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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거실의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다가 말고 집밖을 여러 번이나 나가곤 했다. 신체의 장애를 겪으며 사는 암코양이가 나를 부르곤 했기 때문이었다.

장애를 겪는 암코양이가 우리 연립주택 현관에 와서 내는 야옹 소리는 나를 찾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가면 더욱 야옹 거리며 반가운 기색을 하기 때문이다.

녀석이 우리 집 현관에 다시 와서 나를 찾는 것은 대략 세 가지의 뜻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먹을 것을 달라는 뜻일 테고, 하나는 신체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일 수 있고, 또 하나는 내가 저를 각별히 귀여워해 준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를 보면 반가워하는 것이야 다른 놈들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내게 다가와서 내 다리 사이를 빙빙 돌며 몸을 비비고, 스스로 뒹굴고 하며 재롱을 부리는 놈은 어미고양이와 장애 암코양이뿐이다. 다른 놈들은 밥을 먹을 때나 내가 만져볼 수 있다. 밥을 먹을 때는 내가 손을 갖다대면 몸을 움찔했다가도 밥 먹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녀석들은 그러나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금세 현관 밖이나 구석으로 달아나 버린다. 하지만 어미와 장애 암코양이는 낯선 사람이 나타나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손을 갖다대도 몸을 움찔하지도 않는다.

다른 녀석들은 정말 밥 먹을 때 빼고는 내가 만져볼 수도 없다. 밥 주는 사람을 알아보고 조를 줄은 알면서 밥 먹을 때 빼고는 내 손도 피하니, 갓났을 때부터 사람 손을 접하지 않고 자란 반 야생 고양이의 습성이 아닌가 싶다. 그런 녀석들을 볼 때는 섭섭한 마음도 들고 때로는 밉살맞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녀석들이 볼 때는 의도적으로 더욱 어미고양이와 장애 암코양이를 안아주고 몸을 쓰다듬어주곤 한다. 그러면 어미고양이와 장애 암코양이는 몸을 뒹굴며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그래도 별 무 소용이다. 그것을 뻔히 보면서도 녀석들은 별로 부러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어미고양이는 여러 가지 노숙성으로 보아 사람 경험이 많은 놈일 테니 그렇다 치고, 장애 암코양이만이라도 내 손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 내게 엉기곤 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녀석의 그것은 형제들과는 좀 다른 성질을 타고난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몸의 장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사람 손에 더욱 의탁하고자 해서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여름 내 차에 치어 부상을 당한 후로 동작이 재빠르지 못해 사람 손에 쉽게 잡히곤 해서 사람 손을 많이 접한 덕도 있을 테고, 내 차에 실려 두 번이나 동물병원을 다녀오는 곤욕을 치른 것도 사람과 더욱 친숙해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녀석의 장애는 심각하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는 다리만을 다친 줄 알았다. 녀석의 몸을 살펴본 동물병원 의사는 다리뼈가 이미 붙어서 수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약간 절룩이는 상태도 자연 치유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수의사의 말대로 녀석의 다리는 괜찮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한쪽 뒷다리를 질질 끌고 다녔는데 얼마 후 다리 관절을 꺾고 앉고 일어서고 하며 다리를 끌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발이 문제였다. 발가락 관절에 손상이 생긴 듯 발바닥으로 걷지를 않고 발등으로 걷는 것이었다.

