는 작가라면, 그의 글에서 우리는 적지 않는 보석들을 건질 수 있으리라. 이윤기의 이 책은 이러한 조건을 유감없이 흡족하게 채워주었다.
그는 이 산문집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개, 신화, 문화 단상들을 마치 산책하듯 적고 있다. 책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책을 매개로 우리가 만날 수 없는 많은 인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추측컨대 저자는 이런 맛을 잘 아는 사람이다. 왜냐면, 그는 1부 '내가 사랑하는 인간들'에서 육조 혜능, 니코스 카잔차키스, 헨리 데이빗 소로우 등 여러 아름다운 영혼들과 자신의 만남을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곁들여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저자 이윤기를 처음 본 것은 예전에 EBS에서 방영한 '이윤기의 신화 기행'을 통해서였다. 그가 많은 언론 매체에 얼굴을 내민 것도 아마 그때 전후였던 것으로 안다. 그는 200여 권 이상이나 책을 번역한 뛰어난 번역가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신화 읽기' 붐을 새롭게 일으킨 대표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서양문화의 뿌리가 되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과 연구는 이제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TV 강의를 시청했을 때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이 산문집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독자들이 이 산문집을 지루해 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신화 관련 이야기 한 대목은 목회자인 내게 뜨끔한 지적으로 남았다. 어느 목사가 군의관 군복 깃에 달린 기장(旗章)의 지팡이와 뱀이 출애굽 당시에 모세가 장대에 세운 놋뱀과 지팡이를 상징한 것이라 열변을 토하며 설교했단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신화를 모르는 목사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지팡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신(醫神) 아폴론의 아들인 의사 아스클레피오스의 것이며 뱀은 그의 사자인 흙빛 무독사를 상징한다. 저자는 이 사실을 말하면서 "상징 해석의 전문가여야 할 사제인 목사가 신화가 지니는 보편적인 의미에 무지한 것은 한심한 일이다"라고 꼬집고 있다.
이 글귀를 읽으면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신화를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숭배하는 것과 신화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그 차원을 달리한다.
누구나 편견을 벗고 신화를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성서 세계 주변의 신화가 성서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신화를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종교와 신화를 관심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떤 종교의 경전을 읽든, 내 눈에는 신은 보이지 않고 거기에 되비추어져 있는 인간의 모습만 보입니다. 신화와 고대 종교 읽기를 좋아합니다만 그 자체가 나의 목적은 아닙니다. 나의 목적은, 거기에 투사되어 있는 인간의 모습을 읽는 것입니다"(342쪽)
이 말은 포이에르바하가 그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에서 "인간은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을 통하여서 오직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고 했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요컨대 인간을 알기 위해서 신화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뜻 깊은 지적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던져주는 많은 메시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근사하고 맘에 들었던 것은 다음의 말이었다.
"조직의 길은 독창적이지 못한 인간들에게 양보하라. 이제 거대 조직은 창의적인 그대들에게 아무 것도 약속할 것이 없다. 넓은 세상을 기다리면서 진정으로 그대들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라. 좋아하면 자주,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전문가가 된다. 좋아하는 일의 전문가가 되는 길. 골드칼라로 통하는 고속도로다. 날마다 하는 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삶의 골수다. 그것을 취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246쪽> '청년들에게 고함' 중에서
|
|
무지개와 프리즘 - 이윤기 산문집, 내일을 여는 글들 1
이윤기 지음,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2007)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