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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축제에 모여든 주민들
보길도 축제에 모여든 주민들 ⓒ 강제윤
장돌뱅이들은 또 어떻게 알고들 왔는지 이 먼 섬 구석까지 찾아와 난장을 벌여 놓았습니다. 천막주점, 떠돌이 혁필 화가, 번데기 장수, 오뎅, 닭꼬치 수레, 센베 과자 장수, 광약 장수, 붕어빵 장수까지, 제법 큰장이라도 선 것 같습니다.

보길도 사람들이 다 모이기라도 한 걸까, 운동장이 가득 찼습니다. 텃골 성희 오춘님도 벌써 여러 잔 하셨는지 비틀 걸음으로 지나며 아는 체를 하십니다.
"오춘 구겡 나오셨오."
"어야 그란디, 이거이 굿이랑가."
"그란갑쏘."

2002년 시월의 마지막 이틀 동안, 올해로 두번째인, '보길 윤선도 문화 축제"는 노래자랑 예선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마을별로 두 명의 대표들이 나와 치르는 예선, 부황리에서는 벽돌 공장의 상래 형님이 나왔습니다.

학철이 형님과 동서지간인 상래 형님은 고향인 광양을 떠나와 보길도에 정착한 지 2년 남짓 됐는데 이제 아주 보길도 사람이 다 됐습니다. 호남에다 로맨티스트인 상래 형님이 노래도 저렇게 잘하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상래 형님은 30명의 예선 참가자 중 열 명을 뽑는 본선에 무난히 진출했습니다.

정자리 대표로는 준구가 나왔고, 월송리에서는 성룡이 각시가 나왔는데 다들 가수 못지 않습니다. 마을 대표 가수들 노래를 들으며 나도 흥에 겨워 몸을 들썩이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칩니다.

"길구야."
"삼촌, 언제 왔오."
남표 삼촌이 다짜고자 천막 술집으로 손을 잡아끕니다. 백도리 이장인 외삼촌은 벌써 술이 제법 됐습니다.

남표 삼촌과 외숙모, 아내와 나, 그렇게 넷이서 도토리묵과 곱창 볶음을 안주로 소주를 마십니다. 옆자리에서 술을 드시던 영훈 삼촌도 합석을 합니다.

나는 술이 고팠던지 연거푸 몇 잔을 쉬지 않고 들이킵니다.
"낼은 멀 한답디야."
"노래자랑 본선하고, 마을벨로 장기자랑 한다드라. 낼 이 천막에서 백두 사람들이 점심을 묵응께 너도 이리 온나."

"맛있는 거 많이 준다우."
"돼지도 잡고, 떡도 하고 그랬단다."

"아까 보께 백두 대표 노래 잘 헙디다. 그 한복 입은 분이라우."
"그라디잉, 동네 헹님인디, 젊은 사람들은 불만이 많은 모냥이드라."

"왜라우, 구성지고 청이 좋든디."
"작년에도 나왔응께 올해는 젊은 사램들한티 양보했으먼 하는 게지."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하겠습니다.

노래자랑이 거반 끝나 가는지 천막 술집에 어느새 사람들이 꽉 들어찼습니다.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섬 마을 축제에 천막 술집이 세 개나 들어와 장사가 되랴 싶었는데 이제 보니 제법 장사가 됩니다. 그러니 이런 곳까지 찾아 왔겠지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었더니 천막 술집 주인은 인터넷 덕분이라고 합니다. 아들놈한테 어디 축제하는 곳 없는지 한번 찾아보라 했더니, 여기 축제를 알려주었다는군요.

자릿세는 따로 없지만, 끝나고 난 뒤에 약간의 청소비를 학교에 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섬까지 올 만하겠습니다. 요새는 장돌뱅이들도 인터넷 덕을 톡톡히 봅니다.

이제 노래자랑 예선도 끝나고, 초대 손님들의 공연이 시작됩니다. 품바의 각설이 타령, 전남 도립 국악원 소속 무용수들의 무용 공연, 초대 가수들 노래, 운동장은 어느새 아주 한판 큰 굿판이 돼버렸습니다.

등 굽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주름진 얼굴의 아주머니, 아저씨들, 처녀, 총각들, 남녀 노소 모든 보길도 사람들이 다를 일어나 흥겹게 한판 춤을 춥니다. 나도 아내도, 한데 어울려 어깨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보길도 축제의 밤이 깊어갑니다.

