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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8년 가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동성고등학교에서는 평화만들기 콘서트가 열렸다. 이 콘서트에서 윤도현 밴드가 공연을 시작할 즈음 영상이 무대 앞쪽에 비춰졌다. 영상 속 주인공은 세계 최장기 양심수였던 김선명 할아버지. 45년간 남한의 감옥에서 양심수란 이름으로 살다가 96년 8월 사면되고 난 후, 노모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병상에 누워계신 아흔 살의 노모는 일흔 살의 아들을 알아보고는 얼굴을 쓰다듬었다.

▲ 윤도현 밴드가 오는 24일 한사람을 위한 공연에 참여해, 양심수 석방을 기원한다.
ⓒ 이은영
잠시 후 윤도현 밴드가 연주하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 반주가 그 영상과 함께 오버랩 되었다. 그쯤에서 노래는 시작되어야 했다. 그러나 영상을 보고 있던 보컬 윤도현은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가사가 나와야 했지만, 윤도현은 눈물을 닦느라고 반주만 홀로 흘려 보냈다.
“솔직히 남들 앞에서 우는 걸 잘 못하겠는데, 그때는 펑펑 울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게 무척 창피한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그때는 참 순수했구나 하고 생각돼요.”

2.


윤도현 밴드.
월드컵 대회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이제 윤도현 밴드를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 필승 코리아’와 ‘아리랑’으로 거리응원을 달구었던 윤도현 밴드는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더욱이 보컬인 윤도현씨는 2000년 11월부터 MBC라디오 프로 ‘두시의 데이트’의 진행을 맡은 데 이어 지난 4월부터는 KBS-TV에서 ‘윤도현의 러브레터’ 진행까지 맡고 있어, 그 인지도는 날로 상승할 듯하다.

6월 한 달간 온 국민의 마음을 달구었던 그들이, 오는 7월 24일 저녁엔 ‘한 사람’을 위한 작은 공연을 갖는다. 그 한 사람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년6월형을 받고 안동교도소에 복역중엔 양심수 김경환씨(전 월간 말 기자). (사)나눔문화와 인권실천시민연대가 마련한 7월 24일 공연 ‘감옥문을 열어라’에는 윤도현 밴드 외에도 자전거를탄풍경, 홍순관, 이정열, 이지상, 손현숙, 김미영 등이 참여한다.

윤도현 밴드가 양심수 석방 공연이 참가하는 것은 낯선 모습은 아니다. 이미 매년 12월이면 민가협에서 주최하는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공연을 앞두고 목동에 있는 그의 연습실에서 윤도현 밴드(이하 윤밴)를 만났다. 이날 인터뷰에는 윤밴 구성원인 박태희(베이스 기타), 김진원(드럼), 윤도현(보컬), 허준(리드 기타)이 모두 함께 했다.


- 양심수를 위한 공연을 비롯해 아름다운재단에서 마련했던 나눔 콘서트 등 이른바 사회성이 담긴 공연들에 참여하는 게 잦은 것 같다. 그런 공연들에 기꺼이 참여하는 이유가 있나?
“멤버들이 일상생활에서 그런 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친척이나 형제들 중에 사회에 도전적으로 산 분은 없지만, 수입이 적어 생활을 어렵게 꾸려온 노동자로 살았던 분들은 많다. 우리 부모님도 노가다를 뛰시거나 식당 일, 건물 청소 등을 하시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그런 부모의 삶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군대 갔다 온 후엔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 주변의 삶들이 쌓이고 쌓여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도현이도 부모님이 경기도 파주에서 세탁소를 하시는데, 파주 일대에서 미군 등을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의식이 깨었던 것 같다.”(박태희)

- 그쪽 지역이라면, 최근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데…
“웬만한 기사는 모두 읽어보아서 알고 있다. 그래서 두시의 데이트 진행하면서 ‘양키 고 홈’이라고 했다.”(윤도현)

- 방송에서 그런 말들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자기검열을 할 것 같은데.
“망설여진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은 그 정도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여러 종류의 신문을 읽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주변 사람들 의견도 들어보고는 최종 결정을 해서 ‘양키고홈’ 등의 말을 하는 거다. 언젠가 큰코 다칠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얘기하니까 후회는 없다. ‘양키고홈’의 배경을 덧붙이자면, 우리가 미국 사람들 전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평화다.”(윤도현)

