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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후보단일화 협상에 착수하여 지지자들뿐 아니라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렇지만 성사가능성에는 반신반의, 아니 내심으로 '되겠어, 명분에서 이기려고 쇼하는 거지. 단일화 깨지는 것 한 두번 봤나'라고 체념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러는 가운데,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독주에 독주를 거듭하여, 마의 벽이라던 35%를 돌파하여, 40%로 돌진하고 있다. 반면 노, 정 두 후보는 20%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회창 대세론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적어도 비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절대절명으로 보이는 이러한 상황을 배경에 깔고 단일화 협상이 전개된 것이다.

노-정 연대는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

단일화 협상을 가로막는 이론적, 논리적 장애물은 거의 치워진 상태다. 정 후보는 애초부터 단일화하자고 주창해왔고, 그 동안 정체성과 철학, 정책과 이념의 차이를 이유로 단일화에 부정적이던 노 후보도 단일화를 염원하는 국민의 바람을 거스를 수 없다고 수용한 상태다.

노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마지노선이라던 국민참여 경선제조차 포기하고 여론조사에 의한 결정방식도 수용할 수 있다는 정말 진지하고 획기적인 전향적 협상자세를 보였다.

이제, 여기까지 와서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결렬은 양쪽 모두에게 치명타를 줄 것 같다. 결렬시 어느 일방에 힘을 몰아주자는 분위기보다 '새 정치하겠다는 젊은 정치인들도 예전에 많이 봤던 YS나 DJ와 별 다를 바 없구만'이라는 정치냉소만 증폭시켜, 본선에서 참패당할 것이 눈에 뻔히 보인다.

한번 발디딘 단일화 협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두 후보뿐 아니라 지지자들조차 단일화를 위한 마음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즉 양 진영이 어떤 파트너십을 가져야 대통령후보를 단일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우리 진영이 먼저 양보할 수 있다는 생각도 마음 한켠에 가져야 한다.

명분은 한반도 위기관리와 정치개혁을 위한 연대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노-정 단일화는 전혀 명분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필자는 이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노-정 단일화는 명분이 있을 뿐 아니라 절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에 반대하는 세력이 모인다는 '반창연대'로는 이 명분과 절박성을 설명할 수 없다.

노, 정 두 후보의 차이점, 특히 내정문제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필자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후보가 통합하여 하나의 당으로 단일화하기보다는,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대선시 정치연합으로 단일화 방식을 전개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럼 왜 두 후보는 연대를 해야 하나?

이유는 차기 정권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위기관리 및 해법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2003년 한반도에 위기가 오리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런데 2가지 국제정세가 이 위기의 도래를 필연시하고 있다.

첫째는 북한이 제네바 핵합의를 어기고 몰래 핵무기생산을 진행해왔다는 점을 스스로 고백했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 중간선거에서 초강경매파가 포함된 공화당이 행정부와 입법부의 양원을 완벽하게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 김정일 체제의 북한은 내년부터 체제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마지막 벼랑끝 외교로 나올 것으로 보이고, 힘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의 전면에 등장해 있다.

필자는 부시대통령과 미국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아도, 어느날 63빌딩에 납치된 비행기가 자살테러를 감행하고 선량한 시민들이 일상생활 중에 어디서 날라온지 모르는 총알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면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

테러에 대한 공포심과 응징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공화당의 압승으로 나타난 것이다. 역사적 인과관계를 따지기 전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국제공조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는 전혀 다른 안보환경에 놓여 있다.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외부세계와 격리된 미국은 외침의 걱정이 사실상 없는 반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200만 군대가 대치하고, 눈깜빡할 사이에 대포알이 상대의 수도에 꽂힐 수 있는 한반도는 안보환경이 미국과 전혀 다르다.

어느 정권이 미국과 북한을 상대로 위기를 해소하고, 평화정착을 이끌어낼 것인가. 어느 정권이 부시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반도 평화의 협력자로 협력을 받아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한국의 차기 정권은 단순히 일과성 안보위기를 관리하는 정권이 아니다.

다음 5년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통하여 축적된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1953년이래 지속된 전쟁체제를 실질적으로 마무리하고 평화협력체제로 발전하는 역사적 전환기가 될 것이다. 바로 이 과업이 노정연대를 주장하는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 이유는 정치개혁을 해내기 위해서다. YS와 DJ가 개혁을 내걸고 10년 통치했지만, 손도 못낸 분야가 정치개혁이다. 오히려 의원 빼가기, 날치기 통과, 돈 선거 등 악습이란 악습은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원내 다수당, 최근에는 원내 과반수 당이면서도 정치개혁에 관한한 민망할 정도로 의지도 실적도 보여주지 못했다.

