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2년 12월 5일. 어느 중3학생이 일류 고등학교에 못 갔다고 자살했다. 또 4일은 한 재수생이 일류대에 못 갔다고 자살했다. 또 얼마 전에는 한 초등학생이 자기 방 가스배관에 목을 매달아 죽었다. 억지로 공부해야만 하는 입시경쟁 현실에 짓눌려 죽은 것이다. 초등학생이 죽기 몇 일 전에도 수능을 본 재수생이 점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12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끔찍한 일들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검정 고시생 처지비관 자살(2002.4.3), '공부 안한다' 아버지 꾸중에 중학생 목매 자살(2001.2.9), 성적비관 재수생, 어머니 앞에서 투신자살(1999.6.17), 성적비관 여고생 투신자살(1999.6.12), 서울대 낙방생 자살(1998.02.26), 죽음으로 내모는 입시 중압감 고교생들 잇단 사망사고(1997.3.19), 여중생 학업 압박으로 물에 빠져 자살(1996.3.15), 고교생 학교화장실서 분신자살 기도(1995.2.27), 성적비관 여고생 음독자살(1994.9.23), 3수생 대학진학 실패 비관 자살(1993.2.18), 중3 "공부하라" 꾸지람 아버지 찔러/말리는 어머니에게도 상처(1992.8.22), 고교2년생 학업부진 목매 자살, 여고생 15층 아파트서 투신자살 (1990.05.21)

90년 이후부터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한 해 한 개씩 제목만 뽑아본 것이다.

초등학생이 죽은 일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외 못 받아 성적부진'/초등학생 비관 자살(1996.11.6), 초등학생 학업 성적 비관 자살(1996.8.10 "초등학교 6학년 전 아무개 군이 목욕탕 문에 태권도 도복 띠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전군은 일기장에 '공부는 누가 만든 것인가. 우리 어린이는 왜 공부만 하고 살아야 할까'라는 글을 적어...), 여 국교생 친구 보는 앞 15층서 투신자살(1992.4.27), 서울로 전학한 여 국교생 성적비관 자살기도(1991.2.7) 똑같은 일이 올해에도 그대로 되풀이된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학생들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들 대입 낙방 비관 50대 주부 목매 자살(1996.1.28), 4수 아들 낙방 비관/어머니 목매 자살(1993.03.09), 딸 자살 비관한 교사 자살(1996.11.15 "대학 입시에 떨어진 딸이 자살한 것을 비관해 오던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까지 모두 더하면 학생들의 자살은 해마다 몇 백 건에 이른다. 교육부 조사에서는 초중고교 자살 학생 수는 98년 207명, 99년 188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96년 경찰청이 발표한 '자살자 통계'에서는 10대 자살자 수가 615명 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몇 백 명씩 학생들이 자살하는 가장 큰 까닭은 이른바 일류대학 가기 위한 '입시경쟁' 때문이다. 2001년 전교조가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학생들 74.8%가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입시·성적'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94년 통계청 조사에서는 청소년들 61% 정도가 '학업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록 학생들이 유서에 '입시경쟁' 때문에 죽는다고 적어놓지 않았더라도, 여러 통계를 미루어봤을 때 학생들을 죽게 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입시경쟁'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학생들의 죽음에 무관심한 사회

그러나 이토록 심각한 학생들의 죽음에 우리 사회는 무서울 정도로 관심이 없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는 학생들의 자살을 신문 사회면에 작게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몇 개 신문의 사설에서는 '학생들이 약해졌다', '학생들에게 삶의 존엄성을 알려주자' 같이 오히려 피해자인 학생들을 나무라며 문제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민들도 학생들의 죽음 앞에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50대 시민 고 아무개 씨도 "애들이 삶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렇다"며 학생들을 나무랐다.

심지어 학생들까지도 같은 또래 친구의 죽음에 냉소하고 있다. 95년 연세대 한준상 교수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입시로 자살하는 학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2.8%가 '비겁하다'고 대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대해 대학생 김고종호 씨는 '이 사회가 정상이었다면 학생들의 자살에 이토록 무관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사회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된다'고 혹평했다.