“방송에서 솔직하게 얘길하는 게 도현이의 장점이다.”(박태희)

- ‘철문을 열어’ 등 그동안 부른 노래들에는 사회성 짙은 노래들도 있지만, 누구도 윤밴을 이른바 운동권 가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양심수 공연 등 사회성 짙은 공연에 부담 없이 초대되는 걸 보면, 언뜻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운동권으로 불러지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결과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투쟁이나 쟁취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런 때가 있었다. 우리가 선동이라도 해서 뭔가를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뮤지션이다. 음악으로 사람들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싶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윤도현)

- 그럼에도 윤밴을 초대하는 단체들에서는 윤밴이 좀더 사회성 있는 얘기를 해 주기를 바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점은 늘 조심해야 한다. 그런 일에 휩쓸리면 바보가 되는 거다. 좀 다른 얘기지만, 월드컵 때 붉은 악마 노래했을 때도 몇몇 이들은 왜 불렀느냐며 비판하기도 했다.”(윤도현)

- 최근엔 낙도의 축구 꿈나무를 돕는 기금인 ‘오 필승코리아’기금 출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월드컵 응원가를 부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붉은악마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엔 붉은악마를 통해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 노래하길 잘 했다. 월드컵 때 소외된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사람들도 더불어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에겐 참 좋은 경험이었다. 언제 그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면서 그런 감동을 받아 보겠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선명한 눈빛은 생전 처음 느낀 것이었다.”(윤도현)

“나는 직접 축구장에 가서 응원을 하기도 했는데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사람들이 왜 우는지 이해됐다. 감동을 받았다.”(김진원)

- 사회성 짙은 콘서트 중 기억에 남는 콘서트가 있는가?
“특별한 타이들이 있었던 공연은 아니었는데, 어느 공단 대기업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한 공연이었다. 그때 ‘이 땅에 살기 위하여’를 연주했는데, 앞에 앉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여공들이 약 약 3천여명 정도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문득 노동자로 산 우리 어머니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도현이가 ‘꿈꾸는 소녀’를 부를 때는 타임머신을 타고 젊은 날의 우리 엄마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박태희)

- 박태희씨가 ‘꿈꾸는 소년’이 되었던가 보다. 그때가 언제였나?
“(주저함 없이) 2000년 10월 20일.”(박태희)
“날짜까지 기억하는 걸 보니 정말 감동받았구나.”(윤도현)
“그때 기분이 무척 묘했다.”(박태희)

- 이번에 24일 있을 콘서트 역시 김경환이라는 한 양심수의 석방을 위한 공연이다. 공연이긴 하지만 그 의미상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자리다보니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을 듯한데.
“그런 일 때문에 힘들긴 하다. 그러나 우리를 섭외한 이상, 무대는 순수한 윤밴의 무대여야 한다. 그 자리는 이미 양심수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으니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따로 전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모든 노래를 공연 내용에 맞춘다면 참여하는 가수들도 힘들 것이고, 관객도 힘들 것이다. 양심수 석방 운동도 힘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윤도현)

- 그동안 윤밴은 방송 등에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도 꾸준히 팬을 확보하고 있고, 나름대로 그 층을 확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처럼 쉼 없는 인기를 유지해가는 힘은 무엇인가?
"곁에서 같이 씨 뿌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에 대학 공연을 많이 가졌을 때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광고가 힘이 되었다. 도현이가 두시의 데이트를 진행하기 전까지는 미디어에 대한 폐쇄적인 생각들도 많았는데, 요즘엔 미디어에 대해 편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 두시의 데이트 진행 이후 윤밴에 가속도가 붙었다.“(박태희)

“윤밴이 대중가요를 부르는 연예인으로만 남지 않고 이번 공연처럼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주변 사람들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이 좋은 놈이라 생각하는데, 속초에서 음악하다가 서울로 와서 다음기획을 만났는데, 그곳에서 노찾사나 정태춘·박은옥씨를 만나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김진원)

- 윤도현씨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각각 방송을 진행하는데 부담은 없는가?
“솔직히 있다. 특히 라디오. 매일 같은 시간에 나가야 하니까. 전 국민을 상대로 하다보니 에너지가 없는데도 있는 척 해야 한다. 주변에서 힘들겠구나 하면 좀 힘이 날 텐데, 요즘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니까 맥이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땐 정말 나 이거 안 해도 되는데 싶을 때가 있다.”(윤도현)

- 그럼에도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는 이유는?
“이미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이 생활에 들어온 거 같다. 만약에 안 하게 되면 그것도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 많은 연예인들이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걸 시원스레 얘기하는 이들을 못 만났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정신이나 사회를 평화롭게 하는 얘기를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게 좋다.