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후 3번 다 민선정부의 말로는 비참했다. 임기말이 되면 그냥 레임덕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식물정권이나 다름없었다. 3김이후 시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특히 정치가 변해야 한다. 선거제도, 권력분립정신, 정당민주화 등 산더미 같은 과제가 놓여 있다.

두 후보는 정치개혁 과제 중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합의하고, 집권초기에 신속, 과단성 있게 실현하겠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차기정부는 취임 1년 2개월 뒤에 총선을 치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0개월이 못 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도 하지 못했던, 정치개혁과제를 위해 젊은 두 지도자의 연대는 절실한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후보단일화의 기준은 당선가능성의 최대화

이 시점에서 어느 후보로 단일화할 것인지는 국민지지율이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것이다. 정체성, 철학, 정책 등은 국민들에게 고려사항은 되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오는 여론조사 지지율에 모든 것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

이 지지율 판단에 있어 양 후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과정이 후보간 텔레비전 토론이다. 토론회를 거쳐 양후보의 철학, 정책, 리더십이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난 후의 여론 지지율은 여전히 가변성이 없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신뢰성 있는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것도 함정이 많다. 특히 한국처럼 지역주의가 바닥에 깔려 막판에 등장하는 선거 판에서 현상적인 여론조사를 금과옥조로 여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견지에서 선거구도에 대한 전략적 분석이 필요하다. 1강2중 구도로 가면 필패한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듯하다. 현재의 여론조사 추이는 금방금방 확인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잠재적 득표가능성에 대한 평가다. 이것은 분석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민이 있다.

그런데 몇 가지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2-3주간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이 10%에서 13% 정도 빠진 결과가 보도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 후보 지지자들이 노 후보로 오는 비율보다는 관망층으로 돌거나 심지어 이회창 후보진영으로 많이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즉 노 후보 고정 지지층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응집력이 있는 집단이라면, 정 후보 지지층은 민주당과는 거리가 있고 충성심이 약한 유권자가 많은 집단이라는 것이다.

현상은 정 후보의 지지율이 20%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노 후보 역시 20%를 전후로 정체상태를 보이는 점이다. 역대선거에서 무당파층은 점점 커지는 양상을 보여왔다. 정 후보가 설혹 몰락하더라도 10%대 초반으로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않다.

정 후보의 대폭적인 하락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보다는 오히려 이회창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는 현상은 충분히 주목을 받을 만하다. 노 후보가 20% 전후에서 맴도는 상황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노 후보의 득표확장력에 의문을 가질만한 상황이다. 노 후보는 집권당 후보이고, 국민참여 예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인 반면 정 후보는 단기필마의 미니당 소속 후보이다.

노 후보의 마지막 승부수는 정 후보와의 양자 텔레비전 토론일 것이다. 지난 봄 예선에서 이인제 후보와 대결했을 때처럼 제2의 노풍이 불면 노 후보는 단일후보로 성큼 다가갈 것이다. 반대로 토론 후에도 정 후보를 압도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팽팽하다면 많은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후보의 결단이 최상의 방안

텔레비전 토론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국민참여 경선은 시간상, 조건상 물 건너간 것 같고, 지금은 대의원 여론조사냐, 일반국민 여론조사냐 등으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제일 바라기로는 지지도가 화끈하게 차이 나 국민여론에 의해 단일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는?

필자는 지금 시점에서 후보단일화는 후보 자신의 결단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한, 설혹 국민여론에 의해 차이가 확연히 나더라도 노-정 연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연대의 과제와 명분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연대해서 단일화된 후보를 사퇴한 후보가 열성적으로 지원해주어도 본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DJP연대처럼 정권 한번 잡아보자는 목적에 사로잡혀 내각제개헌이라는 명분을 부도낸 그런 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양 진영사이에서 단일화 전과 후의 파트너십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는 예술이어야 하고, 민족과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 특히 87년 이후 우리는 그런 소박함 꿈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정치는 냉소와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국회의원과 정치지도자는 가장 욕 많이 먹는 직업군이 되었다. 이제 우리 정치에서 꿈과 희망을 다시 보고 싶다. 이 소망 앞에서 이번에 누가 되느냐는 필자에게 다음 번 관심사다. 두 후보 모두 국민의 소명만 받으면,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연부역강(年富力强)한 나이다.

그 동안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정치인들에게 너무 신물이 났다. 이제 내가 희생하면 나라가 잘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 정치인을 기대한다. 양 진영의 지지자들, 비 한나라당 유권자들도 텔레비전 토론을 본 후 단일화를 위한 국민적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노 후보도 내가 먼저 양보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하고, 정 후보도 내가 노 후보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두 후보만 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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