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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출판된 <한국 1950 : 전쟁과 평화>(나남, 2002)는 외국인들의 한국전쟁 연구라는 한계와 벽을 넘어 우리의 객관적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연구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저서이다. 이제서야 우리 스스로가 이념적,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한국전쟁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기반을 구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저자인 박명림 교수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소속으로 이미 1996년에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이라는 저서를 발표한 국내의 한국전쟁 전문가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을 자신의 한국전쟁 연구의 1부로, <한국 1950 : 전쟁과 평화>를 2부로, 그리고 앞으로 발표될 또 한 권의 저서를 3부로 삼겠다는 계획을 언급하였다.

이 책은 전쟁이 시작되는 1950년 6월말부터 1951년 1.4 후퇴까지의 기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의 각종 보고서와 군사 명령서 등의 자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한국전쟁의 진정한 성격을 규명하였다.

북한의 남침은 소련과 중국의 강력한 지지가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으며, 김일성과 박헌영은 조금은 성급하고 무모할 정도로 쉽게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결과로 북한은 무리할 정도로 빠르게 남진하였으며, 이는 보급로의 장거리화와 후방의 약화로 인해 반격을 허용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군과 미군이 북진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오만으로 인해 무모한 북진은 중국군의 전술에 말려 전면적인 후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책은 전쟁의 전개 과정 못지 않게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상세한 분석을 하였다. 남쪽과 북쪽 지도부 모두 후퇴하는 과정에서 민중들에게는 적극적인 저항을 호소하면서도 자신들은 비밀리에 탈출하는 반민중성을 보인 점, 후퇴 과정에서 이념적으로 다른 정치범들이나 저항 세력들을 대량 학살한 점,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반 양민의 학살, 노근리 사건으로 대표되는 미군에 의한 남북한 민중들의 학살...

결국 저자는 이 전쟁이 진정한 통일 전쟁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자신들의 체제를 강요하는 국가적 폭력이었으며, 이로 인해 오히려 분단은 고착화되고 양쪽 사회 모두 획일적 가치관을 지니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또 북한이 남한을 점령하고 있을 당시의 인민위원회 조직과 토지 개혁은 전쟁이라는 극한적 수단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낸 것으로는 너무나도 미약하고 비자발적이었음도 그 당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내용들도 연구를 통해 많이 밝혀 놓았다. 전쟁 전 미군이 철수되어 있는 상태에서 북한의 남침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고, 실제로 남북한 간의 국지적 교전은 계속되어 왔다. 따라서 북한의 남침이 이루어질 경우 국군은 어느 정도의 작전상 후퇴를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유엔군의 기습이 아니라 미국이 전쟁 초반부터 구상하였고 북한도 어느 정도 예측한 것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북한은 임진강 일대, 인천, 아산만 등지를 상륙 예상지로 정해 대비하고 있었으나 워낙 강력한 미군의 공격으로 패퇴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나마 사전에 어느 정도 대비한 관계로 인천 상륙부터 국군의 서울 수복까지 13일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국제공산주의의 연대를 부르짖던 소련과 중국이 막상 미국의 참전과 38선 이북으로의 북진에 직면해서는 각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치밀하게 계산하였다는 대목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련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고 하였으며 심지어 중국이 참전하지 않을 경우 북한을 포기할 생각까지도 하였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망설이다가 신생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안보 위협 때문에 참전하게 되는데, 소련은 그제서야 중국 공군으로 위장한 자국의 공군을 출전시키게 된다. 이 사건은 이후 양국과 북한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중국의 모택동은 자신의 아들을 참전시키는 결정까지 하면서(모택동의 아들은 전사함) 전신을 통해 중국군의 반격을 지휘하였고, 이 과정에서 김일성은 2선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계급의 논리를 앞세워 힘으로 통일을 이루려 한 북한의 노선이야말로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최대 실패임을 주장한다. 이는 분단의 위험에서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하여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한반도는 냉전 질서 대립이 가장 날카롭게 벌어진 경계선이었으며, 이는 극렬한 국내의 좌우 대립과 맞물려 결국 한쪽을 완전히 없애려는 한국 전쟁이라는 비극을 가져왔음을 설명한다. 냉전 체제 성립 이후의 첫번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양쪽 진영은 총력전을 발휘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남북 모두 쌍방에 대해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였고, 이의 최대 피해자는 남북한의 민중이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남북한 모두 객관적인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하여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또한 그 당시의 남북한과 주변 강국들의 관계를 인식하여 앞으로 전개할 국제적 외교 활동의 소중한 경험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성의 회복임을 책의 말미에 제시하고 있다.

대안의 제시가 약간 미약하고, 결론 부분이 좀 추상적이라는 단점도 보인다. 또 800페이지에 달하는 본문은 읽기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남북한의 화해를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주적인 통일 민주 국가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박명림 지음, 나남출판(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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