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한국연극을 성과를 돌아본다면
"언어 위주의 연극이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넌버벌(nonverbal)쪽에 관객이 몰리고 있다. 지금의 관객은 연극을 조용하게 보고, 언어를 통해서 메시지를 얻고, 그것을 자기 생활의 시금석으로 삼기보다 순간의 자극을 보고 듣고 잊어버리는 것을 즐기고 있다. 이것은 작년만의 현상이 아니라 근래 몇 년 동안 계속된 현상이다. 이것이 '상업극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이 성행하는 한 이유이기도 한다.
작년 이상우씨가 연출한 <거기>는 하이퍼리얼한 일상 생활을 보여주었고 그런 언어만으로 된 연극이 상당한 관객을 끌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연극이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그 원인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연극이 불황이다. 손님이 너무 안 온다. 어떤 경우는 출연하는 배우의 숫자보다 객석의 숫자가 적은 경우가 있어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 이유는 우리의 연극 인프라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번에 뉴욕과 시카고에 가서 연극을 몇 편 보았다. 너무너무 부러웠다. 연극을 하는 수준, 퀄리티가 대단히 높아서가 아니다. 이제 우리도 그 정도 수준은 만든다. 부러운 것은 연극을 즐기는 관객의 층이다.
그곳에서는 나이 많은 분들이 연극을 많이 본다. 도리어 젊은 사람의 숫자는 굉장히 적다. 연금을 타고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노인들이 부부끼리 아니면 친구끼리 온다. 그 숫자가 거의 객석의 7~80%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을 보고 '우리 연극도 정말 이래야 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온다. 하지만 객석을 차지하고 있는 관객층은 굉장히 다양해서 나이 드신 분들에서 젊은이들까지 있었다. 특히 나이 드신 분이 그런 생활을 즐기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은 정말 인프라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인프라가 구축이 안 되어 있다. 이것을 빨리 타계하지 않으면 '연극은 불황이다'라는 말이 앞으로 몇 십 년이 계속될지 알 수가 없다."
- 불황의 해결책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연극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연극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국민 전체의 정서에 연극을 본다는 개념이 없다. 우리가 2500년의 연극 역사를 갖은 서양 선진국과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머지않아 선진국에 들어간다는 나라에서 연극 관객이 이렇게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다.
2002년, 작년부터 연극을 일반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2년도에 150개 이상의 학교에서 특별활동이나, 선택과목으로 연극을 배우고 있다. 연극 교육을 돕기 위해 고등학생용 교과서도 만들었다. 2003년에는 중학교용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초등학교의 연극을 도입한 수업을 위해서 교과서류의 책을 번역 출간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내가 소장으로 있는 교재 연구소를 개소했다.
선진국들처럼 어려서부터 연극이 무엇인지 알고, 연극을 이용한 공부를 하고, 연극을 많이 즐기고, 연극이 재미있고 어떤 의미로든지 삶을 기름지게 사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 자라야 한다.
올해는 교육부에서 예산이 안나왔는데, 만약 2004년에 교육부에서 예산이 나오고 정부당국이 움직여서 우리가 애초 생각한 것처럼 유치원을 비롯해서 초, 중, 고등학교에 음악이나, 미술처럼 연극과목이 국민 공통과목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이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는 아마도 '연극이 불황이다'라는 말을 안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재미있고 유익한 연극을 만들 책임과 의무가 우선된다."
- 연극 교육의 효용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연극 교육의 효용은 말할 수 없이 많다. 실질적으로 연극을 지도한 선생님들의 말을 들었을 때 굉장한 문제아가 연극을 같이 함으로써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고 하고, 내성적이고 수줍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못했던 아이들의 자기 발표력이 좋아지고, 선생님이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한번 만들어봐라'라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창조적인 머리가 생긴다.
지금 대학입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입식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연극을 통해 뭔가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애들이 얼마만한 희열을 느끼는지 연극 교과목을 설치한 학교에서 실질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연도가 깊어지면 이것에 대한 실질적인 사례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런 통계가 직접 나와서 사람들이 보았을 때 설득력 있는 자료가 될 것이고 이것은 연극이라는 교과목이 개설 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 대학로 연극인들의 생활이 어렵다. 연극 교과목 설치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텐데?
"대부분의 연극인들의 생활 수준이 빈민 수준도 안 된다. 생활보호대상자 수준도 안 된다.
사실 연극교과목이 개설된 이유도 연극인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연극인들이 강사로 나가 강사료를 받아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먹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최초 출발점이다.
국악인들이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각 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치게 해서 국악인들에게 강사료를 주는 것으로 15억이 나왔다. 이것을 보고 연극도 그래야 한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다. 연극인 강사제도를 위해 문화관광부에서 5억원이 나왔다. 이것으로 각 학교에서 특별활동이나 재량활동 시간을 통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개설이 되었고 연극인들이 현재 강의를 하고 있다."
- 현재 공연되고 있는 연극의 대부분이 창작극이다. 이것은 각종 지원금 제도가 창작극 우선 순위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맞다. 나도 창작극 활성화 기금 심의를 하러 가면 '왜 창작극에만 지원금을 주느냐, 번역극도 좋은 것은 주어야 되지 않은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 개인적 의견인데 창작극 번역극 이렇게 나누는 것은 개인적으로 우습다고 생각한다.
