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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뒤적거리는 이유는 뭘까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적(?)을 알기 위해서? 저는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기에 여성을 적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읽을까요? 여성들을 연구하고 꼬시기 위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상대를 알아야 꼬실 수 있으니까요.

▲ 책표지
ⓒ 백년글사랑
"꼬신다"는 표현이 조금 거칠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표현을 좋아합니다. '꼬심'의 기술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열심히 갈고 닦는 노력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니까요. 사실 자신을 숨긴 채 상대방을 유혹하려고만 드는 건 '꼬심'이 아니라 '사기'죠.

진정한 꼬심은 상대방을 연구하는 것만큼 자신을 개방할 수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짧은 쾌락이 아니라 그 과정을 중시한다면 '꼬심'은 많은 대화와 강한 인내를 요구합니다.

제가 보기에 훅스는 남성들을 꼬시고 있습니다. 모든 남성이 아니라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남성들을 꼬시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여성들도 꼬시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해야 할 동지이지 적이 아니라며 열심히 꼬시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남성성이라는 페미니즘의 비전, 소년과 남성을 사랑하면서 우리가 소녀와 여성을 위하여 열망하는 모든 권리를 그들 또한 가져야한다고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비전은 미국 남성들을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다. 페미니즘 사상은 특히 우리 모두에게 삶을 살찌우고 긍정하는 방식으로 정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159쪽)

그렇죠. '성'만이 아니라 '계급'이나 '인종'에 기초한 차별 역시 현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별을 없애려면 남녀가 서로 연대해야겠죠.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간명한 범주에 집어넣음으로써 남성과 여성을 양극화하는 것은, 계급 상승과 가부장제 권력의 공유를 추구하는 페미니스트 여성"(153쪽)

훅스는 과감하게 내부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페미니즘을 라이프 스타일로만 받아들여 자기 자신과 기존 문화에 근본적으로 도전하거나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 페미니즘'과 백인 엘리트 여성들로 구성된 '파워 페미니즘'.

"그들은 자신의 이름에 단순히 페미니즘이라는 '브랜드'를 달았을 뿐이다. 페미니즘이 라이프 스타일이나 상품으로 재현되는 현상은 자동적으로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중요성을 훼손한다" (246쪽)

지은이 소개

지은이/ 벨 훅스 (Bell Hooks): 인종, 젠더.계급.문화의 정치학에 관하여 수십 권의 비평서를 집필한 작가이자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가이다. 미국 남부 흑인분리구역인 홉킨스빌에서 태어났다. 1973년 스탠포드대학 졸업후 산타크루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뉴욕시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Ain't l a Woman : Black Women and Feminism)>이 있다. 이 책은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선정한 지난 20년간 여성이 쓴 책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책에 꼽힌 바 있다.

옮긴이/ 박정애 : 1970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신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과, 인하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인하대학교와 국민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1998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후, 장편소설 <에덴의 서쪽>, <물의 말> 그리고 다수의 중.단편 소설을 선보였다.
'여성은 모두 다 진보적'이라는 말은 '노동계급은 모두 혁명적'이라는 말처럼 무모한 주장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즉자적'이냐 '대자적'이냐를 가지고 말싸움할 생각은 없습니다. 차이는 분명하죠. 관건은 현상을 유지함으로써 이득을 누리는 자가 누구인가, 기득권 세력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득을 누리는 세력은 고착되어 있지만 유동적으로 움직이기도 하기에 운동 역시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그들을 비판해야 하죠.

제가 페미니즘 운동을 훼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용을 하고 있다고 오해할지 모르겠습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함석헌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죠.

"말을 해주는 것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끼기 때문이다. 잘못과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는 것은 미리부터 그를 믿지 않음이요, 깔봄이요, 버림이요, 망하기를 바람이다. 그리고는 무조건 칭찬만 하면 그것은 권력에 대한 아첨이요, 저는 하는 것 없이 따라만 가겠다는 심리다. 큰일을 하러 나서는 사람일수록 옆에서 충고를 해주고 사정없는 비판을 해주어야 한다. 남이 능히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성의가 있는 반면 자신이 너무 지나쳐 생각이 좁아지기 쉽고 용기가 있느니만큼 또 고집이 있기 쉽다. 그리고 일이 되고 일반의 감사가 있으면 있을수록 들뜬 영웅심에 빠지기 쉽다. 혁명가가 거의 실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그의 동지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그의 싸움꾼이 되어야 한다."

훅스의 의도는 소위 '남성해방운동'을 비판할 때 잘 드러납니다.

"이런 남자들은 자기 자신을 남성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성차별주의의 희생자들이라고 정의한다. 그들은 엄격한 성 역할이야말로 자기들을 희생시키는 근원적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성성의 규범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에조차 그들은 여자들에 대한 자기네들의 성차별적 착취와 억압에는 별반 신경쓰지 않는다. 많은 점에서 남성 해방 운동은 여성운동의 가장 부정적인 면모를 그대로 빼어 닮은 것이었다"(154~155쪽).

분명히 밝히지만 이 책은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지향적인 페미니즘을 주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많은 페미니스트 여성들과 페미니스트 남성성을 가진 남성들이 함께 열어가는 것입니다. 이성애자만이 아니라 동성애자들도 함께 열어가는 차별없는 세상입니다.

'폭력'에 대한 훅스의 주장은 아주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제 하에서 폭력은 남성들의 독점물로 인식되어져 왔습니다. 훅스는 그런 '상식'을 반대합니다. 훅스가 보기에 폭력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만이 아니라 어린이에 대한 성인의 폭력, 동성간의 폭력을 포함합니다. 특히 훅스는 어린이에 대한 성인의 폭력을 문제삼으며 남자만이 아니라 여성도 어린이를 함부로 대한다고 비판합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우리의 문화가 어린이를 사랑하지 않고 어린이를 어른이 자기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는 소유물로 여기는 문화라는 사실에 주목하도록 만든 이 나라 최초의 사회 정의 운동"(164쪽)

새로운 내용들로 꽉꽉 채워져 있진 않습니다. 어디선가 한번 들었음직한 그런 얘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도 식상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대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강연이 아니라 대화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여성학이 하나의 학제로 정착됨과 동시에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대화는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훅스의 '말걸기'요, 대중에 대한 '꼬심'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성주의 운동은 '편한 삶'을 지향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건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을 머리 맞대고 의논하는 '힘든 삶'입니다.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고된 삶'입니다. 새롭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아는 '어려운 삶'입니다. 머리 속의 운동이 너무 편한 것만 쫓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Feminism is for everybody)>라는 원래 제목이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편안한' 개념으로 바뀐 것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리커버 특별판)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문학동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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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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