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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에 근무할 때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죽음준비'와 관련된 강의를 마련하고 강사를 모신 적이 있는데, 어르신들의 반응이 냉담해서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노인이라고 맨날 춤추고 노래만 하면 안되지" 하시며, 교양강좌에 유난히 적극적이셨던 분들도 역시 마지못해 참석하신 듯 보였다.

건강하실 때 죽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면서 마음의 준비도 하시고, 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자리를 돌아보시라는 뜻에서 준비한 시간이었는데 무위로 돌아가버려 내내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이제 다 살았지, 뭐." "칠십 넘었으니 덤으로 사는 거야." "이만큼 산 것도 고맙지." 아무리 자주 말씀하셔도 어르신들께 죽음은 피하고 싶고 저만치 돌아서 가고 싶은 금기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젊은 우리도 마찬가지임을 숨길 수는 없겠다.

독일 출신으로 일본 생사학의 대부로 일컬어지고 있는 알폰스 데켄 박사는 가톨릭 신부이기도 한데, 이 책에서 생사학과의 만남으로 시작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남겨진 가족이 겪는 비탄의 과정, 돌연사와 자살, 존엄사와 안락사, 예술 작품에 나타난 죽음을 거쳐 죽음준비교육과 말기 환자를 돌보기 위한 호스피스 활동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특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죽음준비교육' 부분은 유아·청소년, 대학생·중년·노년으로 장을 나눠 소상하게 다루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을 사례로 들면서 차분하게 하나 하나 설명을 해주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가족과의 사별을 체험한 어린이들을 위한 죽음 준비와 비탄 교육, 어린이들의 장례식 참석의 의미를 담은 글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아이들의 애도의 경험까지도 어른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우리들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다. 아이들이 애도나 비탄의 감정을 적절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인에게는 죽음 연습으로, "만일 앞으로 자신의 수명이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는가"에 답을 써볼 것과 "작별편지 쓰기" 두 가지를 권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묘비명 쓰기, 남은 삶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 생각해 보기 등도 함께 해보도록 제안하고 있다.

특별히 중년에 접어든 내게는 '배우자를 잃기 전에 미리 받는 교육'이라는 소제목 아래 실려 있는, 배우자의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체크 리스트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다가왔다.

경제적 법률적인 문제점, 일상생활에서의 불편, 건강관리의 문제, 정신적인 면에서의 대응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부부가 각자 점검해 보면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은 "리빙 윌(Living Will)"이란 개념으로, 건강할 때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는 의사 표시를 해두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으로 한 평생 살다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그 또한 나의 의지에 따라 마무리하려는 적극적인 의사 표시인 셈이다.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 언제 올지도 모르는 죽음, 평균 수명에 비춰 봐도 아직 살 날이 더 많이 남았는데 죽음까지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되나. 아이구, 난 싫다 싫어. 그러나 죽음의 철학은 곧 삶의 철학이며, 죽음준비교육은 바로 이 땅에서 잘 살기 위한 삶의 교육과 다르지 않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 법, 어느 누구도 결코 죽음에 무관심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을 뿐, 정말 죽음이야말로 알고 싶은 것, 함께 나누고 싶은 절실한 화제가 아닐까. 이 땅에 와서 살다가 새로운 곳으로 다시 떠나는 여행길에 어찌 준비없이 나설 수 있겠는가.

다시 노인복지관에서의 죽음준비교육을 생각한다. 죽음준비라는 것이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돌아보고 보다 의미있는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나 역시 어르신들을 설득할 수 없었으리라. 강사에게 미안하고 어르신들께 죄송하다.

이렇게 책 한 권에서 나는 또 다시 배운다. 그러나 그 때의 그 어르신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다. 내게 다시 같은 기회가 올지는 알 수 없으나 준비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며 기다리리라 결심한다. 죽음준비도 하는데 다른 무슨 준비인들 못하겠는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SI TO DOU MUKIAUKA, 알폰스 데켄 지음, 오진탁 옮김, 궁리출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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