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부에서는 노동력의 부족과 영세한 농지를 이유로 대규모의 기업농과 첨단기계농을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 우리 농촌에서 정부의 투자와 장기저리대출에 의해 시도된 유리온실, 각종 영농기계화의 설비가 의도와 달리 그 판로와 이윤 창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군사용, 식품가공용, 단체급식용 등의 대규모 수요에 대해서는 아산간척지와 같은 대규모 기업농이 필요하겠지만 실제로 전국의 농지를 그와 같은 기업화하는 것은 많은 부담과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규모의 기업농과 함께 소규모의 농촌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지역별로 특성화된 농업, 지역의 생태환경자원과 연계된 관광, 문화, 휴양공간으로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다량생산으로 일관된 우리 농촌이 전국 어디를 가나 비닐 하우스로 대변되는 전천후 농업은 결국은 지역별 특성을 무시하고 어디를 가나, 그게 그거이고 생산되는 농산물의 품질도 별반 차이가 없다 보니 결국은 다량생산의 가격폭락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청난 투자와 채무를 지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각 지역의 농업이 초기에는 좀 재미를 본다 싶으면 전국에서 우르르 달려들어 몇 년 못 가 과잉 생산된 농산물들의 가격은 원가를 건져내기 어려워, 결국은 엄청난 돈을 들이부어 세워 놓은 농업시설들이 먼지에 덮이고, 그에 참여한 농가들은 채무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니 그동안 우리 농업은 함께 죽자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안은 소량생산입니다. 품질의 차별이 없이 전국 어디서나 다량으로 생산되던 농산물들을 각 지역별로 특산화 된 품목을 잡아 집중적으로 전문화시켜 품질로 어느 지역도 따라 올 수 없는 그 지역만의 전문화된 농업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참외하면 어디 참외, 수박하면 어디 수박…. 이런 식의 지역별 특성화된 농업이 분산될 때 문제는 지역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고품질입니다. 온천지역에서 지하수의 온도를 이용해 시도되는 장어의 양식, 고랭지에서 출하되는 한여름의 강원도 배추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그러한 품목의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지역의 기후나 토질,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일단은 가격경쟁이나 품질면의 경쟁에서 다른 지역보다 우월함을 갖게 될 때 우리 농업은 지역별로 분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마전을 띠고 생산자나 소비자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한 지금의 농산물 유통구조도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만 그것은 마을 단위의 협업이나 작목반 등을 통한 직거래가 주효하리라 예상됩니다.
농촌은 농사공장이 아니다
이미 우리 농촌에서도 이러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껏 소비자들에게 지역의 특산물에 대한 홍보와 인식이 충분하지 못한 입장입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앞서 말한 농촌의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역할 마련입니다. 지금처럼 눈에 띠는 곳마다 산자락을 깎아내고, 밀어내서 트랙터를 밀어 넣고, 건조기를 세우고, 정체불명의 공장들을 집어넣고 곳곳에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겨울이면 온통 나뭇가지마다 벗겨낸 비닐들이 덕지덕지 매달리고 소와 돼지의 똥으로 진득거리는 하수구가 된 개울에서는 농업은 오로지 농산물의 생산공장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것은 보다 많이, 땅 한줌이라도 곡식을 길러내야 하던 증산정책의 시기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이제는 다양해지고, 조금씩 품질 좋은 농산물을 골라서 사 먹는 도시의 소비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일본의 낙후된 산촌마을이 자신들의 계단식 논들을 오히려 고품질의 농산물과 옛모습의 농촌을 그리워하는 도시민들에게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전환시킨 생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개발경쟁에서 지형적으로 뒤떨어진 점을 오히려 새로운 활로로 마련하였습니다.
옛시골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깨끗한 개울의 반디와 논두렁의 야생화까지도 하나의 문화적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면서 새로운 살길을 찾아 나간 것입니다.
이러한 생태환경적이며,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그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넓히고 홍보의 좋은 방안이 됩니다. 지금 2000여 개에 달하는 각 지역의 축제나 문화행사들이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그 지역의 특성화된 개발 전략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듯합니다.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농촌의 모습, 그리고 그 비슷한 행사 내용들…. 이벤트사에서 주관하는 상품화된 축제의 모습들과 거기서 생산되는 지역농산물을 볼 때 도시의 소비자들이 무엇하러 먼길을 달려 그곳을 가야하는지가 의문스럽습니다. 차라리 가락동이나 경동시장에서 사는 게 더 싸고, 좋다는 말이 나오고 가수들 노래나, 댄스… 기껏해야 풍물로 이어지는 축제의 프로그램들은 고도로 전문화된 도심의 상업적 문화행사나 방송매체들의 연예프로그램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도시민들이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은 그런 현란한 춤과 노래가 아니며, 경동시장에 가면 널려 있는 그런 농산물들이 아닙니다. 또한 그런 행사들을 하나의 상품판매장으로 인식하는 현지민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심지어 산지에 가면 더 비싸다는 도시민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홍보하고, 대접하는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축제 때마다 자원봉사보다는 지역농산물 판매장에만 매달려 있는 현지 주민들의 단기적인 발상이 지역축제를 퇴색시키게 됩니다.
