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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3, 24일 이틀 동안 펼쳐진 '이래수문학비 건립 10주년 기념 2002 태안문학 대축전'은 그런 대로 성공적인 행사였다는 것이 태안문학회 안팎의 평이다.
서산의 민태원 선생 생가지와 당진의 심훈 선생 고택, 홍성의 김좌진 장군 생가와 한용운 선생 생가, 그리고 태안군 근흥면의 이래수문학비를 둘러보는 24일의 '문학기행'은 태안문학회원과 가족들만의 행사였으므로 일단 논외로 치고, 23일 오전의 초·중·고 백일장과 오후의 문학강연, 그리고 저녁에 치러진 '문학의 밤' 행사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군내 10개 교(근흥초, 원북초, 태안초, 근흥중, 만리포중, 태안여중, 태안중, 만리포고, 태안여고, 태안고)에서 도합 163명이 참여하여 당일 아침에 제시된 '우리 고장 태안'. '나의 꿈' 등 두 개의 주제를 놓고 글짓기 실력을 겨룬 백일장은 학생들의 참여도와 전반적인 글의 수준이나 내용들을 놓고 볼 때 우리를 고무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매일같이 이런저런 공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많은 교사들이 잡무에 시달리고 있는 교단 현실을 감안하면 군내 각 학교들에 행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는 것이 사실 미안하고 저어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고장의 일개 문학회의 공문 따위는 얼마든지 무시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태안문학회의 협조 요청 공문과 행사를 알리는 신문 광고 또는 팸플릿을 눈여겨보고 학생들을 선발하여 백일장에 참여시켜준 10개 학교에 크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공주사범대학장을 역임하신 조재훈 시인님의 문학강연은 우리에게 큰 고마움과 죄송스러움을 갖게 했다. 문학강연의 기본적인 대중적 한계와 토요일 오후라는 시간적인 불리 등을 생각하며 우리가 걱정했던 대로 청중은 아주 적은 수였다.
백일장 심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일부 학생, 태안문학회원, 조 교수님의 공주사범대 제자들을 다 합해 채 30명도 되지 않았다.
그 적은 청중을 앞에 놓고 2시간 가까이 열강을 하신 조 교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주최측에서 제시해 드린 강연 주제인 충청지방의 작고 문인들에 관해 치밀하게 준비하신 노고도 크셨겠지만, 적은 청중 수에 개의치 않고(이미 훤히 예상을 하고 오셨겠지만) 진지하고 열렬하게 강연을 하시는 노(老) 교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숙연해지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 7시에 시작된 문학의 밤 행사는 백일장 시상식, 나태주 시인의 얘기 한 토막, 시낭송, 축하 노래 등으로 2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2시간이 넘는 문학 행사는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지방 문학 행사치고는 청중도 꽤 많아서 태안문예회관 소공연장 168석을 거의 채우다시피했는데, 백일장에 입상한 학생들과 부모들이 많이 참석해 주신 덕이었다.
그리고 고(故) 이래수 박사의 가족들과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어국문과 제자들이 경주와 서울 등지에서 대거 참석해 준 덕도 컸다. 먼 거리와 토요일 오후의 교통 사정을 무릅쓰고 행사에 참석해 주신 이래수 박사의 가족과 제자 분들께 특별히 고마운 말씀을 드린다.
백일장 입상자는 초등 중등 고등부 각각 장원 1명, 차상 2명, 차하 2명, 가작 4명, 장려 4명으로 도합 39명이었는데, 초등부 장원은 태안교육장, 중등부 장원은 태안문화원장, 고등부 장원은 태안군수의 이름으로 상장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지도교사 3명에게는 태안교육장의 표창장이 수여되었다.
행사장에 참석하여 고등부 장원 학생에게 시상을 하고 축사를 해주신 진태구 군수께, 그리고 시상식 후에도 두 시간이 넘는 행사를 끝까지 지켜보고 지하공간에서의 소연(小宴)에도 참석해 주신 이익창 교육장, 정우영 문화원장, 이용희 태안군의회 의원과 그 외 기관·단체장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시낭송에는 백일장에서 장원, 또는 차상을 차지한 3명의 학생과 8명의 태안문학회원 시인들, 그리고 만리포고 교장이신 변재열 시인이 참여하여 우리 고장에 대한 애향시들을 들려주었다. 문학으로 구현되는 향토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축하 노래에는 태안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는 이종환 교사와 태안국악협회 박명희 이용금 이복희(고수)씨가 무대를 장식해 주었다. 문학 행사에 기타 노래와 국악이 잘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 준 참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작은 고장에서의 대규모 문학 행사가 성공적인 모습이 될 수 있도록 협조를 해주시고 행사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공주에서 먼 길을 오시어 귀중한 말씀을 들려주신 조재훈 나태주 두 분 시인님께 머리 숙여 고마운 말씀을 올린다.
내가 고 이래수 님을 그리는 시의 한 부분에서 "사람들의 등뒤로 점점 멀어지는 불빛/문학의 희미한 광채 속에서"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문학의 가치는 결코 소멸될 수 없음을 믿는다. 사람들의 진지성을 담보할 수 있는 활자문학과 정신문화가 위축되는 상황일수록 반딧불의 광채만이라도 사수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더욱 크게 사명감을 끌어안게 될 것이다.
지방문단의 후미진 도린곁을 지키고 있을 망정 우리는 결코 문학의 가치와 사명감을 포기할 수 없음을 이번 우리 고장 초유의 대규모 문학 행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12월 6일자 바른지역언론연대 <태안신문>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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