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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물의 모성애를 처음 구체적으로 접한 때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다니며 날개 밑으로 불러들여 품어주기도 하고 등으로 오른 놈을 마치 업어주듯이 하면서 극진히 보호하는 모성애의 그 평화로운 정경은 그전부터 익히 보아온 것이지만, 동물의 애끓는 모성애를 실감한 것은 집에서 염소를 기르게 되면서부터였다.

작은 옴팡집에도 한 옆에 충청도 사투리로 '모캥이'라고 부른 비좁은 공간이 있어서, 우리 집은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사다가 기르게 되었다.

그런데 염소 새끼가 들어온 날 밤, 우리 가족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끼 염소가 그야말로 밤새 애끓는 소리로 울어대기 때문이었다. 그게 어미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어린 나도 훤히 알 수 있었다. 새끼 염소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울음소리 때문에 쉬이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짜증이 났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그 후로도 새끼 염소는 이틀 정도는 더 주야로 어미를 찾았던 것 같다. 종래는 목이 쉬어서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끼 염소의 울음 때문에 잠을 설친 다음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오간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도 내 기억에 선연하다.

"에미 염소두 저렇게 밤새 울었을라나유?"
"아마 그렸을 겨. 더군다나 저 눔이 첫배 새끼라니께…. 새끼 뗀 경험이 있는 눔일수록 들 운다니께…."
"저 눔이 첫배 새끼라면, 그 에미 염소두 밤새 애끓는 소리루 새끼를 찾았을 테니, 그 읍마당 이씨네 집두 우리처럼 잠을 뭇 잤겄네유잉."
"그렸을 테지."

그때 나는 이상한 공포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끼 염소가 자라서 새끼를 낳게 되고 그 새끼가 다른 집으로 팔려가게 되면 또 한바탕 염소 울음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예감 탓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아침이면 염소를 끌어다가 풀밭에다 매어놓고 저녁이면 집으로 끌고 오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리고 점점 자라는 염소를 보면서 예의 그런 예감을 상기하곤 했다. 그것은 묘한 불안감 같은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염소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는 아카시아 잎이라는 것을 알았다. 토끼는 토끼풀(클로버)보다도 씀바귀를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질경이를 좋아한다는 것은 예전에 토끼를 기를 때 알았지만, 염소가 아카시아 잎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비가 와서 염소를 풀밭에 매어놓지 못하는 날도 걱정할 게 없었다. 근처에 흔한 아카시아 나무에서 두어 가지 쳐다가 염소 앞에 놓아주면 염소는 그야말로 좋아 죽을 양이었다. 아카시아 가시는 염소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후 우리 집 염소는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첫배 새끼들이었다. 어느 정도 자란 그 새끼들을 남의 집에 팔았을 때, 이번에는 새끼들을 찾는 어미 염소의 울음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치는 상황이 빚어졌다. 훤히 예상했던 일이 그대로 적중된 것이었다.

나는 어미 염소의 애끓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새끼 시절에 어미를 찾던 그 소리보다도 지금 새끼를 찾는 소리가 더 처절한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느낌, 그런 생각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중학생 시절에는 새끼가 있는 어미 개한테 봉변을 당한 기억이 있다. 결혼하여 제금나 가지고 신접살이를 하는 사촌형님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열려 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루 밑에서 개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뛰쳐나오더니 곧바로 내게로 달려드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렸지만 피할 새가 없었다. 순식간에 발목을 물려버리고 말았다.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던 형수가 다급하게 나와서 개에게 호통을 치고 빗자루를 휘둘러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하였지만, 개의 이빨에 물린 내 발목 아킬레스 부위에서는 피가 흘렀다. 눈물을 찔끔거리는 내 발목에 '머큐롬'을 발라주면서 형수는 개가 새끼를 낳아서 저렇게 사나워졌다고 말했다.

"개가 새끼를 낳으면 저렇게 사나워지남유?"
"그러엄. 누가 지 새끼를 해치거나 가져갈까봐 잔뜩 경계를 해가지구 저런다니께."
"그류이잉?"
"그게 다 모성애 때미 그런 겨. 동물들헌티두 모성애라는 게 있으니께…."