또한 관청에서 주도하는 대규모의 지역축제들은 참여하는 도시민들이 기대하는 정서적인 친밀감과 유대감을 주기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수천 명이 몰려들어 북적거리는 행사장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온 도시민들이 기대한 정감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도시민들이 농촌을 찾아오는 것은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아갔을 때 고향의 어머니처럼, 친척집처럼 사립문을 밀고 나와 다정히 반겨주는 그런 정감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농촌의 새로운 문화공간은 관청이나 정부가 앞설 문제가 아닙니다. 마을별로 조그맣게, 그리하여 몇몇으로 시작하여도 좋습니다. 그분들이 돌아갈 때 그곳이 단순히 농산물을 팔기 위한 백화점 홍보세일장이 아니라 우리들의 잃어버린 고향이며, 친척이며, 이웃임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많은 도시민들이 휴가 때마다 농촌이며, 산촌이며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서 만나는 것은 대목을 보려는 현지주민들의 바가지 상혼과 사람을 오로지 돈주머니로만 보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뿐입니다.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어디든 경관이 좋다 싶으면 외지인들이 들어서 장사판을 벌입니다. 식당도 만들고, 카페도 짓고, 모텔이나 펜션도 짓습니다. 그리고 몇 해 장사를 잘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하나의 유원지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면 그곳은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환경의 오염과 또다른 도시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듭니다. 장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장사판을 벌인 이들은 판을 거두고 또 그들이 망가뜨릴 곳, 아직 때묻지 않은 곳을 찾아 철새처럼 떠나고 남는 것은 현지주민들입니다.
수도권의 여름철 물놀이터로 이름을 냈던 청평, 대성리, 새터가 좋은 예입니다. 아무리 밤마다 현란한 네온을 밝히고 불야성을 이루어도 찾아오는 이들이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이제는 그런 불빛과 노래방과 술집을 찾아 먼길을 달려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농촌의 문화적 공간화는 철새가 아닌 텃새처럼 마을을 지키고 살아가는 주민들에 의해 주도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내 땅을 팔아서 몫 돈을 챙기기보다는 마을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과 건강한 애정을 지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규모 마을별로 일치된 생각과 실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협업과 공동작목, 그리고 전문화된 품질관리, 유통관리를 함께 해 나가야 하며 관청과 정부는 이를 위해 필요한 자문과 지원을 하여야 합니다. 지금처럼 대규모적이고, 단기적인 지원이 아니라 마을별로 다양화되고, 특성화된 지원체계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시골을 찾아오는 새로운 이들
지금의 농촌을 보면 그러한 생각들이 잘 일치되지 못하고, 조정해나가는 게 부족하였습니다. 이장협의회가 있기는 하나 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고 농협은 이미 대형의 기업화하여 농민들의 권익을 지키기보다는 이윤 추구에 치중되어 있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농촌을 위해 고심하는 이들이 늘고 있으며 시민들이 중심이 된 정책적인 전문단체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선 유기농을 기반으로 한 저농약, 환경친화적 농산물을 생산하는 팔당유기농본부와 같은 생산자 모임이 있고 이를 도시의 소비자와 연계하기 위한 한살림과 같은 생활협동조합이 각 지역별로 활발히 움직여 고질화된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소규모 직거래망이 준비되고 있으며 도시민의 귀농을 돕기 위한 귀농운동본부, 더불어 생명농업운동본부 등의 단체가 있으며 이 밖에 카톨릭 농민회를 비롯한 천주교, 기독교, 불교의 다양한 지역문화행사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마을 단위의 건강한 개발전략을 지원하기 위한 생태마을 만들기나 산촌마을 조성과 같은 마을 단위 개발 프로젝트가 마련되어 그동안 정부 주도의 대형화된 농촌개발정책과 개인의 상업주의적 개발 등에 대한 건강한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어 이를 관심깊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휴가철이면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거저 돈이나 흘리고 가는 횡재로 여기며 쓰레기 수거료 명목으로 공돈이나 받아내는, 곶감 빼먹기 식의 분산된 마음으로는 마을을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마을의 생태와 환경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며 그것을 토대로 마을을 하나의 농산물의 생산지이며, 동시에 소비자인 도시민과 생산자가 이웃으로 만나는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정동진이나, 동강의 경우처럼 단숨에 떼돈을 버는 욕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 곳으로 우르르 몰리는 도시민들을 그들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골고루 나누어 받아들일 수천개의 마을을 준비해야 합니다. 작지만 하나같이 아름답고 소중한 마을들을 말입니다.
이제 도시의 소비적인 문화와 삶에 회의를 느낀 젊은 세대들이 그동안 정년이나 노후에나 찾아오던 시골을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카페나 식당, 펜션이나 모텔과 같은 서비스업에 왜곡되고 있지만 적지 않게 튼실한 시골살이를 조용히 펼쳐나가고 있는 분들도 늘고 있습니다.
적게 벌고, 적게 쓰자. 그것이 우리가 소비지향적인 현대도시문명에 짓밟혀 사라진 우리가 잃어버린 시골살이을 되찾는 건강한 답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주저앉은 채 일어설 힘도 없는 우리 시골에 대한 순전한 안타까움으로 생각해 본 글입니다. 첨부된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