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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8일 오전 의정부지청앞에서 '형사재판권 이양'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범대위 관계자들.
7월 8일 오전 의정부지청앞에서 '형사재판권 이양'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범대위 관계자들. ⓒ 권우성
공은 일단 미군의 손으로 넘어갔다. 지난 7월 10일 법무부가 이번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미군측의 형사재판관할권 포기를 공식 요청함으로써 이제 주한미군측의 결정만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한미군 내부에선 '전례가 없다'며 벌써부터 법무부 요청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실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양국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 포기 요청권'은 지금까지 미군 범죄자를 위한 구제 수단일 뿐이었다.

'재판권 포기'는 한국만 해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22조(형사재판권)에는 국내에서 주한미군의 공무수행중 발생한 사건의 경우 미군측이, 그 외적인 사건은 한국측이 각각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은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 국가에서 사건의 경중에 따라 1차적 권리 포기를 요청할 경우 서로 '호의적 고려(sympathetic consideration)'를 하도록 규정했다.

사건 피해자가 한국 국민이고 가해자가 미군일 경우 재판의 주도권을 어느 나라에서 갖느냐는 사건 진상 규명과 가해자 처벌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중생참사 범국민대책위에서 미군측에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 이양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번 사건이 갖는 중대성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규정은 한국 법정에 설 '위기'에 처한 미군 범죄자를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돼왔다. 주한미군측은 그 동안 살인, 강간 등 흉악범을 제외한 일반 미군 범죄자에 대해선 한국 수사기관에 재판권 포기를 수시로 요청해왔다.

미군 범죄자 기소율 3~7%에 불과

 7월 11일 용산 미8군 부대 앞에서 미군의 재판권 이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범대위 관계자들.
7월 11일 용산 미8군 부대 앞에서 미군의 재판권 이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범대위 관계자들. ⓒ 권박효원
실제 한미 SOFA 합의의사록에는 이 규정과 관련해 살인, 강간, 과실치사 등 중범죄를 제외한 '단순 범죄'에 대해서는 주한미군측이 요청할 경우, '대한민국 당국이 재판권을 행사함이 특히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재판권을 행사할 제1차적 권리를 포기한다(waive)'고 못을 박기까지 했다.

매년 수백 건에 이르는 미군범죄에 대한 국내 재판권 행사율이 3~7%에 그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SOFA 합의의사록에서 한국측의 형사재판권 포기 요청과 관련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한국측의 첫 관할권 포기 요청에 대해 주한미군측은 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11일 <문화일보> 보도에서 한 주한미군 관계자는 "공무수행중 발생한 사건에 대해 재판권을 포기하는 선례를 만들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물론 보도가 나간 뒤 주한미군 공보관이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이번 사안에 대한 주한미군측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미군측은 강도, 교통사고 등을 '단순범죄'로 취급, 한국 수사기관에 재판권 포기를 수시로 요청했다.

"불평등한 형사재판권 규정 개정 시급"

재판권을 한국으로!
재판권을 한국으로! ⓒ 권우성
이에 대해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의 이정희 변호사는 "2000년 12월 소파(SOFA) 개정 당시 형사재판권 문제에 대해서는 구금, 인도 시기를 일부 조정한 것말고는 개정이 거의 안돼 옛 독소조항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군 용의자의 구금, 인도는 한국이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을 가질 경우에만 주어지기 때문에 국내 경찰의 초등수사가 쉽지 않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의 영내 활동이 자유로워 증거 인멸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법원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검찰이 기소해도 미군 용의자를 구금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독일과 일본의 SOFA 규정에는 범죄가 공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했는지 여부를 현지 법원에서 판단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한미 SOFA에서는 전적으로 주한미군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정희 변호사는 "이러한 불합리함을 막으려면 우선 한미 합동사고전담반 기구 설치와 운영규칙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해방 이후 미군 범죄 10만건 넘어

일본과 한국의 '아주 작은 차이'?
일본 여중생 성추행 사건에 미국 대통령 공식 사과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역시 잇따른 미군범죄로 반미 감정이 비등한 지역이다. 95년 미군들의 초등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주민들의 반미 감정을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95년 9월 미군 병사 3명이 일본 초등학교 여학생을 납치, 성폭행하는 사건을 계기로 95년 일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 "흉악범의 경우 체포 시점에서 신병을 인도하는 것을 호의적으로 고려한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미군범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2000년 7월에는 술에 취한 케니 티트컴(19) 상병이 민간인 아파트에 침입, 14세 여중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티트컴 상병은 미군 군사법원에 기소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사건 직후 G8(서방 8개국)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 발표를 하기도 했다.
/ 김시연
1945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이후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는 약 10만여 건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한미 행정협정이 발효된 1967년 이후에도 5만여 건의 미군범죄가 발생했다. 하지만 90년대 이전 재판권 행사는 거의 미미했으며 90년대 이후에도 미군 범죄에 대한 한국 검찰의 재판권행사율은 3~7%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군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92년 10월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발생한 윤금이(당시 26세)씨 살해사건이었다. 당시 미 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 이병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은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93년 4월 서울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윤금이씨 사건 이후에도 주한미군에 의한 강력범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2000년 2월 매카시 상병 이태원 여종업원 김아무개(당시 31세)씨 살인사건은 소파개정협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미군 2사단 소속 크리스토퍼 매카시(당시 22세) 상병은 서울 이태원동 유흥업소에서 만난 여종업원을 목졸라 살해한 뒤 체포됐다.

매카시 도주 계기 신병인도 시점 앞당겨

하지만 매카시 상병은 살인혐의에도 불구, 소파규정에 의해 불구속 기소 상태에서 수사를 받다 첫 재판을 앞두고 도주하고 말았다. 매카시 상병은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지만 2001년 3월 대법원에서 6년형이 확정된 뒤에야 비로소 수감됐다.

지난해 SOFA 규정이 개정되면서 살인, 강간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미군 범죄자는 기소 시점에서 바로 신병 인도가 가능해졌지만 이때까지만해도 형 확정 이후에야 수감이 가능해 중범죄자도 불구속 기소 상태에서 수사를 해야했기 때문에 사건 은폐나 도주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어야 했다.

덧붙이는 글 | 미군범죄에 관한 보다 자세한 자료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홈페이지(www.usacrime.or.kr)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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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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