그때 나는 모성애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뇌리에 새겼던 것 같다. 개의 모성애를 최초로, 피부로 실감하고 확인한 셈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근처 수리조합(지금의 농지개량조합)장님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다가 기른 적이 있다. 우리 집과 수리조합장님 집은 200미터쯤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동안은 어미개가 하루에 한 번씩은 우리 집을 다녀가곤 했다. 잠시 집안으로 들어와서 제 새끼를 핥아주다가 돌아가곤 했는데, 신기한 것은 새끼가 쫓아나가면 다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따라오지 말라는 뜻인지 이상한 소리를 내고 돌아가는데, 그러면 강아지는 어미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있곤 하는 것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저 어미개가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새끼들이 있는 다른 집들도 하루에 한 번씩은 돌아볼 거라는 말을 했다.

이번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1년 뒤로 미룬 다음 집에서 놀던 시절의 이야기 하나. 지금은 어디에서도 까마귀를 보기가 어렵지만, 까마귀 떼를 쉽게 보던 시절이었다.

동네 친구와 산에 간 일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산에 나무하러 가는 일이 많았는데, 그 날은 지게를 지고 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게도 지지 않고 왜 산에 갔었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다.

꾀꼬리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모습에 취하여 소나무 가지 위를 살피다보니 까마귀 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까치집은 흔하게 보는 것이지만, 까마귀 집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우리는 호기심이 동했다. 까마귀 집에는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들이 있었다. 어미들이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까마귀 새끼들을 꺼내 보기로 작정했고, 곧 친구가 나무를 올랐다. 어미 까마귀들이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했지만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는 쉽게 까마귀 새끼 두 마리를 꺼내서 밑으로 떨어드렸다. 까마귀 새끼들은 어설프게 날갯짓을 하며 풀밭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리는 한 마리씩 집에 가지고 가서 재주껏 길러보기로 했다. 시커먼 까마귀 새끼를 한 마리씩 어깨에다 올려놓고 무슨 훈장이라도 붙인 듯이 가슴을 펴고 산모롱이와 논두렁길을 걸었다. 까마귀 새끼들은 사람의 어깨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가락에 힘을 주며 어미를 찾고, 어미들은 우리의 머리 위를 낮게 날며 야단이었다.

어미들이 계속 짖으며 쫓아오는 것이 기분 나빴지만 우리는 각기 헤어져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면서 보니 부모 까마귀 두 마리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까마귀 새끼를 우선 비어 있는 토끼장 안에 넣어 두었다. 어미 까마귀가 지붕 위에 날아와 앉아 짖어대고 울 안 마당에도 앉고 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 딴 짓에 열중했다. 아마도 태평하게 만화책을 보았지 싶다. 바깥일을 마치고 어두워서야 돌아오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토끼장 안에 까마귀 새끼가 있는 것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까마귀가 날아와 지붕에 앉아 울고 울 안 마당에도 앉고 하는 것을 본 아버지는 곧 빈 토끼장 안의 까마귀 새끼를 발견했고 내게 연유를 물었다. 그리고 내 실토를 들은 아버지는 내게 야단을 쳤다.

"얼릉 돌려주어. 지금 당장 까마귀 집이다 도루 갖다놓으란 말여. 까마귀가 시커멓게 생긴 짐승이어서 보기 흉헤갖구 아버지가 이러는 게 아녀. 사람헌티나 짐승헌티나 어린 것을 뺐거나 해치는 것이 가장 나쁜 짓이여. 그러구 저 까마귀는 안갚음을 허는 새여. 새끼가 자라서 으른이 되면, 늙은 지 부모 까마귀헌티 먹이를 물어다가 봉양을 허는 그런 새란 말여. 얼릉 도루 갖다 주어."

나는 토끼장 안에서 까마귀 새끼를 꺼내 들고 우선 밭둑 건너 친구네 집으로 갔다. 친구네 집 지붕에는 어미 까마귀들이 여러 마리나 있었고, 까마귀들 등쌀에 견디지 못한 친구도 새끼 까마귀를 들고 나오는 참이었다.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풀밭의 이슬을 차며 산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보다 나무 타기 실력이 좋은 친구가 또 나무를 올랐는데, 이번에는 한 손만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적이 힘이 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까마귀 새끼 두 마리를 모두 돌려준 우리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올 수 있었는데, 결국 그 일은 어미 까마귀들의 극성스러운 모성애를 실감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고, 더불어 아버지로부터 까마귀가 '안갚음을 하는 기특한 새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된 계기였다.

