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작은 소망은 남북을 가로질러 횡단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남북의 장애인들이 서로 자유롭게 판문점을 오갈 수 있는 날이 속히왔으면 좋겠다."
5000Km에 이르는 거리를 오직 입 하나로 자신의 전동휠체어를 조정해 가면서 미국횡단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최창현 대표(뇌성마비 1급장애인·밝은내일)가 대구 시청 앞을 출발하여 종착점인 경주까지 약 52Km에 이르는 국토순례의 길을 떠나 화제가 되고 있다.
최 대표는 오래전 미주횡단을 통해 '에바다의 실상'을 세계 만방에 알려 나갔던 장본인이다. 그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종단하고 싶은 것이 간절한 꿈인데... 북한이 확실한 답변을 주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는 상태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제3국을 통해서라도 남북종단의 길이 열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도해 나갈 것이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태풍 '라마순'의 영향으로 국토순례의 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 조심스레 도보행진에 나선 대원들은 대구시청 앞에서 결단식을 갖고 최 대표를 비롯한 9명의 중증장애인들은 독립생활재활을 위한 행진을 시작했다. 도보행진에 참가한 대원들은 분홍색 깃발에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구호를 내세운 채 행진을 하고 있었다.
나는 2시간 가량 그들과 함께 동행하면서 그들의 도보행진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최 대표를 비롯한 다른 대원들은 태풍의 영향으로 갑작스럽게 몰아닥칠 수 있을 비를 염려한 나머지 우비를 입은 채 행진에 나섰다. 전동휠체어를 모는 솜씨가 느려 가장 선두에 선 조경호(방송통신대 2년/뇌성마비) 대원이 거침없이 도로를 누비고 나갔다.
몇몇은 손으로 전동휠체어를 조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입으로 전동휠체어를 조정해야 하는 형편이라서 도로행진은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최 대표는 가장 후미에서 대원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때론 중간에서 대원들의 상태를 살피면서 속도의 완급을 맞춰나갔다. 중간 중간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길을 가는 학생들이 손을 흔들어 보였고, 시민들도 박수를 치면서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어떤 장애우 운전자는 3만원을 건네면서 "힘내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거리 육교에 걸린 "2002 월드컵에서 보여준 우리의 저력, 2003 U대회로 나갑시다"라는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과연 우리의 저력만큼이나 장애우에 대한 정책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일까.
최 대표는 "우리 장애인들이 함께 같은 목적과 뜻을 갖고서 전동휠체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하였다.
서울에서 내려와 도보행진에 참여한 이승연(뇌성마비 1급/ 30세)씨는 "처음 참석하는 도보행진이라서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직접 참여해 보니 기분도 좋고 재미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비록 이동권 제약을 받는 속에 차도 제대로 타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신념을 얻기 위해 나오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장애인들도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밖으로 자꾸 나와 도전해 나가는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면서 동료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의미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 다른 장애우인 장해진(전주, 남)씨는 "이번 일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하면서 "내가 직접 이렇게 행사에 참여함으로서 다른 장애우들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자리가 되길 바라고, 나를 통해 전주의 장애우들이 세상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행사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전상현씨는 "서울에서 많이 봉사해 봐서 그렇게 힘든 줄 모른다"고 이야기를 꺼내면서 "장애인과 함께 하다보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작은 편견마저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며 장애우 대원들을 도왔다. 그는 정부에 대해 "장애우들을 위한 지원책을 강구함에 있어 시설에 돈을 주기보다는 장애우 개개인에게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재정지원이 뒤따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년의 고난숙 자원봉사자는 "나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면서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휴식 시간의 틈을 타서 물을 먹여주고, 김밥을 먹여주면서 그들의 힘든 여정에 도움의 손길이 되었다.
아무런 낙오자 없이 행진을 마친 9명의 대원들은 금호읍에 다다라서 1박을 할 숙박지를 찾는 것으로 경주까지의 국토순례 첫날을 마감했다.
이 사무장이 기자에게 건네준 이달엽 교수가 쓴 글을 전해주는 것으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벌이는 그들의 도보행진의 소식을 맺을까 한다. 아무쪼록 도보행진이 건강한 모습 속에 그들의 마음속에 희망과 기쁨의 소식을 가득 안은 채 마무리할 수 있는 행진이 되어지길 소망해 본다.
『이 땅에 장애를 지닌 수많은 국민들이 가난이라는 뱃지를 가슴에 훈장처럼 달고 다니고 있으며, 빈곤의 문제에 놓여있는 장애인들은 심리적으로도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제의 원인에 대한 비난과 자책감, 차별, 비행문제, 개인의 동기부족, 또 다양한 사회집단간의 상호작용과 접촉 부족으로 인하여 권리에 대한 제한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진정한 문제는 사실상 장애인을 실업과 가난에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정부의 프로그램과 의지 부족에 있다고 봅니다. 사실상 장애는 개인보다는 사회환경에 의해 창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동수단, 건강한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상의 접근성 문제와 무의식적 차별이 사회참여를 가로막고 장애인을 제외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신체장애라는 의미는 특수한 형태의 사회적 압제이며, 독립생활재활은 이러한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대구대 재활과학대학 이달엽 교수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