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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은 겨울이 더 춥다. 겨울이면 누구에게나 예외를 두지 않는 게 추위라 하지만, 2월 하순에서 3월 초순에 걸쳐 예정된 각종 주요 국가고시의 1차 시험에 목숨을 걸다시피한 존재가 그들이기에 지금의 강추위는 훨씬 춥게 느껴지는 듯하다.
그러하기에 겨울방학을 맞은 요즈음에도 대학 도서관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초에 새롭게 각오를 다진 이들이 많기 때문도 있겠지만, 지금이 방학임을 감안한다면 도서관에 붐비고 있는 인파들은 분명 낯선 광경이다.
열람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자리에 놓인 책을 보건대 대부분 고시생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기술고시, 외무고시 등 기본적 고시에 CPA, 변리사, 세무사, 금융자산관리사 등 새로운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시험, 여기에 유학준비파인 GRE 준비자들과 TOEIC 책을 보고 있는 일반 취업 준비생까지 있다.
대학생들이 이토록 고시에 몰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흡연실에서 만난 신모씨(27)는 졸업을 앞둔 대부분의 고학번 학생들이 가진 고민을 그대로 담아낸 말을 던졌다.
"솔직히 내 친구 중에는 고시에 눈도 돌리지 않고 구직 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 중에 제대로 풀린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 기업 취직이라는 건 남들과의 싸움 아닌가? 그 전쟁에서는 패배해도 자신이 왜 패배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시는 힘들긴 해도 나와의 싸움이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면 조금 더 돌아가더라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서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크게 증가해, '여풍'이라는 말까지 언론에서 인용될 정도였다.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증가한다는 말은 여성 응시자가 증가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문제에 대해 이모씨(24)가 던지는 말은 그 심각성을 환기시킨다.
"여성의 구직 문제는 더 심각하다. 최종면접에서 여성이 불이익을 받음은 이미 불문율이나 다름없다. 면접관 열의 아홉은 '결혼해도 계속 일할 수 있는가?' '육아를 대신 해줄 사람은 있는가?' 따위의 질문을 던지고, 같은 조건이라면 회사에 뿌리박고 일할 가능성이 더 높은 남성을 뽑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고급인력의 고시 응시 증가는 필연적이다."
즉 예전의 고시 열풍에는 '사회적 지위 상승'을 노린 젊은 야망이 자리잡고 있었다면, 최근의 열풍에는 여기에 '취업 시장의 구조적 불안정'이라는 중대 요소가 더해진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고시에 뛰어든다고 해도, 그 중 최종적인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들은 소수에 국한되어 있다. 매년 3만-5만명 가량의 고시생들이 사법고시를 치르고 그 중 합격하는 이들은 1000명에 그친다.
2만 9천명 이상의 인력들이 또 기약없는 도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1차 합격하면 2차 두 번 치를 수 있고, 2차 두 번 다 탈락하면 다시 1차를 치러야 하고, 그 가운데 3-4년은 기본으로 잡아먹는"것이 고시이다. 그러하기에 매년 숱한 '고시 중독자'가 양산되고, 사회적 활용 가치가 높은 고급 인력들의 무모한 낭비는 계속되는 것이다.
고시는 대학 입학시험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수직적 사회이동을 가능케 하는 양대 변수로 인정받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명문대학 합격이나 고시 패스는 '가문의 영광'이요 '학교의 명예'이며 '지역의 자랑'이다. 사회 구조 자체가 현재의 계급을 재생산하는 것에 보다 친밀함을 감안할 때, 이런 수직적 사회이동을 담보하는 기제가 있는 것이 나쁠 것 없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고시는 다른 취업전형에 비해 선발과정이 투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자신이 뭐가 부족해 떨어졌는지'알 수 없는 다른 전형에 비해 고시는 자신의 점수는 물론 최고득점자의 점수와 합격자 커트라인까지 공개된다. 뼈아프긴 하지만 수긍할 수 있는 것이 고시이기에 '부처별 자율 선발'도입은 많은 고시생들의 저항을 낳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시열풍은 부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다. 계급적 이동을 가능케했던 긍정적인 면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에도 각종 학원가와 고급 독서실이 밀집한 '평지'에는 부유한 수험생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수험생은 '언덕배기'로 밀려나고 있다고 한다. 매년 감동적인 합격수기를 낳던 '약자의 반란'도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로 인해 대학교육이 심각하게 공동화되고 있다. 서두에도 언급했다시피 중앙도서관은 더 이상 학문 탐구로 상징되는 '대학의 심장'이 아니다. 각 단과대학은 단대별 고시 합격자를 늘리기 위해 고시실을 설치하고 각종 지원금을 지급한다.
심지어 2차 준비생은 기숙사를 지급받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 자치활동을 위한 공간확보, 일반 학우들의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학부생의 연구열기 확보, 대학원생의 우수한 논문 발표횟수보다 고시 합격자 수가 '우수한 단대'를 결정짓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시생의 증가는 고급 인력의 낭비라는 점에서 국가적 손실이기도 하다. 선발 인원은 수년째 변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사법고시의 경우는 지금도 정원을 감축하라는 법조계의 로비가 존재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시장의 불안정까지 겹쳐 고시생은 계속 유입되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자질이 사회경제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현실은 분명 국가적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는 몇 십년째 고수해온 국가고시의 방법을 개선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물론 그 방법적인 면에 있어서는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 한다. 행정고시의 대안인 PSAT(공무원 인성 및 자질 적격시험)는 각종 이익관계의 충돌로 인해 계속해서 도입이 미뤄지고 있다.
그러나 시험방식, 선발방식의 개선은 피할 수 없는 조류이다. '수직적 사회이동'의 통로였던 전통적 가치의 보존, '구조적 취업시장 불안'의 점차적 개선, '지나친 암기와 주입 위주의 시험방식에서 탈피한 업무중심 시험으로의 전환'등의 핵심적 명제를 설정하고 이에 개선의 방식을 맞추어나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뉴스(www.unews.co.kr)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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