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불과 10년 사이에 인터넷은 이미 우리의 일상적 공간으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1993년 이전만 해도 대학교와 연구소 바깥의 일반인들은 인터넷에 거의 접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더 놀라운 것은, 세계적으로 1억 명 가량의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으며 그 수가 100일 간격으로 계속 배가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폭발적인 증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사이버스페이스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지금과 같이 형성되었는가? 또 사이버스페이스가 가지고 있는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가?

<공간의 역사>는 서구 문화에서 물질 공간과 정신 공간의 개념이 변화해 온 양상을 소개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공간의 출현과 그 특징들을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하고 있다. 첫 장에서 저자는 언뜻 보기에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단테의 <신곡>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룬다. 그 이유는, 저자가 단테의 <신곡>이야말로 기독교적 영혼 공간에 대한 최고의 지도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단테의 <신곡>을 비중 있게 다룬 이유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오늘의 사이버스페이스 공간을 만들어 내고 주도하는 인물들 또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것과 같은 종교색 짙은 유토피아를 가상공간에서 실현시키려 하기에 그렇다.

저자는 오늘날 르네상스 회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화가 조토가 남긴 그림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반영한 중세의 공간관을 읽어낸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주의 부동성에 기초한 "텅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다. 조토의 그림에 나오는 사물들은 이전 회화들과는 달리 유클리드적으로 눈에 띄게 3차원적이었으나, 주위 공간은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간관을 유지하였다. 따라서 저자가 보기에 조토는 혁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세적인 인물에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원근화법으로 르네상스 회화는 결국 인간의 정신을 물질세계 공간에서 자유롭게 해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 개념을 벗어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 데카르트, 갈릴레이, 케플러 같은 인물들에 의해 중세의 신성한 공간이었던 천체 공간은 점차 무너져 내렸다. 중세의 우주에서 영혼의 장소는 우주 "너머"에 존재했으나, 물질 세계 자체가 무한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기독교적 영혼의 세계는 우주에서 그 거주할 장소를 잃고 만 것이다. 요컨대 17세기 이성의 시대 이후, 영혼의 공간이 삭제되고 오직 물리적 현상의 실재만을 인정하는 일원론적 세계가 시작된다.

1920년대 중반에 에드윈 허블(1889~1953)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여 당연시되던 우주정태론(靜態論)을 붕괴시켰다. 그리고 허블의 이러한 발견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이론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의미있게 되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발견은 빅뱅 이론을 낳았고, 빅뱅의 순간에 물질뿐 아니라 공간과 시간 역시 "태어났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써 물리학자들에 의해 4차원의 상대론적 공간의 시대가 막을 연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테오도르 칼루자(1885~1945)에 의해 초차원이라 할 수 있는 5차원이 제기되었는가 하면, 1980년대에 기존 중력과 전자기력 이외에 약핵력과 강핵력이라는 새로운 자연의 두 가지 힘이 발견되면서 우주는 11차원으로 되어있다는 견해가 지난 10년간 새롭게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11차원은 현존하는 거대한 4차원(3차원 공간과 시간)과 작고 복잡한 기하학적 형상으로 동그랗게 말려 있는 초극소형의 7차원을 말한다. 11차원 우주론에 따르면 모든 힘들 뿐만 아니라 물질도 공간기하학의 부산물로 간주된다.

저자는 물리학도로서 자신이 초공간이론에 깊게 매료되어 있다는 점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초공간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 덕택에 우리의 세계상이 완벽한 일원론으로 축소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거듭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동일하고, 모든 것은 동질적이며, 모든 것은 공간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새로운 일원론은 육체나 영혼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물질은 공간의 부산물에 불과하므로, 육체도 결국 거부된다. 이제 남은 것은 미세하게 말려 있는 텅 빈 공간일 뿐이다"(293쪽)

인간은 기본적으로 육체적이면서 정신적인 존재인데 제아무리 흠잡을 데 없는 초공간 이론도 그것을 해명해 내지는 못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가령, 인간의 사랑, 미움, 기쁨, 분노는 초공간 방정식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다. 한데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초공간 경계 너머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우주가 엄청난 힘으로 폭발하면서 새로운 사이버스페이스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정신과 자아를 위한 새로운 영역이며, 머드 게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중세적 환타지를 재현하는 온라인 환상세계이다. 여기서 저자는 단테의 <신곡>은 중세적 머드라고 명명하면서,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모든 문화마다 현실세계와는 다른 유사세계가 존재했다는 점을 들어 이것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님을 말한다.

저자는 사이버스페이스야말로 지난 300여 년 동안 이어져온 물리주의의 발전 이후에 인간 존재의 비물리적 팽창을 보여줌과 함께, 순전히 환원주의적이며 유물론적 실재관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선도적 사이버스페이스 주창자들을 통해 테크노-종교적인 열기가 고조되고 있음과, 그것이 현실 도피적인 그노시스-플라톤-마니교적인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꼬집는다.

따라서 이 사이버스페이스 종교는 공동체와 사회 전체에 대한 인간의 책무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가 우려하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접속 불가능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제, 가상공간에서의 극단적 성차별, 또 다른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 등등이다.

그는 사이버스페이스는 기본적으로 "관계의 네트워크"로서 공동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공동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책임의 네트워크"여야 한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한다. 더불어서 최종적, 최상적 공간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언어의 창조를 매개로 사이버스페이스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부단히 발견해 나가는 작업을 하자는 제안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매우 시의적절한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독자들은 학문의 여러 분야에 걸친 해박한 저자의 식견과 공간의 역사를 훑는 독특한 시각, 난해한 이론들에 대한 간명한 설명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천국의 문이 될 것인지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악취가 풍기는 지옥으로 돌변할 것인지는 열려진 가능성으로 남겨있다.

공간의 역사 - 단테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 그 심원한 공간의 문화사

마거릿 버트하임 지음, 박인찬 옮김, 생각의나무(200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