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벌써 어스름 노을이 진다. 벌써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송년회를 알리는 소식이 들리며, 연하장을 생각하는 계절이다. 우리는 한해를 어떻게 보냈는가? 겨레문화,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은 얼마나 보였는가? 아무리 해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기만 한다.
나는 2년 전 이맘때쯤 전통무용가 이승희 선생의 전통춤 발표회를 보고 “진정 한국춤을 보았다”라는 기사를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발표회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생각을 나는 그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었다.
“내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동안 흔히 보아왔던 그런 춤이 아니었다. 나는 대금 소리를 끊일 듯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한'이 서려 있는 우리 문화의 진수라고 말해 왔다. 그런데 바로 이 이승희의 춤에서 나는 멈춘 듯 움직이고, 정지한 듯 춤을 추는 우리 문화의 진수를 또 한번 보고 있었다.
보통 춤이라면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요란스러운, 또 예쁜 동작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했던 내게는 완전히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다. 소위 민족문화운동을 한다는 내가 아직 우리의 춤을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이승희 선생이 2년 만에 다시 우리에게 춤사위를 보여준다. 12월 4일(수요일) 저녁 7시에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운학 전통춤 보존회 주최로 제2회 “이승희 전통춤 발표회”를 갖는 것이다.
이승희 선생의 춤은 이동안류로 구분이 된다. 우리의 민속무용은 여러 갈래로 발전되어 왔는데 서울, 경기지방의 전통춤의 명인이었던 고(故) 운학(雲鶴) 이동안 선생의 춤맥 또한 매우 중요하게 평가받아 왔다.
그동안 우리의 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해방 뒤 서양문화가 홍수같이 쏟아져 들어옴에 따라 빨라지거나 지나치게 기교 위주로 흘러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동안 선생은 속 깊은 자연스러운 춤동작으로 품위와 장중함을 잃지 않고, 특유의 역동성을 갖추어 승무, 태평무, 진쇠춤 등을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간직해오며, 평생 외길로 전승해왔다.
이승희는 이러한 이동안 선생의 한국전통춤을 사사하여 ‘이승희 전통무용 연구소’와 ‘운학 전통춤 보존회’를 꾸려 연구, 지도에 몰두하고 있다. 또 우리춤의 자연사상에 바탕하여 구도하는 자세로 내적인 깊이와 정신수양을 쌓아가는 가운데 하나의 춤사위로 승화되어야 진정 한국춤이라는 지론을 고집한다.
2년 전 발표회 때 그가 한 말을 상기해 보자
무념무상(無念無想)
자연에 몸을 싣고
세상의 명리(名利)나 욕심을 비우듯이
자신의 모든 관념, 생각도 잊고 다 비워가야 하는 세계.
이 말은 그의 춤세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에 공연하는 춤들을 살펴보자.
먼저 깊이 있는 호흡을 바탕으로 한 한국 원형의 춤사위로 구성된 전통무용의 춤본인 “전통기본무”를 춘다. 그리고는 고도의 예술성과 품격이 배어있는 한국 민속춤의 정수로 서울, 경기제 “승무”를 공연한다.
다음으로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추었던 것으로 한국춤의 신명과 역동성이 녹아있는 독특한 우리 춤의 하나인 “진쇠춤”을 선보인다. 그런가하면 내적인 감정을 절제된 춤사위로 표현하며, 깊이 있는 우리춤으로 구음이 따르기도 하는 소중한 전통춤 “엇중모리 신칼 대신무”를 춘다.
춤 이외에 소리로 읊는 정가인 가사(歌詞) “춘면곡”과 가야금, 해금, 대금 등 삼현육각의 악기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음악인 “시나위”의 찬조출연이 곁들여 진다.
우리는 요즈음 꽃다운 두 여중생의 미군 장갑차에 의한 죽음 때문에 통분해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 국민이 무시당하는 것은 우리가 힘이 없어서 라기 보다는 스스로 자존심을 챙기지 못하는데서 원인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그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자존심 찾기를 해야 하며, 그 자존심을 찾는 데는 전통문화, 겨레문화에 대한 애정을 굳건히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해본다.
따라서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에 우리는 진정 한국춤이 무엇인지 고뇌해보고, 더듬어보며, 가슴 속에 안아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기교나 화려함보다는 내면세계를 다지는 모습을 이승희의 춤사위에서 찾아내 보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꿈꾸어 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문의 : 이승희 전통무용 연구소(965-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