사실 작년에 처음 '윤선도 축제'란 이름으로 축제가 열렸을 때 나는 많이 못마땅했습니다. 수천만원이나 되는 아까운 예산 낭비해가며 쓸데없는 짓을 또 벌이는구나 싶었지요. 고산 윤선도란 이름을 내걸고 축제를 하는데 밴드 불러다 노래 자랑이나 하는 축제가 고산 윤선도하고 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었지요.

올해의 축제 역시 조선시대의 시인 고산 윤선도의 정신을 기리는 문화 축제라는 이름에는 값하지 못했습니다. 문화 축제에 문화는 빈약하고 오락만 풍성했지요.

주민 노래자랑이 주 메뉴고, 거기다 마을 대표 마라톤, 윷놀이 대회, 백일장 등을 약간 곁들인 진부하고 특색 없는 비빔밥 축제. 관광객의 참여도 거의 없는 그저 면민 단합대회나 면민 한마당 정도라 해야 맞을 축제. 만약 지자체에서 관광 상품으로 기획한 축제였다면 예산만 낭비한, 실패한 축제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올해 축제를 지켜보면서 나는 나의 의례적인 평가에 의문이 생깁니다. '보길 윤선도 문화 축제'는 지역 축제로서 과연 실패한 축제일까. 지자체마다 앞 다투어 만들어낸, 그런 류의 유행에 편승해 기획된 졸속 축제에 지나지 않으니 폐지돼야 마땅한 것일까.

축제의 과정을 지켜보고 축제에 더러 참가하기도 하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슬로건처럼 '고산의 넋을 온누리에' 퍼뜨리지도 못했고, 축제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도 실패했지만 나는 이 축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축제란 무엇입니까. 축제란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 모두가 즐겁게 어울려 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축제란 '보여 주는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왔습니다. 축제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많은 관광 수입을 올려야만 진짜 축제라는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왔습니다. 어쩌다 축제마저도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요.

지역 축제의 주체는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이지 결코 관광객일 수 없습니다. 지역주민들이 광대가 되어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되거나, 장사꾼이 되어 관광객들의 주머니나 노리는 축제라면 그것이 무슨 축제이겠습니까.

그도 아니면 지역 주민들마저 구경꾼이 되어 기획사에서 만들어준 행사나 구경하는 것이 어떻게 진정한 축제이겠습니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 자신이 즐기기 위해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하고, 만들어내는 축제, 그것이 진정한 축제일 테지요.

그런 면에서 이번 축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즐겁게 놀고, 자원봉사 청년들의 헌신으로 질서가 유지되고, 다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는데 그런 축제가 어떻게 실패한 축제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자체에서 축제를 위해 지원해준 예산 또한 관광 수입으로 환수되지 않았다 해서 낭비일 까닭이 없습니다. 그 예산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낸 세금의 일부입니다.

예산이 부정하게 쓰이지 않고, 다시 돌아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데, 그보다 더 좋은 쓰임이 어디 또 있습니까. 그것이 어찌 낭비이겠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그 정도 권리쯤 누리고도 남을 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가요.

보길도 축제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한판 굿, 잘 놀았으니 이제 바다로 들로 돌아가 또 일년 부지런히 일하겠지요. 그리고 내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분명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습니다.

'보길 윤선도 문화 축제'가 문화 축제라는 이름에 값하려면 지나치게 오락과 유흥에만 의존하는 소비적 행사가 돼서는 안 되겠지요. 외부의 밴드를 불러 노래자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고, 천막주점에서 술 마시고 춤추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나는 다음에 올 축제의 시간은 아주 소멸해 버렸거나, 소멸해 가는 보길도의 전통 문화를 복원해내고 전승해내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년에는 저 보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백도리 사람들의 자랑인 풍물이 공연되고, 예송리의 당제가 재연되고, 부용리의 민요들이 불리어 지는 한판 대동굿이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남의 문화를 바르게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지역의 전통 문화를 지키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국제적인 것처럼 가장 지역적인 것이 전국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내년에는 돈을 주고 악단을 사오고, 가수를 초청해오는 것보다는 보길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초대되어 자발적으로 공연하고 전시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평생 극장 구경 한번 못해본 노인들을 위해 야외 극장이 마련되고 아름다운 우리 영화나 연극도 상영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축제는 끝나고, 한 순간 열정에 들떴던 흥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다시 적막한 섬 마을의 밤입니다. 보길도 밤바다에 가을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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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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