입시는 '죽음의 굿판'

죽음 않고 학교에 남은 학생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 자살한 학생들이 겪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점수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고, 선생님은 서열에 맞춰 차별대우한다. 이 서열이 고3때는 이른바 일류대를 갈 것이냐 못 갈 것이냐 판가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학생들은 죽기살기로 친구들과 경쟁하고 하루에도 10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 '문제집 암기'를 해야만 한다.

98년 경기도 청소년 상담실이 수원지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81%가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드러났고, 2001년 전교조가 전국의 인문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35.2%가 입시부담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땅의 학생들은 '죽음의 굿판' 위에서 살지 죽을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죽음의 입시경쟁' 속에서는 학생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고통받아야 한다. 96년 한국사회학회 가족문화 연구회가 92년부터 4년 동안 수험생과 그 부모를 조사한 결과, 수험생 자녀 뒷바라지 때문에 어머니들이 두통(80%)과 소화불량(64%)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들의 처절한 외침

요즘 두 중학생의 죽음에 온 나라가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해마다 끊이질 않고 벌어지는 학생들의 죽음에는 놀라우리만큼 관심이 없다. 나라 바깥의 적인 미군에 의한 살해는 이번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계기로 멈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 안쪽의 적, 몇 개 대학의 권력독점 때문에 계속되는 학생들의 자살은, 아무도 슬퍼하고 분노하지 않는 한, 쉽사리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분명히 2002년 12월에도 몇 명은 더 자살한 것이다.

70년대 전태일 열사는 이 땅의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자신의 몸을 불살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 고발했다. 마찬가지로 몇 십 년 전부터 계속되는 학생들의 죽음도 이 나라 교육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고발하는 처절한 외침이 아닐까? 이 땅에서 사람 죽이는 입시경쟁은 얼마나 더 많은 학생들이 죽어야 사라지게 될까?

입시경쟁의 근본원인 권력독점,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사라지게 하려면 일부 대학의 권력독점을 깨뜨려야 한다. 권력이 소수의 대학에 독점되지 않으면 어느 대학을 나오든 사회에서 차별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도 굳이 특정 대학에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입시경쟁이 사라지게 되고, 그것의 결과인 대학서열도 함께 사라진다.

몇몇 학벌의 권력독점을 깨뜨리려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홍훈 교수(연세대) 등은 공직자를 뽑는 고등고시에서 특정 대학 출신이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행정고시에서 서울대 출신이 30%, 연·고대 출신이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 대학 출신이 합격자의 10%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도는 20%, 2004년도는 15% 이렇게 단계적으로 비율을 낮춰나가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공직자할당제는 특정 대학의 권력독점을 해체하는 데 가장 쓸모 있는 정책이다. 고위 공직은 현대 관료제 사회에서 가장 입김이 센 권력이고, 공직자 선발과정은 정부 의지만 있다면 가장 끼어들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고시에서 특정 대학에 제한을 둔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기존에 퍼져 있는 학벌 패거리까지 손을 대기가 어렵다. 한 예로 옛날부터 만들어져 있는 서울대 출신들의 권력 패거리는 고등고시에서 '공직자 할당제'를 한다고 해도 한동안 힘을 쓸 것이 뻔하다. 그러면 '공직자 할당제'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되는 고시 지망생들을 뺀 대다수 학생들은 계속 서울대에 가려고 경쟁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 입시절차상의 평준화도 필요하다. 수능시험을 만점자가 수만명씩 나오도록 쉽게 출제하고 대학별 본고사를 엄격하게 금지하면, 만점자가 갈 대학은 자연스럽게 평준화된다. 김상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은 “점차 수능시험 만점자 수를 늘려나가 궁극적으로는 수능시험이 대학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만 가리는 ‘자격시험’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시 절차상의 평준화를 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과 프랑스다. 특히 프랑스는 대학을 파리1대학, 2대학, 3대학으로 부르고 있으며, 학생들은 바깔로레아(BAC)라는 대입자격고사에서 일정 점수만 넘기면 어느 대학이든지 갈 수 있다.

서울대 학벌권력 패거리에는 특별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앞서 말한 대안들로는 지금의 서울대 권력을 깨뜨리기가 어렵다. 서울대 이름의 졸업생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 서울대라는 권력집단이 새로운 후계자를 충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장회익 교수(서울대) 등은 서울대는 모든 대학의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고 언제든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만약 이것이 어렵다면 서울대 학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이안승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