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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 그 영원의 소리'(종묘제례악, 가즌회상 완주공연)의 포스터
'한국음악, 그 영원의 소리'(종묘제례악, 가즌회상 완주공연)의 포스터 ⓒ 국립국악원
많은 이들이 국악은 고리타분하다고 한다. 특히 궁중음악은 더욱 그렇다. 실제 그럴까?

“어제까지 꽝꽝 얼어붙어 조용하기만 하던 작은 폭포에서 물소리가 난다. 하도 반가워 한참 동안 마주서서 그 소리를 듣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물 흐르는 것이 참 기특하다 싶어서다. 그러다가 얼른 생각을 돌린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기특하게’ 여기는 나의 방자함이 자칫 봄의 행차를 늦추지나 않을까 하는 아이 같은 염려가 슬쩍 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봄은 이렇게 올 것이다.”

이 내용은 수필집에서 퍼온 글이 아니다. 국악을 좋아하는 나도 생소한 생소병주 <수룡음(水龍吟)>이란 국악을 소개한 글인데 국악방송의 편성제작팀장인 송혜진씨가 펴낸 <국악, 이렇게 들어보세요>에서 내 눈에 퍼뜩 들어온 글 중의 하나이다.

느직하고 한가롭게 들리는 이 <수룡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 변화도 거의 없을 만큼 상당히 어렵고 지루한 곡이다. 국악 중에서도 우리가 쉽게 들을 수 없는 그런 민속악이 아닌 정악곡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글을 읽은 뒤 매력을 느껴 마음먹고 감상해보았다. 한데 들어보니 정말 감칠맛이 난다. 이런 훌륭한 음악을 왜 내가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전에 나는 그 어렵다는 궁중음악 중의 하나인 “수제천((壽齊天))”에도 도전해보았다.

처음엔 그저 졸리기만 하던 것이 이젠 제법 맛을 느끼게 되었다. 첫인상에 끌려 좋아할 수도 있지만 자꾸 접하다보니 좋아지는 것이 있고, 또 그런 것들이 더 깊이가 있게 마련임을 인간관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우린 궁중음악에도 한번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통음악을 일상적인 삶에 융화시킴으로써 겨레 음악문화를 올곧게 전달하고 있는 국립국악원(원장/윤미용)은 올해도 변함없이 전통음악의 맥을 꿋꿋이 이어 가려고 시도한다.

새봄을 여는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첫 무대는 2001년 유네스코로부터 인류구전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영원의 소리 ’종묘제례악‘과 정악곡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영산회상의 또 다른 변신인‘가즌회상‘ 완주무대를 마련한다.

예악(禮樂)의 극치 속에 담긴 역동적 음악미의 세계 -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제례악이 무엇이기에‘중요무형문화재’로 또‘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지정되었는가? 종묘제례악은 말 그 대로 종묘(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는 왕실의 사당)에 올리는 제사음악이다.

그러나 예사 제사음악이 아니다. 600년 가까이 살아 숨쉬며 오늘로 달려온 역사적인 음악이고, 또 미래를 달려 갈 소중한 음악이다. 무엇보다도 조선왕조 500년의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귀중한 우리 궁중음악의 하나이다. 동시에 고려음악의 흔적과 세종대왕의 창작정신, 그리고 그의 아들 세조로 이어지는 자주적 음악정신이 가득 담긴 전통적인 제례음악인 것이다.

동짓날이나 설날에 문무백관이 왕께 배례(拜禮)한 후 베푸는 궁중의 회례연(會禮宴)을 위한 음악으로 세종에 의해서 15세기 전반에 작곡된 이 음악은 그의 아들 세조에 의해서 손질(편곡)되어, 세조 10년(1465)년 종묘제례를 위한 음악으로 채택되어 연주되어 왔다.

정적(靜的) 음악미를 담고 있는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중국계의 아악(雅樂)으로, 공자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과는 달리 종묘제례악은 그 역동적 음악미를 생명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 역동적 음악미의 종묘제례악은 제례악의 세계를 뛰어넘어 극장음악으로도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음악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 매년 5월초에 열리는 종묘제례 때는 종묘제례악의 전부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의 상황에 따라 음악을 축소하여 연주하고 있는데 이번 연주에서는 종묘제례악 전 바탕을 빠짐없이 제례순서에 따라 연주할 예정이어서 아주 특별한 기회이다.

종묘제례악의 음악적 전승을 담당하던 국립국악원이 그동안 일부만 연주해 오던 것을 이번 연주에선 처음으로 종묘제례의 절차에 따라 확대된 제례음악을 연주하여 완성도 높은 음악을 계승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이 음악이 우리만의 음악이 아닌 세계 속의 음악유산으로써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이를 처음으로 전곡 녹음 및 출반작업을 하게 되어 우리 후손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물려주게 될 것이다.

영산회상(靈山會相)의 또 다른 변신 _ 가진회상

종묘제례악과 더불어 연주되는 또 하나의 음악이 있다. 그것은 “가진회상”인데 이 음악은 영산회상이 변신한 모습이다. 영산회상은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회(靈山會: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였던 모임. 주로 법화경을 가르쳤다)의 불보살(佛菩薩:부처와 보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노래한 악곡이다.

영산회상은 여러 가지로 연주된다. 즉 우리 선조 음악인들은 원래의 영산회상을 변주해 평조회상과 관악영산회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영산회상에 다른 곡을 곁들여 연주하는 관습을 만들어 이를 후세에 전해주었다. 이렇게 연주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보통 이를 별곡(別曲), 혹은 정상지곡(呈祥之曲)이라고 한다. 가진회상은 이 중 하나이다.

물론 가진회상의 주 음악은 영산회상이다. 여기에 도드리와 천년만세(千年萬歲)로 불리는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를 곁들여 연주한다.

각 악기가 하나로 편성되어 조용한 세악(細樂:취타(吹打)가 아닌 장구, 북, 피리, 저, 깡깡이 따위로 구성한 군악)으로 연주되는 이 가진회상은 특이한 음악적 세계와 맛을 창출한다. 즉 대부분이 불교적 세계를 그 사상적 배경으로 한 영산회상에 도교적 배경의 보허자(步虛子)에서 파생된 도드리계통의 음악을 곁들여 타는 음악이다.

위와 같은 음악적 변신으로 인해 가진회상은 처음의 명상적 고요함이 엄숙함으로, 경쾌함으로, 우아함으로, 짧은 격렬함을 거쳐 다시 우아함으로 무쌍하게 바뀌어가는 맛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음악이 되었다.

새봄과 함께 우리의 전통음악을 맛보는 기회

멀리 남녘에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금둔사의 경내에는 홍매화가 비를 맞아 물을 머금은 상태로 아름다움을 뽑내고 있다. 이렇게 봄은 어느새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이 새봄에 흔치 않는 전통음악 연주를 접해보면 어떨까? 그것도 특별하게 전곡 연주라는 좋은 기회를 갖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걸작’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과 함께 봄을 호흡해보는 특별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연주회는 2003년 3월 20일(목)-3월21일(금) 19:30인데, 3/20(목)은 종묘제례악(보태평/38분, 정대업/29분), 3/21(금)은 가즌회상 완주공연(75분)을 한다. 장소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이며, 정악단 80명이 출연하는 대규모이다. 공연문의는 국립국악원 장악과(580-3300, 3042)로 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 www.ncktp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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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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