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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인가.
근 6년여만에 다시 지하철을 탑니다.
귀향 이후 더러 서울 나들이를 했던 적은 있지만 지하철을 탈 기회는 좀처럼 없었지요.
출퇴근 시간의 가히 살인적인 붐비기는 여전합니다.
아비규환.


옛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도 없다
부처님 말씀에 극락과 지옥이 따로 없다더니
극락도 지옥도 세간에 있다더니
그 어른 말씀이 딱 맞다

아침저녁 경인선을 타 보라
아비지옥 규환지옥이 따로 없다
전철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모두들
인천에서 시청까지
신도림에서 종로까지 배달되는
수하물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단 한 발짝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단추가 떨어지고 바지가 찢겨지고
구두가 벗겨지고 코피가 터지고

사람살려밀지마라 사람죽는다밀지마라
내립씨다 내려요내려어
악 쓰고 비명을 지르고
숨이 넘어가도 전철은 달리고

짐짝들이야 부서지든 깨지든
부려야 할 역에 부려지든 말든
말없이 전철은 달리고.
(졸시, 경인선 전문)

20여년 전 인천에 살 때 1호선 전철로부터 시작된 전동차와의 인연이 일산선 지하철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었지요.
그리고 6년만에 다시 찾아가는 일산.
시간은 흘렀으나 사람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행렬의 맨 끝에 그녀는 서 있었다
오래 기다린 지하철이 들어오고
그녀의 눈빛이 순간
섬광처럼 빛났다

줄 앞 사내를 밀치고
등짐 진 여자 제끼고
지팡이에 매달린 노인을 걷어차고
메뚜기처럼 그녀는 튀어 올랐다

지하철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녀는 객차 안으로 날아들었다

만원의 지하철
간단하게
그녀는 빈자리를 얻었다

어려운 숙제도 알고 보면 손쉬운 법
누가 세상을 고단하게 사는가
이제 그녀는 지하철에서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졸시 '독사' 전문)

한참을 서서 가다 운 좋게 나 또한 자리를 얻었습니다.
모처럼 나온 도회지 공기가 낯설어서 일까요.
쉬이 피곤해지고, 고단한 잠이 밀물처럼 몰려옵니다.


등받이에 기대 곤한 잠들었다
구파발역 쯤일까
노인 하나 다가온다
노인은 눈을 흘기고
나는 꿈쩍도 않고

노인은 흠흠 목청을 가다듬고
달콤한 잠에 취해 꿈결인 듯 나도 음음
노인은 눈살을 찌푸리고
일어나지 마라 일어나지 마라
내 안의 노인은 속삭이고

퇴근 길, 운 좋게 종로 3가에서 자리를 얻었다
한시간도 넘게 서서 시달릴 걸 생각해 보라
기쁘지 않겠는가
마음은 경망스레 널을 뛰고
신문 펼쳐 부시럭 부시럭
책을 꺼내 뒤적뒤적

홍제역인가 아이 업은 여자 하나
자리 내놔라 두리번두리번
나는 눈길 한번주지 않고
여자는 비켜라 어서 비켜 눈치를 주고
양보 마라 양보 마라
누가 와서 멱살을 잡아도 양보 마라
내 안의 아이는 칭얼거리고.
(졸시 '일산선'전문)

화정역이었겠지요.
언뜻 눈을 뜨니 구걸하는 노숙자, 장애인, 앵벌이 아이들, 예수천국 불신지옥, 다들
여전합니다.
부끄러워라, 나 홀로 낙도에 숨어 들어가 편안히 살았었구나.
만물은 무상하다던데, 어찌하여 저들만은 무상하지 않은가.
눈을 감았으나 나는 다시 잠들 수 없습니다.
지하철, 지하철.....
혼자 값싼 감상에 젖어 심각해 있는데, 껌팔이 소녀, 표창 같은 껌 한 통
내 심장에 휙 던지고 갑니다.


어미가 없어도
아이들 자란다

일산선 지하철
누비며
껌 파는 소녀

발길에 채이고
살점을 뜯기고
추근 대는 사내놈들
가랭이도 걷어차고

껌팔이 소녀
쑥쑥 자란다
(졸시 '껌 파는 소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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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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