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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역사는 반복된다’는 일반 명제 하에 사람들이 역사의 교훈이 주는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에 주목해 본다. 사람들은 말한다. 역사의 교훈에서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어떤 이는 역사의 사실을 연구하고 현상을 분석하며 그 해답을 찾으려 하고, 어떤 이는 역사의 반복성의 법칙과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삶이 지혜를 타자보다 먼저 터득해 자신의 입신을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반면 지나온 삶의 흔적에 대해 묵묵히 현시대의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할지를 제시하는 이들이 있다.

“봐라 여기 당신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온 시대가 여기 있다. 당신이 뭐라고 판단하든 자유이나 여기 그네들이 걸어온 길이,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있다” 라며 외치듯 말하는 이 사람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지나온 삶의 여정을 역사의 사실과 함께 기록하려 매진한다. 이 사람들의 무리 중에 조정래가 들어가 있다.

<한강>의 조정래는 그렇게 말한다. 강요도 아니요, 주장도 아니요 마치 거대한 산이 뒷짐을 지고 멀찌감치 바라보듯 인간이라는 무리들의 움직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가 함께 살아온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상에 대해 어쩌면 그는 그가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주변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싶은 충동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한강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 소설이라는 픽션(fiction)의 정의가 일반화되어 있는 반면, 한강 속의 긴 삶의 연속극은 6.25 이후의 한국이라는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허구와 사실의 혼동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일제 해방이후의 한반도가 타의에 의해 두 동강이 나버린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6.25라는 민족적 과오가 현재까지 지속되게 남기고 있는 아픔을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이제 아픔이라는 것이 그 당시의 피난민들과 이북출신 사람들, 반세기만에 쭈글쭈글한 얼굴로 이산가족 상봉할 때 TV에 비춰진 다 늙어버리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만의 아픔으로 변해버린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의 무관심 속에서도 소설 한강을 접하게 되면 그러한 현시대의 우리들 모습이 과연‘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를 되짚어 보게 하는 매력을 유감없이 맛보게 된다.

한강을 처음 넘기기 시작할 때 우리의 눈앞에는 이제 갓 서울로 상경한 형제를 보게 된다.

유일표로 대표되는 풋내기 소년과 대학이라는 보다 큰 강을 향해 올라온 그의 형 유일민. 우리는 여기서 이 형제들이 걸어가야 할 세상이라는 것을 함께 무임승차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형제가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결국은 그들을 옥죄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다름 아닌 역사적 아픔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해방이후 두 동강 나버린 이 한반도가 어떠한 길로 극한 대립을 달려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레드 콤플렉스'가 이 사회를 얼마나 단순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삶의 의식구조마저 변화시킨 한국 현대사의 폐허를 형제의 삶을 통해 우리는 접할 수 있다. 그 둘의 삶을 보며 때로는 시간이 지난 현시대의 관점에서 어이없음을 느끼기도 한다. 나아가 상식이, 상식이 아닌 사회의 구조 속에서 그것이 올바른 삶의 진리인양 믿고 살아갔던 또한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읽는 이로 하여금 씁쓸한 우리 민족의 지난 자화상을 보게 만들었다.

50여 년이 지난 한국 현대사의 틀 속에서 연좌제와 국가 보안법을 비롯한 수많은 폐악 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젓이 시행되던 나라, 또 시행되고 있는 나라. 두 분단된 체제하에서 분단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교묘히 지배 이데올로기로만 사용한 두 체제의 모순된 비열함은 어쩌면 현재도 계속되는 진행형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강하게 들게 한다.

한강은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등장을 한다. 하지만 내게 매력을 느끼게 한 가장 큰 하나의 틀은 바로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낳은 아픔이 이 한강에 고스란히 베여있기 때문이다. 분단에서 시작된 한국 현대사는 결국엔 뒤틀릴 수밖에 없으며 분단된 상황에서 살아나가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치열한 몸부림은 어쩌면 이미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일민과 유일표로 대표되는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피해 당사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에게 덮어진 운명의 틀을 바꿔보려 애쓰는 것은 당연하다. 아울러 분단의 전쟁이후 완전히 초토화된 황폐한 조국에서 먹고살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들은 하나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개인의 감성을 채우게 되며 이는 곧 한강 속의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개성으로 한국 현대사를 표현했다고 하겠다.