나는 외국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우리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일단 번역은 그쪽 문화의 컨텍스트(context)로 옮겨가는 것이다. 내가 이번에 이윤택의 희곡 세 편을 번역을 해서 5월에 독일에서 출간한다. 베를린 연극제에서 이윤택의 작품 중 하나가 독해가 되고, 번역자로 거기에 가게 됐다.
그 작품을 번역할 때도 그랬지만 100% 한국 작품 그대로를 옮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내가 독일의 문화 컨텍스트를 알고 내가 한국인이니까 당연히 한국의 컨텍스트를 안다. 그러나 한국쪽의 것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단어 하나가 가지고 있는 커노테이션(connotation)이라는 것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긍정적 단어인데 독일에서는 부정적인 단어가 될 수 있다. 또한 색깔이라든지 사는데 있어서의 관습이라든지 이런 것이 독일로 옮겨감으로서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 한국과는 정 반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독일쪽의 컨텍스트로, 한국에서의 컨텍스트와 똑같이 맞는 것으로 옮길 수 밖에 없다.
그 말은 일단 번역된다는 것은 그쪽 문화로 전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은 번역극이라고 하면 번역극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한국적이지는 않지만 한국화 된 무엇을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번역극, 창작극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번역극도 우리 한국의 컨텍스트로 옮겼을 때 의미가 있고 좋은 것은 번역극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나 말고도 꽤 있다고 알고 있다."
- 좋은 작품들이 한번 공연되고 사장되고 있다. 레파토리 공연에도 지원금을 주어야 되지 않는가?
"그 문제를 가지고 작년에 연극 평론가협회에서 <연극지원제도> 심포지엄을 했을 때, 문예진흥원을 맡아서 발표했었다. 문예진흥원에 원래 '레파토리 활성화'라는 지원 항목이 있었는데 지금 없어졌다. 그런데 항목은 다르지만 레파토리로서 좋은 작품은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령 A라는 작품이 올해 공연이 됐는데 2~3년 지나서 또 공연될 때 그 작품이 2~3년의 시간만큼 업그레이드되었을 때 작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그런데 그 제도가 얼마만큼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는 진흥원 자체에서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어떤 작품은 굉장히 아까운 경우가 많다.
다른 문제는 몇 년 전에 공연된 작품이 레파토리화해서 다시 공연한다고 했을 때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했는데 업그레이드가 안되었다고 평론가로서 느껴졌던 경우가 프로테이지 상으로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연극인들이 지금 사람들이 호흡하는 것 보다 한발 앞서서 호흡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A라는 작품이 5년전에 공연했다가 좋은 작품이라고 해서 5년 후에 다시 레파토리화 해서 공연했을 때는 5년간의 세월이 작품 속에 들어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 문제는 지원금을 주는 각 단체와 연극인들이 잘 생각해서 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꼭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작품은 절대 사장해서는 안 된다."
- 연극계에서 대학로 정화운동을 하고 있다. 그것과 더불어 연극계가 대학로를 연극인의 거리로 거듭나게 할 청사진이 있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그렇게 될 지 모르겠지만 우리 연극계의 숙원사업이 있다. 뭐냐하면 방송통신대학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대학로 전체를 문화예술 특구로 만드는 것이다. 민자를 유치해서 일정기간 운영한 다음, 민자 유치한 자금이 다 회수되면 소위 본전이 되고 나면 그리고 어느 정도 이득을 보고 나면 그것을 정부에 환원하는 것으로. 그렇게 해서 이 대학로 전체를 정화운동과 함께 진정한 문화예술 특구로 만들려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 2003년 한국 연극을 전망한다면?
"글쎄, 결국 2002년과 거의 같다고 본다. 1년이 지났다고 해서 뭐가 갑자기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관객이 너무 편파적인 연극보기를 하지 말고, 언어극, 뮤지컬, 넌버벌 뭐가 되었던 간에 다양한 장르를 다녀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마도 장르의 해체가 점차 심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무용을 보더라도 드라마가 없는 무용이 거의 없을 정도이고 연극도 춤을 비롯해 굉장히 많은 장르가 들어가 있다. 차차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유럽에서는 언어극에 대한 향수 때문에 다시 언어극을 즐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재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21시간 공연인 <파우스트>를 일주일 내내 저녁마다 3시간씩 보러 다닌다. 그래서 너무나 자극적인 신체위주의 연극에서 다시금 언어쪽으로 돌아가려는 현상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를 다 해봐야 한다고 본다. 언어도 해보고 신체위주의 연극도 해봐야 한다. 어느 것을 꼭 해야한다는 생각은 아니고 어떤 연극이던 간에 퀄리티가 있는 연극을 한다면 관객은 보러 간다고 믿는다."
- 한국 유일의 연극잡지 <한국연극>의 편집주간이신데 2003년 <한국연극>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한국연극>은 만들기 힘들다. 내가 주간을 하고 있지만 과연 잘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굉장히 고답적이고 퀄리티가 있는 수준 높은 것도 만들어야 하는 반면,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어하는 고등학생들의 입맛도 맞추어야 된다. 그래서 다양한 층위로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연극인들은 연극인들대로 자기네들이 많이 잡지에 소개되기를 바라고, 학문쪽에 있는 분들은 유일한 연극잡지이기 때문에 학문적인 것도 나왔으면 하고, 외국에 가기는 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외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연극을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외국연극정보를 주기를 원하고, 그런 다양한 입맛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잘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