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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2000년 문화방송(MBC) TV에서는 드라마 <허준>이 방영되어 '허준 신드롬'이란 말이 생길 정도였다. 또 강서구청에서는 '허준기념관'이 건립되고 있다. 지난 7월 24일부터는 KBS-TV에서 <태양인 이제마>란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그런가 하면 <동의보감>이란 책 이름을 모르는 국민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의학에 대한 개념을 공부할 때 한의학을 빛낸 인물들과 한의학의 바탕이 된 책들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허준(許浚:1546∼1615)
허준은 조선시대의 의학자로 자는 청원, 호는 구암이다.
선조 7년(1575년) 내의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였으며, 많은 공적을 세워 서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선조 39년에는 의관 출신으로 가장 높은 숭록대부에 봉해졌으며, 죽은 후에 보국숭록대부에 추증되어 우리나라 의관으로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선조의 명에 의해 국가사업으로 편찬이 시작된 <동의보감>을, 편찬 시작 14년 뒤인 광해군 2년(1610년)에 허준이 25권 25책의 <동의보감>으로 완성하였다.
허준은 <동의보감> 이외에도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 등 여러 권의 책을 저술·번역하였다. 또 전염병 전문 의서로서, 매우 예리한 관찰을 토대로 편찬하였다는 점에서 탁월한 과학적 의서로 평가되는 <신찬벽온방(新纂벽瘟方)>과 <벽역신방(벽疫神方)>이란 저서도 있다.
허준은 의관으로서 치료에 능함은 물론 선조와 광해군의 두터운 신임과 의학에 대한 열정으로 여러 의서를 저술하고, 중국의 의서를 한글로 번역,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우리나라 의학의 학문적·기술적 발전에 큰 공적을 남긴 인물로 ‘동양의 의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에 '동의(東醫)'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다. 단순히 중국의 의학을 답습하는 차원의 ‘한의학(漢醫學)’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의학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크게 존경받을만한 인물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의 명칭은 허준 이후 '동의학(東醫學)' 또는 '동양의학(東洋醫學)', '한의학(漢醫學)'으로 쓰이다가 1952년 12월 16일 대한한의사협회(大韓韓醫師協會)의 설립인가가 나면서 공식적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에서는 1950년대에 '한의학(漢醫學)'을 '동의학(東醫學)'으로 고쳤다가 다시 이를 1990년대 초에 '고려의학(高麗醫學)'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제마(李濟馬:1838∼1900)
일반인들에게 이제마는 생소한 사람이겠지만 사상의학을 이론화한 사람이라면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조선 후기 의학자로, 호는 동무이다. 제주도에서 좋은 말 한 필을 얻는 태몽을 꾼 까닭에 이름을 제마라고 하였다 한다. 1892년 진해 현감이 되었다가, 다음해 사직하고 한양에 올라와 저술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저술하여 사람마다 기질과 성품에 차이가 있고, 그러한 차이로 말미암아 질병도 다르다는 사상의학을 제창하였다.
당시까지 한의학의 바탕이 되는 기존 이론을 접어두고, 질병의 발생이나 치료, 건강 섭생에 대하여 주역의 태극설인 태양·소양·태음·소음의 4상을 인체에 적용했다. 사람을 네 가지 체질로 나누고 그에 적합한 치료 방법을 확립하였는데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병의 증후보다는 체질에 중점을 두어, 각기 같은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처방을 체질에 맞게 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한의학에 큰 분기점을 만들어 주었다. 치료의 원칙을 종래의 음양오행설보다는 임상학적인 방법에 따라 환자의 체질을 중심으로 치료방법을 제시한 점에 의의가 있다는 평을 받는다.
사암도인( ? , 조선 후기)과 사암침법
몇 년 전 나는 사암침을 맞아 본 적이 있다. 맞기 전 치료실에서 들려오는 환자의 아프다는 비명에 아무리 침이 아프기로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새끼 발가락 끝에 사암침을 맞을 때 나도 모르게 비명이 질러졌다. 그러나 이 침은 중병에 대단한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 사암침법(舍岩鍼法)의 창시자가 바로 사암도인(舍岩道人)인데 사명대사의 수제자로 전해 오고 있다. 사암도인은 사암도인침구요결(舍岩道人鍼灸要訣)이란 책으로 비법을 전한다.
