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설가 성석제.
소설가 성석제. ⓒ 홍성식
재기(才氣)와 입담의 작가 성석제가 새 소설집을 냈다. 이름하여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창작과비평사). 제2회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표제작을 포함해 7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 역시 그의 트레이트 마크라 할 '웃음 뒤에 숨은 삶의 비애'가 곳곳에서 처절하게 혹은, 아름답게 빛난다. 물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예의 걸쭉한 입담과 의고체와 구어체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성석제표 문체.

표제작과 '천애윤락' '천하제일 남가이' 등 수록작들은 일단 재밌다. 그러니 술술 읽힐밖에.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흡입력. 시인 김정환은 이 흡입력을 '소설을 읽다 날밤 새던 대학시절 습관을 성석제 소설이 30년만에 되찾아줬다'고 표현했다.

'재미는 있으나 재미밖에 없다'는 성석제를 둘러싼 세간의 쑥덕거림에 대해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세상에는 진지한 이야기도 필요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필요한 거다"라는 명료한 대답. 그의 작품 또한 그의 성품만큼이나 간명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허허로운 삶 속에 포진한 눈물'쯤으로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수록된 작품들마다 무릎을 치게 하는 웃음이 있고, 곰삭은 장맛을 떠올리게 하는 배꼽 잡는 해학이 있지만 그 웃음과 해학이 전부는 아니다.

<황만근...>은 표면상으로 드러난 웃음과 해학 속에 떨구어진 눈물의 맛을 봐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는 책이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창작과비평사
경운기를 기가 막히게 부리는 동네의 공동머슴 '황만근'의 어이없는 죽음(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과 얼뜨기 건달들이 한여름 냇가에서 진짜 조폭들에게 당하는 처절한(?) 폭력(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부자 여성들과 결혼하여 놀고먹기를 바라는 한 청년의 고군분투기(욕탕의 여인들)와 책을 모으는 것 외에는 세상사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책)의 이야기 속에는 필설로는 형용키가 어려운 삶의 비의(悲意)가 내재되어 있다.

웃으면서 읽는데 웃다보니 눈물이 나는 소설. 성석제는 이 가 닿기 어려운 불능 혹은, 부조리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문학에서 그 전례를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기에 모범으로 삼을 텍스트도 거의 없고, 사숙(私淑)할 작가 역시 전무하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 도전은 가치 있어 보인다. 새로운 길을 걷는 자의 고독. 그는 그것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일견 너무나 사소해서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사에서 소설의 소재를 찾고,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인간과 생의 진실을 추출해내는 재주. 그 재주만으로도 성석제는 21세기 한국문학에서 종요로운 존재다.

성석제의 소설에서 만나는 도둑과 노름꾼, 폭주족 소년과 기묘한 향기를 풍기는 미남, 책벌레와 동성애자 중학생은 독자들에게 책을 읽는 재미와 함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의 삶을 읽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해왔다.

그가 또 어떤 사람의 어떤 인생을 그의 입에 올려 우리를 몸 달게 만들지 벌써부터 '프로 이야기꾼' 성석제, 그의 새로운 작품이 기다려진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창비(200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