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 약사전의 꽃살문을 촬영하러 가자는 지인(知人)의 연락이 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지만 만사 제쳐두고 카메라를 챙겨 나섰다. 실상사는 언제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아내의 눈치를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진주에서 출발하여 산청, 함양을 거쳐 실상사가 있는 남원시 산내면까지 1시간 20분. 지리산을 끼고 계곡과 들판이 펼쳐지는 여정이 지루하지 않다. 워낙 날씨가 변덕스러워 산허리에 걸린 구름이 뭉쳤다 풀어지고 비도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칠선계곡이 있는 함양군 마천을 넘어서니 갑자기 전라북도 남원땅이다. 지리산 자락이 넓긴 넓은 모양이다. 백운산, 삼정산에 숨어 있던 너른 들이 갑자기 나타난다. 그 들판 한가운데 위치한 실상사. 산이기도 하고 들이기도 한 곳에 위치한 특이한 절이다.
실상사의 입구를 지키고 선 돌벅수의 미소
물이 잔뜩 불어난 람천을 건너려니 돌벅수가 알 듯 모를 듯한 얼굴로 손님을 반긴다. 오래 전 큰 물에 떠내려 갔다는 짝지 벅수를 그리워하는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람천을 건너면 부처의 땅이니 더러운 마음일랑 털어내고 가라고 꾸짖는 것 같기도 하다.
람천을 건너가면 또 돌벅수를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서 수염까지 흩날리는 할아버지 벅수는 사진집에서 자주 보았던 터라 반가웠다. 절 입구에 이런 돌벅수가 세워져 있는 것은 불교와 민속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실상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인 보광전(寶光殿) 왼편에 자그만 칠성각이 있는데, 칠성각은 본래 사찰의 전각 중 하단(사찰의 전각은 중요도에 따라 상단·중단·하단으로 나눈다)에 속하지만 실상사에선 특이하게 대웅전 바로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돌벅수도 그렇고 칠성사의 배치를 봐도 실상사는 민중들과 접촉이 활발했던 곳이 분명한 것 같다. 실상(實相)의 불교적 의미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이며, 평등과 불변의 이치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홍척국사(洪陟國師)가 당나라에서 선법을 가져와 이곳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선문을 열었을 때가 신라 말의 혼란기(828년, 흥덕왕 3)였기 때문에 창건 때부터 중앙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지방호족이나 민중들과 교류가 활발했을 것이다.
구산선문의 시발지, 사람과 가까이 있는 절
현재 실상사는 생명문화학교, 귀농학교, 인드라망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고, 현실참여에 적극적인 도법 스님이나 수경 스님이 계셔서인지 속세와 떨어져 깊은 산 속에 있거나 엄격한 분위기가 감도는 대부분의 다른 절과는 느낌이 다르다.
마당에서 고함치며 뛰어 다니는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매우 자유스런 분위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곳저곳 복원을 위해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한 것만 제외한다면 마음씨 좋은 옆집 할아버지 댁에 놀러온 기분이랄까.
분위기는 자유롭지만 실상사가 선풍의 중심 사찰로 굉장한 규모였다 것은 지금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동서3층석탑(보물 제37호), 백장암 3층 석탑(국보 제10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 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 철조약사불좌상(보물 제41호)등 많은 유적과 유물이 존재하며 1700년(숙종 26년)에는 전각의 수가 36동의 건물이 있었다 하니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가람이었을 것이다.
무뚝뚝한 부처님과 약사전의 꽃살문
그 많은 실상사의 보물 중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몇 호라고 국가가 지정해준 것들이 아니라 철불을 모셔놓은 약사전의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꽃살문이었다. 이 꽃살문 때문에 몇 번이나 실상사를 찾았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절 마당에 고개숙인 상사화, 울타리를 타고 넘는 수세미꽃, 그리고 요사채 뒷편 작은 연못에 오롯이 핀 연꽃도 아름답지만, 사람이 만든 약사전 꽃살문도 아름다운 것은 불심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부처님(약사전 철불)을 위해 목수는 자신만의 현병(賢甁·꽃을 꽂은 병)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웠을 것이다. 혹시 나에게는 무뚝뚝하게만 보이는 철불이 정성들여 완성한 꽃살문을 공양했던 목수에게는 자상한 미소를 보였을지 모를 일이다.
사진을 찍다 말고 손끝으로 꽃잎을 더듬어 본다. 나같이 때묻은 범부에게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약사전 꽃살문을 조각한 불심깊은 장인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한 송이 한 송이 완성할 때마다 한 걸음씩 깨달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을 그의 희열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