사암침법은 오행이론의 상극관계를 가장 본격적으로 도입한 보사((補瀉:원기를 보태주고, 나쁜 가운을 내보내는 치료법)의 침법으로, 사상의학과 더불어 민족 전통 의학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사암침법은 이론과 실제가 결합되어 완성도가 높고, 한의학이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동의보감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 선조의 명에 의해 허준·양예수(楊禮壽)·이명원(李命源) ·정작(鄭)·김응탁(金應鐸)·정예남(鄭禮男) 등이 이미 체계화를 이룬 한의학을 중심으로 동방의학의 총집성과 더불어 민족의학을 정립시키는 책의 편찬을 시작했다. 그 뒤 정유재란 등을 거치면서 중단됐다가 허준이 14년 뒤인 광해군 2년(1610년)에 25권 25책의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동의보감> 이전의 조선시대 의학은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의림촬요>를 중심으로 치료해 왔는데,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는 내용이 방대하여 활용하기 어려웠고, <의림촬요>는 너무 간단하여 치료 처방 응용에 미흡하여, 이들의 미비함을 보완한 것이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은 인체의 장기와 그 특징을 그린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라는 인체도로 시작한다. 옛 신선과도 같은 단순한 모습의 인체도이지만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인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세 가지 요소를 인간의 몸 속에 상징화한 도형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동의보감은 각 병 등을 중심으로 현대 임상 의학의 분류 방법과 비슷하게 크게 내경편((內徑篇: 내과), 외형편(內徑篇: 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비뇨기과), 잡병편(병리학, 진단학, 대증 치료, 구급법, 전염병과, 부인과, 소아과), 탕액편(湯液篇: 임상 약물학), 침구편(鍼灸篇: 경혈 부위와 침요법) 등 5개로 나누어 썼다.
그리고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병들을 우선으로 하고, 또 병의 증상에서는 그 원인, 진단, 처방을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배열하였다. 특히 그 처방이 자세할 뿐만 아니라 출전을 소상히 밝혔고, 곳에 따라서는 민간요법이나 자신이 체험한 비방을 붙여서 치료 효과를 높이게 하였다.
이 책은 단순한 임상의서가 아니라, 중국 의학의 기본 이론을 완전히 흡수한 다음 금나라, 원나라의 의학과 우리 의술 및 약재를 합하여 만든 의학서로 우리 겨레 의학의 종합편이라는 평을 받는다.
공상적 이론보다는 실용성을 중요시한 과학적 입장에서 80여종의 국내외 의서를 참고하여 편찬했기 때문에 내용이 풍부하다. 또 향약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이의 이용과 보급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위해 탕액편에 있는 향약 중 640가지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되어 우리의 의학 수준을 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된 책이다. 더불어 우리 의학을 중국에 대비해 '동의’라고 부름으로써 중국과 대등한 독립된 의학으로 인정받도록 했다.
또 이 책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민족 의학 사상, 향약 정책에 의한 민중 의학 사상, 양생법에 의한 예방 의학 정신을 담고 있는 하나의 사상서로도 평가된다 하겠다.
이 외에 우리의 한의학에서 치료의 바탕으로 여겨 온 의학서들은 중국의 <황제내경(黃帝內經)> <상한론> <의학입문> 등과 국내에서 발간된 <향약집성방> <본초강목> <의방유취> <방약합편> <동의수세보원> 등이 있다.
'한의학의 올바른 이해' 연재를 마무리하며
한의학은 우리 역사 5천년 동안 우리 겨레를 지켜온 우리의 의학이다. 서양에서도 연구하고 있는 이 우리의 의학을 스스로 미신처럼 생각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서양의학을 배격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소중한 우리의 한의학을 중심으로 양의학을 보탠다면 우리 겨레의 건강은 충분히 지켜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섯 번에 걸쳐 '한의학의 올바른 이해'를 연재했다. 나는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서 이 글을 쓰기가 참으로 조심스러웠다. 우리의 민족의학인 한의학을 혹시나 훼손시키지는 않을지, 혹은 정립되지 않은 이론을 성급하게 내놓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알지도 모르면서 오만을 떠는 것은 아닐지, 내내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한의학이 어제오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런 미신 같은 치료법이 아니다. 수천 년을 우리 겨레와 함께 하면서 수많은 임상경험, 연구를 토대로 이루어진 독창적이면서 효과적인, 그리고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의학임을 나는 확신한다. 따라서 부끄러운 수준의 상식에 더하여 책을 읽고, 자문을 받아서라도 대중들의 건강한 삶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음을 널리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한의학만이 대단한 의학이라고 외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국수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겨레 스스로 자기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를 바로잡아주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민족문화처럼 한의학도 우리 겨레가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문화임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자문과 교정을 해준 광주 경희한의원 문찬기 원장에게 깊은 고마움을 드린다.
덧붙이는 글 | <참고 사이트>
대한한의사협회 : http://www.koma.or.kr/korean/
한의114 : http://www.hani114.com/index.php3
명상한의학 : http://meditation.co.kr/goldencrow/goldencrow_frame.htm
OK medi TV / OK한방병원 : http://www.okmedi.net/hanmedi.asp
동양의학방송국 : http://www.dytv.co.kr/dytv/dongi/dongi1.asp
알기 쉬운 우리의 한의학, 대한한의사협회, 1993
즐거운 한의학 여행, 서울특별시 한의사회, 강서구 한의사회 편집위원회 편, 2001
한의학이란?, 문찬기(광주 경희한의원장),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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