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중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미군을 처벌하라"며 종로 거리로 나선 시민,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한국 경찰의 '무차별 폭력'뿐이었다.
7월 27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규탄 제5차 범국민대회'(이하 범국민대회)에 이어진 거리 행진 도중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경찰은 시위진압 과정에서 취재기자들과 거리의 시민들에게까지 무차별 폭력을 행사, 또 다시 과잉진압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취재기자, 시민 가리지 않는 '경찰 폭력'
이날 오후 6시경 종묘공원에서 범국민대회를 마친 2000여 명의 시민, 학생들은 종로를 거쳐 명동성당에 이르는 합법적인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후 6시 30분경 종로 2가 YMCA빌딩 앞에 이른 거리 행렬이 명동성당 대신 미 대사관이 있는 종로 1가 방향으로 계속 행진하려는 것을 경찰기동대가 막아서면서 대치가 시작됐다.
| 종로에 울려퍼진 아리랑의 의미/ 김용남 기자 |
대치 상태가 1시간 가량 계속되면서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는 대학생 시위대들과 방패로 무장한 전투경찰들간에 크고 작은 몸싸움이 벌어졌다.
전투경찰들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시위대 속으로 갑자기 뛰어드는 과정에서 방패를 위에서 내리꽂는 불법적인 진압 방식을 사용해 시민들의 비난을 샀다. 경찰이 시위대의 머리나 상체를 겨냥해 내리꽂는 방패에 맞은 학생들은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실려갔다.
특히 이날 경찰들의 폭력은 취재중인 기자나 거리에 있던 일반 시민들도 가리지 않았다.
오후 7시경 <디지털 말> 이준희 기자는 취재도중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전경들에게 기자증까지 꺼내들고 항의했지만 경찰들의 폭력은 계속됐다. 이에 이준희 기자는 "취재기자까지 이렇게 폭행하면 일반 시민들은 얼마나 폭행을 당했겠느냐"며 현장에서 강력히 항의했다.
취재 도중 경찰에 카메라를 강제로 빼앗긴 <오마이뉴스>의 김태섭 시민기자 역시 이에 항의하다 경찰이 휘두른 주먹에 얻어맞는 등 취재기자 폭행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에 서울시경 공보관실 관계자는 "일선 경찰에 취재 협조를 당부하고 있지만 경찰과 시위대가 직접 맞붙는 근접 시위에선 기자들의 안전 보장이 어렵다"면서 "만약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다면 확인해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후 7시 40분경 주최측이 마무리 집회를 진행하면서 대형 성조기를 불에 태운 뒤, 갑자기 시위대 속으로 뛰어든 경찰들이 방패를 마구 휘두르는 바람에 가까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일반 시민들까지 방패에 맞거나 밀려 넘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부시 미 대통령이 방한중이던 지난 2월 종묘공원에서 열린 반미 집회에서도 취재기자에게 집단 폭력을 행사하는 등 유독 반미시위에 대해 과잉진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 카메라에 잡힌 '취재기자 폭행' 장면 | | | |
| ▲ 이해할 수 없는 장면 첫번째 : 지나가는 김태섭 기자의 카메라를 경찰이 갑자기 낚아채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 이해할 수 없는 장면 두번째 : 디지털 카메라를 경찰이 뺏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 이해할 수 없는 장면 세번째 : 경찰은 이유없이 카메라를 빼앗겨 항의하는 김태섭 기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구타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권우성 기자 | | | | |
"의정부 중심에서 전국민적 투쟁으로"
이날 거리 행진에 앞서 오후 4시부터 종묘공원에서 진행된 5차 범국민대회에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도 2000여 명에 이르는 시민, 사회, 종교단체 소속 회원들과 한총련 소속 대학생 등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범국민대회는 줄곧 두 여중생의 죽음을 몰고온 의정부 미2사단 앞에서 진행됐지만 이번 대회는 7월 31일 고 신효순·심미선 49재를 앞두고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렸다.
특히 최근 국방부가 주한미군을 대신해 사건 무마에 나서 물의를 빚은 탓인지 이날 집회에선 우리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문정현 신부는 "미군에 의해 팔다리를 잃은 고 전동록씨의 장례식을 가로막은 걸림돌도 우리 경찰이었다"면서 "캠프 하우즈 폐쇄와 재판권 이양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범대위가 우리 정부에 보낸 공개서한에서도 "정부는 더 이상 미국 눈치보기를 중단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이번 사건을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며 △ 미군에 형사재판관할권 반환을 강력히 요구할 것 △ 부시 미 대통령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할 것 △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를 전면 개정할 것 등을 요구했다.
또한 부시 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는 "일본 오키나와 여학생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이 공개사과하였듯 살인사건의 미국 최고 책임자는 부시 대통령"이라고 강조하고 유가족과 한국민에 대한 즉각적인 사죄와 형사재판관할권 포기, 캠프 하우즈 폐쇄,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범대위는 7월 29일 예정됐던 한미공동대책 발표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한 최근 국방부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범대위는 이 논평에서 "대한민국 국방부가 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려한다는 국민들의 분노와 규탄에 따른 결과"라면서 "국방부는 이제라도 사대매국노의 행각을 중지하고 제 나라 국민의 생명을 옹호하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입장에서 미군당국에 사태해결과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 | "잘못된 언론 보도가 반미 여론 형성" | | | 주한미군 성명서의 '아전인수' | | | | 이날 주한미군이 낸 성명서는 한국 경찰이 방패로 휘두른 폭력보다 더 심한 '언어 폭력'이었다.
주한미군은 27일 이번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 주한미군에 대한 그릇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며 이를 해명하는 성명서를 내 눈길을 끌었다.
이 성명서에서 주한미군은 "사고 이후 주한미군의 진심 어린 슬픔과 사건해결 노력에 대하여 부정확한 보도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사실과는 다른 그릇된 여론이 한국 사회에 조성됐다", "모두가 마땅히 느끼는 분노와 슬픔이 언론의 잘못된 보도내용으로 악용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반미 여론의 원인을 언론 보도 탓으로 돌렸다.
또한 이번 형사재판관할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국 군인이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발생한 사건에 대해 군이 재판권을 보유하는 전통은 미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군사재판소의 형벌은 대부분 민간재판소보다 더 무겁다" 등을 언급, 사실상 주한미군측에 재판권 이양 의사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비췄다.
7월 27일 주한미군 성명서 전문
/ 김시연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