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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기사에서 권위적 간섭주의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했었습니다. 아마 기억이 잘 안 나시리라 생각하고 다시 설명합니다. 권위적 간섭주의는 '권위,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자유를 제한, 침해, 간섭하는 문제'를 말합니다. 쉬운 예로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뭐가 옳고 그른지 모르니까 잠자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권위적 간섭주의는 사실 모든 종류의 자유권 침해를 일컫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음...살펴보니 그리 좋은 뜻은 아니군요.

그러나 이러한 권위적 간섭주의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누군가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죠. 이럴 경우에는 자유가 제한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철저히 개인간의 관계에만 권위적 간섭주의가 개입해야 됩니다. 만약 이런 조건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우리의 자유는 제약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자에겐 벌을 준다.' 정당합니다. 그러나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마라. 학교 분위기 해친다.' 이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에 무스를 바르는 것은 결코 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 분위기와 같은 집단의 이익은 결코 권위적 간섭주의가 등장하는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개인의 자유 등의 권리를 보다 잘 실현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인데 집단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가 제약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것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지 결코 제약을 받으러 다니는 게 아닙니다.)

청소년이나 아동의 경우에는 권위적 간섭주의가 더 쉽게 용인되는데 그건 주로 "너희를 위해서야. 최소한 이 정도 간섭은 해줘야 너희가 행복해"라는 식으로 행해집니다.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복지를 위한 간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핏 보면 정당한 것처럼 보이고, 이 때문에 많은 부당한 간섭도 이런 복지를 위한 간섭의 가면을 쓰고 행해졌습니다. 선생님들이 말도 안 되는 걸 시키거나, 잔인하게 때려놓고서 '다 너희를 위해서야'라고 말하는게 그런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게 결코 우리의 복지를 위한 간섭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부당한 간섭일 따름입니다.

복지를 위한 간섭도 정당하지는 못합니다. 왜냐구요? 조금만 더 생각해 봐주세요. 인간에게, 인간다운 최소한의 생활 조건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생각해보셨나요?

인간에게 기본적인 생활조건이 필요한 까닭은 바로 인간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대로 행위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복지는 자유를 위한 전제조건이지만 자유를 제약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복지를 위해 자유를 제약한다면 그것은 수단과 목표가 뒤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권위적 간섭주의'는 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자유를 제약 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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