발등을 땅에 대고 걷는 걸음으로도 옥상에도 올라가고, 어느 때는 하루종일 보이지 않을 정도로 행동 반경이 넓다보니 자연 발등에는 상처가 생기고 검은 딱지가 앉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발등의 상처에서는 피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두껍게 앉았던 딱지가 얼마 후 떨어지고 나니 그곳은 군살이 되었다. 좀더 다행인 것은 녀석은 빨리 걸을 때는 발등을 대고 걷지만 화단의 부드러운 흙 위를 천천히 걸을 때는 발바닥으로 걷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 발톱은 여전히 무용지물이었다. 그 발톱을 사용할 수가 없으니 다른 놈들이 마음대로 재빠르게 나무를 타는 모습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녀석의 쓸쓸한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측은했다. 상황을 보아서 녀석만은 집안에다 들여놓고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섯 식구가 사는 23평 비좁은 집안에 고양이를 들이는 일을 과연 가족들이 동의를 해줄 것인가 지레 걱정도 했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집안과 집밖으로 나뉘어지게 된 고양이 가족 사이에 어떤 골치 아프거나 재미있는 일은 생기지 않을까, 괜한 호기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의 배변과 배뇨 장애를 알게 된 탓이었다. 녀석의 생식기와 항문이 차바퀴에 깔릴 때 밀려나온 탓인 듯 털 밖으로 조금 노출된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그것들이 장애를 유발한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녀석은 요도나 방광에 파열이 생긴 듯 오줌을 질질 흘리고 다닌다. 녀석이 앉았던 현관 바닥이나 신문지 위에 흐른 녀석의 오줌을 쉽게 볼 수 있다. 신체의 장애 때문인지 녀석은 다른 놈들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잠도 많이 자는데, 오래 자고 일어났을 때 보면 엉덩이가 흠뻑 젖어 있다. 그 젖어 있는 엉덩이로 마른 흙밭에라도 앉게 되면 엉덩이는 정말 지저분해진다.

더 큰 문제는 여기저기에다 똥을 흘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항문의 감각이 온전치가 않은 것 같다. 연립주택 난간 밑의 마른 흙밭으로 가서 배변을 하고 앞발로 흙을 긁어 덮는 때도 있고, 똥을 누기만 하고는 흙으로 덮는 것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현관 바닥에다 흘려버리기도 한다.

보통 똥 같으면 내가 부삽으로 치우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녀석은 물똥을 싸는 때도 있고, 생식기에서 질질 흐르는 오줌이 항문에 걸려 있는 똥을 적셔서 현관 바닥이며 계단 턱에다가 똥을 묻혀 놓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이쯤에서는 내가 녀석의 야옹 소리를 들으면 한창 글을 쓰다가도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 또 하나의 이유를 독자 여러분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녀석은 다른 놈들에 비해 집 근처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만 때로는 어디에 가 있는지 오래도록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나타나면 유독 야옹 소리를 많이 내는데, 그때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다음 엉덩이 상태를 살펴보고 현관 바닥을 살핀다. 녀석의 똥을 치우기 위한 부삽은 늘 현관 한구석에 세워져 있다. 물똥일 경우에는 별수 없이 양동이 물과 빗자루를 동원해야 한다. 집안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양동이로 물을 떠다가 혼자 현관 청소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하루에 세 번이나 그 짓을 한 적도 있다. 최선을 다해 현관의 청결 상태를 유지해야만 현관을 함께 사용하는 이웃들의 고양이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으니, 나로서는 기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올 가을부터 갑자기 겪게 된 나의 이런 이상한 업보가 한심스럽기도 하고 짜증도 나지만, 장애 고양이에 대한 미움은 솟구치지 않는다. 고양이를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럴수록 장애 고양이가 더욱 측은해지는 마음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이상하다.

고양이는 원래가 청결한 동물이다. 제 몸에 티끌 한 점만 묻어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노상 제 몸을 핥아 깨끗이 하기에 사람의 이불 속에서도 잘 수가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장애 고양이가 정말 측은하다. 다른 녀석들이 신나게 장난치며 뛰놀 때도 혼자 떨어져 앉아서 거의 노상 엉덩이와 생식기 부위를 핥는데도 청결 상태를 온전히 회복하지도 유지하지도 못하니 녀석도 상심이 크고 지치는 모양이다. 내가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녀석은 슬픈 기색도 완연한 것 같다. 그래도 녀석은 내가 제 몸을 안아서 꼬리를 쳐들고 밑을 살펴보고 하면 무엇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내가 보는 앞에서 더욱 열심히 생식기 부위를 핥는다.

내가 워낙 열심히 고양이들에게 신경을 쓰니 아내도 자연 관심이 갔는지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한배에서 난 고양이 새끼들도 얼굴이 다 다르네요. 그러고 보니 당신 말대로 다친 고양이가 제일 잘생긴 것 같네요."