요즘도 나는 거의 매일같이 저녁 무렵 산행을 하면서 괜한 걱정 하나를 키우고 있다. 내가 다니는 백화산 등산로 초입머리, 마을의 맨 끝 집에는 외양간이 있는데, 그 외양간의 송아지 때문이다.

그 외양간의 어미 소가 새끼를 낳은 지 두 달이 넘어서, 제법 자란 송아지는 외양간 근처를 제멋대로 다니며 마른 고구마 줄기도 오드득 오드득 잘도 갈아먹는다.

송아지의 행동 반경이 넓어지는 만큼 외양간 안의 어미 소는 새끼에게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일같이 만나는 나를 알아볼 만도 한데, 내가 송아지에게 팔을 뻗치기라도 하면 어미 소는 잔뜩 긴장하는 기세다.

날씨 좋은 가을철 한낮에도 소 주인이 소를 외양간 안에다만 매놓고 있어서 내가 불만 섞인 의문을 표한 적이 있었다. 대답은 송아지 때문이라도 했다. 어미 소가 새끼에게 너무 신경을 쓰고 날뛰는 통에 다루기가 힘에 부쳐 그냥 하루종일 외양간 안에다 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미 소에게 그 송아지는 첫배 새끼라고 했다. 지금은 어미 소와 새끼 소 모두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외양간 앞을 지날 때마다, 특히 소 모녀가 함께 여물을 먹거나 나란히 앉아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는 한참씩 서서 넋을 놓곤 한다. 이 세상에서 그것처럼 평화스럽고 고즈넉한 풍경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 풍경에서 아늑한 평화를 느낄 때마다 슬픔 같은 불안감도 함께 커진다. 소 모녀에게 이별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침내 이별의 순간의 오고, 그리하여 어미 소와 새끼소가 각각 떨어져 살게 되면, 적어도 며칠 동안은 두 곳 외양간에서 애끓는 소 울음이 낭자할 것이다.

밤새 어미를 찾는 송아지의 음매 소리, 목이 쉬도록 새끼를 부르는 어미 소의 음머 소리는 사람의 애간장도 녹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것의 농도는 다르겠지만….

나는 어제도 저녁 무렵에 그 외양간 앞을 지나면서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새끼를 잃은 어미 소의 슬픈 눈망울을 보게 되리라는 생각 때문에 괜스레 다리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우울한 얘기 하나를 들었다. 이혼한 사람들 중에 자녀 부양비를 제대로 대주지 않는 사례가 늘어 점점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혼율의 급증과 함께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부모가 이혼할 때 자녀 부양권을 서로 확보하려고 싸웠지만, 지금은 자녀 부양을 서로 떠넘기려고 싸우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다가 자녀 부양을 떠넘긴 쪽에서 자녀 부양비마저 아끼려드는 현실이 첨가된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짐승보다 못한 짓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나쁜 것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저버리는 짓이 아닐까 싶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지나쳐서 오로지 자기 자식만 귀하고 자신들에게만 모성애 부성애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도 나쁘지만, 모성애와 부성애를 깡그리 저버리는 것은 정말이지 짐승만도 못한 짓일 것이다.

그런데, 모성애와 부성애가 지나치게 넘치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자식만 귀하고, 자신들에게만 모성애 부성애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의 명징한 사례를 무엇으로 잡아볼 수 있을까?

나는 늦게 결혼해서 아들녀석이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생각하면 그 세월이 금세였다. 그러니, 녀석이 군대 갈 날도 금세 닥쳐올 것이다. 아들을 둔 아비의 심정은, 벌써부터 은근히 걱정이다. 장차 내 아들녀석을 군대 보낼 일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4대 의무 중의 하나인 병역의무를 비킨 사람이 우리 집안(친족 외족 처족 모두)에서는 한 사람도 없으니 내 자식도 당연히 군대에 보내야 하겠지만, 성장한 녀석이 갑자기 자신은 병역을 거부한다고 할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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