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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배 사이의 싸움에서 밀린 재규와 그의 부하들이 첩첩 산중의 절로 찾아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달마야 놀자>. 이들의 무단 침입에 놀란 스님들. 일주일만 머물 것을 약속하지만 조직에서는 연락이 없고,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스님들과 조폭들.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과 떠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마주 앉았으니 사사건건 부딪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삼천 배를 올리는 일부터 시작해 족구와 3-6-9 게임에 이르기까지 내기를 하며 서로 밀고 당긴다. 그러면서 차츰 정도 들어간다.

이들 사이에 큰 스님이 계시다. 무심코 지나는 동네 골목에서 스칠 것같은 할아버지 스님. 느린 말투에 변화 없는 표정이지만 엄격하지 않으며, 그대로 그냥 할아버지일 뿐이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협박조로 절에 머물 것을 알리는 조폭 재규에게 던지는 첫 마디. "밥은 먹었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다. "밥은 먹었니?"

스님들과 조폭들의 신경전이 계속되는 중에도 큰 스님 할아버지는 느긋하기만 하시다. 서로 잘 의논해 보라는 말씀뿐. 그리고는 깨진 독에 물 붓기를 문제로 내신다. 고심 끝에 문제를 푼 조폭들. 큰 스님은 '깨진 독같은 너희들을 내 속에 던졌을 뿐'이라고 하신다.

드디어 조폭들이 떠나는 날 새벽. 아침밥은 먹여 보내야 한다며 공양간에 나와 손수 준비를 하신다. 곁에 선 스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시는 한 말씀. "마음 공부는 혼자만 성불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조폭과 스님이 빚어내는 부조화 속에 유머가 번뜩이는 영화인데, 만일 큰 스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영화의 한 가운데에 큰 스님 할아버지가 계셔서 그 기묘한 균형이 유지되지 않았을까. 큰 스님 할아버지는 김인문이라는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힘입어, 앉아서 열반하신 그 모습처럼 영화의 무게 중심으로 거기 계셨다. 겉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고, 무겁지 않은 것 같지만 어쩌면 가장 커다랗고 묵직한 축으로 자리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을까.

아, 우리들 나이들어감도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어깨에 힘주고 무게 잡지 않으면서도,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구도가 완성되는 그런 모습말이다. 큰 스님 할아버지는 영화의 유쾌함 속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노년이었다.

(달마야 놀자 / 감독 박철관 / 출연 박신양, 정진영, 김인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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