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 때 청나라에 대한 북벌의지를 실천에 옮기려고 했다가 김자점 일당이 청나라에다 밀고하는 바람에 벼슬에서 물러나서 이곳으로 낙향하여 살았던 송준길의 옛집인 동춘당에 봄이 오는 기미를 엿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동춘당엔 봄이 당도해 있지 않았습니다. 사랑채와 가묘 뒤안에 있는 3~4백년 묵은 영산홍은 아직 그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지 않고 칩거 중일 뿐이었지요.
혹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조선시대 최고의 園林(원림)이라는 소쇄원에 가보셨는지요? 광풍각, 제월당 같은 아담한 정자가 서 있고 애양단 담장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맑은 계곡물, 그리고 그 계곡을 건너가는 대숲 사이로 위태로이 걸린 다리라는 뜻의 透竹危橋(투죽위교). 어느 것 하나 취하고 버릴 게 없는 참 빼어나게 아름다운 정원이지요.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당신은 어쩌면 정원이 없는 동춘당의 단조로움에 무척 심심해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당신은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곧잘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의미 밖에서 의미를 찾아내곤 했었다는 생각이 납니다.그나저나 왜 항상 봄 같으라는 堂號(당호)를 가진 이곳 동춘당에는 저 소쇄원처럼 멋진 정원이 없는 것일까요? 봄이 깃들 마땅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는 것 일까요?
오늘도 동춘당은 그런 의문에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단정하게 앉아 있을 뿐 입니다. 균제미와 애써 치장하지 않지만 단아한 모습. 아마도 조선의 강골 선비 송준길의 기품이 이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얼핏보면 쓸쓸하기까지 한 이곳에 행여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비정신이 아닐런지요?
동춘당에 없는 것은 정원 뿐만이 아니랍니다. 이곳엔 아예 굴뚝 조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십장생이나 매난국죽이 아롱 새겨진 황후의 침전이었던 경복궁 교태전 후원 아미산 굴뚝 보셨지요? 화려함에 걸맞게 그 높이마져도 煙家(연가)를 제외하고도 260cm나 된다는 굴뚝. 그 굴뚝에서 쑥대머리처럼 헝클어져 흩날리던 것은 단지 굴뚝 연기 뿐이었을까요? 어쩌면 황후의 고독은 너무나 심오해서 길고 오랜 연소의 과정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왼쪽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연기 구멍을 내 놓았을 뿐.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 조차도 부덕한 행위로 여겼기 때문에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검소하게 사는 선비의 금도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지요. 화려한 정원이나 굴뚝 따위가 없어도 마음이 넉넉한 사람에겐 결코 공허감이 깃들지 않는 법이라는 걸 생각합니다. 지나친 치장이야말로 자신의 비천함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을.
작년 가을 이 동춘고택 사랑채에 한식집이 생겼습니다. 동춘당 선생의 14대 종손인 송윤진씨는 호구지책의 한 방편으로써 한식집을 열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문화재 보호라는 공익과 개인의 재산권 행사라는 사익이 충돌하는 현상은 비단 이곳 뿐만이 아니지만 참으로 쓸쓸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씁쓸한 심회를 애써 다독거려가며 송씨 가묘로 발길을 옮겨봅니다. 이곳엔 不遷位(불천위)인 동춘당 송준길을 모신 송씨 가묘와 고조부모,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4대 봉사를 모신 사당인 별묘가 있는 곳이랍니다.
불천위란 보통 4대조까지만 제사를 모시나 나라에 공이 크거나 가문을 빛낸 이들인 경우 위패를 물리지 않고 제사를 계속 지내는 것을 말한답니다. <용비어천가>는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 새 꽃 좋고 여름 하다'라고 얘기합니다. 저기 사당 한켠에 우뚝 서 있는 측백나무 한그루 보이시지요? 소나무와 함께 선비의 절개와 고고한 기상을 상징하는 나무인 저 측백나무를 바라보노라면 마치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냈던 선비 송준길의 옛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그가 생애 내내 관심을 쏟아부은 것은 예학이었습니다. 당시의 무너진 정치사회적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윤리질서의 확립이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념 결핍으로 삶의 가치에 혼돈을 겪고 있는 오늘날 효종 때의 선비 송준길이 살았던 별당인 동춘당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검소하게 살라. 자신에게 엄격하라. 그렇게 사는 것만이 삶이 안겨주는 공허를 이겨낼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