- 윤도현씨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는?
“서로 웃고 서로 위해주고 싸우지 않고…”(윤도현)

- 개인적으로는 윤밴을 통해 경쾌하고 즐거운 저항의식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윤밴은 그런 에너지를 어디로부터 얻는가?
“우리 나름대로 연주를 하지만, 우리도 또 좋아하는 음악인들이 있다. 그들의 공연을 관람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에서 힘을 얻고 있다.”(김진원)

- 마지막으로 24일 콘서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마음을 담아 한 마디 해 주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윤도현 밴드입니다 반가와요. 여러분 이 공연에 참가하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경환씨 석방을 위한 모임 같은 공연인데, 저도 동참을 하고요 개인적으로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게 있어서 불만이 많습니다. 김경환씨는 충분히 석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빨리 사회로 돌아오셔서 사회에서 훌륭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시대인가?”
인터뷰 중반 윤도현씨가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국가보안법으로 희생받는 이들을 위한 공연을 몇 년 전부터 해왔는데, 요즘에도 그런 주제로 공연을 준비한다고 하니 당연히 던질 법한 질문이었다.

"민가협이 매달 발행하는 ‘민주가족’에 보면 지난 5월 16일부터 6월 15일까지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 구속된 이가 5명이다. 그러나 이전에 비해 구속된 양심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사회적 관심도가 떨어지고, 그런 상황에서 양심수 석방운동이 이전보다 더 힘이 드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24일 열리는 ‘감옥문을 열어라’ 콘서트 역시 그런 부단한 걸음 중에 한 발자국의 더 내딛는 자리이다. 크게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속된 이들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고, 작게는 김경환이라는 한 사람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가 더 이상 감옥에서 면회 온 아버지를 만나며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먼 길 면회 오신 칠순 아버지가 마흔 다 된 아들에게 이르십니다.
“얘야, 이젠 제발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으면 좋겠구나. 살아보면 알겠지만 인생 별 거 아니란다.”
예전엔 들어오지 않던 그 말씀이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알고, 있는 듯 없는 듯 있고, 하는 듯 마는 듯 하는…… 아, 정말이지 그렇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독방에 들어앉아 한숨짓는데 괜시리 눈물이 납니다. - 김경환 저, <비상을 꿈꾸는 새는 대지를 내려다 본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양심수 김경환 석방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 "감옥 문을 열어라!" 공연 안내 

김경환씨는 지난 99년 9월 이른바 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남파간첩 '진운방'을 만나 기관지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간첩방조 및 편의제공 등이 적용돼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고 현재 경북 안동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그러나 김씨에 대한 판결은 같은 사건의 핵심인물들이 99년 10월 검찰에 의해 공소보류 조처를 받은 반면, 국내 한 대학의 박사논문 내용을 국가기밀로 판단해 3년 6월을 선고해, 자연스레 형평성 시비를 낳았다. 더욱이 김경환씨는 민혁당이나 기타 반국가단체에 가입한 사실이 없어 감찰 기소 때도 민혁당 당원으로 기소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체사상의 '오류'를 깨닫고 언론활동 등을 통해 남한의 변화된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런 김경환씨가 이번 8·15때 사면되기를 바라는 벗들의 마음을 모으고자 마련했다. 

일시 : 2002년 7월 24일(수) 오후 7시 30분 
장소 : 성공회 대성당(서울시청, 덕수궁 옆) 
주최 : (사)나눔문화/ 인권실천시민연대 
출연 : 윤도현밴드, 이지상, 자전거 탄 풍경, 성공회 아카펠라팀 등 
회원권 구입 문의 : 인권연대(02-749-9004) 1만원권과 3만원권 두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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