새끼고양이들은 암놈 두 마리에 수컷이 한 마리인데, 그 형제들 중에서도 장애 고양이가 제일 예쁘게 생겼다는 것은 내가 일찍이 간파한 사항이었다. 그 장애 암코양이는 사람으로 치면 이제 이팔청춘 꽃다운 아가씨다. 그런 녀석이 지난여름 한 순간의 방심으로 (그건 내 실수이기도 할 테지만) 차바퀴에 깔리는 불운을 당해 한쪽 뒷발과 생식기 쪽에 심각한 장애를 입어 엉덩이가 노상 지저분한 상태를 면치 못하니,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측은한 일이다.

녀석이 내게 다가와서 다리 사이를 오가며 엉덩이를 비비려 할 때마다 내가 다리를 피해야 하니, 그것도 생각하면 참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배뇨와 배변 장애를 겪기야 할 망정 녀석의 식욕은 여전히 왕성하다는 점이다. 밥을 먹을 때 맛있다는 소리도 녀석이 제일 많이 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밥 먹을 때 내는 소리는 맛있다는 뜻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놈들에게 자신의 어떤 권리를 표현하는 소리인 것만 같다. 내가 저를 각별히 귀여워해 준다는 것을 녀석이 알고, 여긴 우리 집이야 하는 듯이, 일종의 텃세를 부리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재미있는 것은 밥을 먹을 때 다른 놈들이 장애 암코양이의 눈치를 살핀다는 점이다. 덩치가 큰 수컷도 장애 암코양이에게 제압을 당하는 듯한 본새다. 한 번은 내가 저녁에 조기 한 마리를 주었더니 동작 빠른 수컷이 잽싸게 물고 위협하는 소리를 지르며 구석으로 달아났다. 다른 놈들은 쫓아갈 엄두를 못 내는데 장애 암코양이가 쫓아가서 더욱 앙칼진 소리를 지르며 단번에 빼앗아서 물고 나오는 것이었다.

다른 놈들이 접근을 못하는 가운데 혼자 먹으려 하는 것을 내가 빼앗아 골고루 나누어주었는데, 그때 나는 가장 체구도 작고 신체의 장애들을 가지고 있는 암코양이의 그 위세가 참 의아했다. 다른 놈들이 녀석의 장애를 생각해서 보아주는 것인지, 녀석이 나를 믿고 일종의 텃세를 부리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인지, 하여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배 새끼가 아니면서 내게 와서 밥을 얻어먹는 놈은 수놈이다.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다른 놈에게 주는 먹이도 가로채기를 잘한다. 어제 저녁에는 동네 슈퍼에 가서 도넛을 사다가 녀석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어미와 다른 암놈은 번번이 수놈에게 빵 조각을 뺏기곤 했다. 하지만 장애 암코양이는 어림없었다. 순식간에 덤벼드는 수놈에게 앙칼진 소리와 함께 앞발로 방어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장애 암코양이의 그 장애를 방치하며 나의 이상한 업보를 계속 감수해야 할지, 다른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서산의 동물병원에 문의를 해보니 대전에 가는 길에 충남대 수의학과 병원에다가 고양이를 기증하라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기증'이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 기증의 뜻이 무엇인지는 수의학과 병원에 가봐야 알 수 있겠지만, 철모르는 어린것도 아닌 다 큰 녀석을 어미와 형제들이 있는 정든 곳으로부터 유리시킨다는 것이 왠지 썩 내키지를 않는다. 녀석이 계속 장애를 겪는 상태에서도 내가 밥을 주며 돌보는 것이 났지 않을까 싶다.

조금은 어떤 희망이 있는 것도 같다. 오늘 아침에는 녀석이 현관 시멘트 바닥에서도 발바닥으로 걷는 것을 보았고, 녀석을 번쩍 들어서 밑을 살펴보니 녀석이 꽤 애를 썼는지 생식기 부위와 두 다리의 털이 보송보송 말라 있었다. 밥을 맛있게 다 먹은 녀석이 화단의 흙밭으로 가서 배변을 하는 것도 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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