인간군상으로 밉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의 삶이 그 안에 있으며 또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삶이 진행되고 있음을 우린 한강을 통해 또 한강 밖의 현 시대를 비춰보며 알 수 있다.

한강은 철저히 보여주기 관점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연좌제에 묶여 레드 콤플렉스에 묶여 자신의 생의 전부가 뒤틀려져 버리는 형제의 삶의 진행에서 그것을 보고 판단하는 몫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그러한 작가의 태도가 마음에 와 닿는다. 선인도 없고 악인도 없을 것이라는…. 결국은 거대한 반쪽국가 시스템이라는 구조하에서 모두가 피해자들로 살 수 밖에 없었던 60-70년대의 우리네 인생살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의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몫은 우리들의 몫으로 넘겨버린다. 현재 진행형인 한강 안의 삶과 밖의 삶에서 '너희들이 직접 판단하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 하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이 돌을 맞고 있을 때 자신에게 죄가 없는 이들은 나와 돌을 던지라 말씀하시던 구절을 떠올리게 되는 건 한강 속에서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책을 덮게 되는 순간이다. 나 자신이 한강 속에서 살아간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보면서 때로는 냉소를 때로는 안타까운 연민을 느끼지만, 결국 책장을 덮을 때 '과연 나는 이 소설 속의 누구에게 돌팔매를 던질 수 있는가' 라는 반문을 끊이지 안고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돈스럽다.

오로지 자신의 입신을 위해 비열함을 서슴치 않는 국회의원 강기수. 때로는 유치하기 짝이없는 이름자를 바꿔가면서 자신들의 프라이드를 내보이고자 한 강숙자와 그의 친구들. 이후 이 세 여인이 걷게 되는 현실에 맞춰 변해 가는 모습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고민하는 핍박받은 땅의 아들들인 이규백과 김선오. 이규백은 욕심의 덧없음 깨닫고 그래도 보다 나은 지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반면 끝까지 자신의 이상과 욕심을 위해 달려가기만 하는 김선오의 삶.

진정한 독립군 출신으로 결국엔 친일세력에게 배제당하고 나아가 찬밥신세가 되어버리는 역사의 산증인을 소화한 전직 국회의원. 연좌제에 묶여 이후 삶의 방향을 체념하고 나아가는 유일민의 순응적 자세와 유일표의 삶. 빼놓을 수 없는 천두만과 서동철 주변인물들이 그려낸 민초들의 삶의 힘겨움. 4.19의 초심으로 대표되는 원병균과 그의 친구들이 이후 가는 극과 극의 삶의 다른 방향적 모습들. 그 밖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걸어간 반쪽 반공 공화국, 잘 살아보세 공화국 속에서의 발자취들.

이상이 열거하기에는 벅찬 적나라한 그리고 너무나 사실적인 우리 한국 현대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이 걸어간 삶. 또는 지금에도 어디선가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는 또 다른 한강 속의 개인들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가. 작가 조정래는 이러한 물음을 우리가 갖기 원했는지도 모른다. 제시되어 있지 않는 방향을 찾는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지난날의 삶의 여정을 보여주고 "자 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다 보았느냐. 이제 너 자신이 걸어가라!" 라고 작가 조정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속도 만능주의 살고. 서울대 공화국에 찌들어 있으며. 대박 인생을 꿈꿀 수밖에 없는 민초의 삶과 그 삶을 어우르지 않고 교묘히 민초의 심리를 이용하고 있는 반공이라는 표기만 없어진 반쪽 국가 시스템. 분명히 잘못된 것임에도 잘못이라는 것을 외치는 이가 왕따 당하는 사회구조. 한쪽에서는 굶어죽고 있는데 쌀이 남아돌아도 개 사료로는 만들지언정 그쪽에는 절대 줄 수 없다는 반공의 산 증인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능력이 돈으로만 판가름나는 환금만능주의 노다지 사회. 자국의 자립도 지키지 못해 분단을 넘어 형제간의 살육을 벌여놓고도 그렇게 만든 당사자들에게 넙죽 고개 숙인 반공 표기만 없어진 반쪽 공화국….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위의 현상 속에서 과연 한강은 소설 속에서만 끝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한강의 삶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물음이며 분단의 전쟁이후 원점에서 시작된 민초들의 살고자 한 처철함이 남긴 공유된 정서에 대한 호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때문에 한강이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반문은 함부로 내뱉을 성질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과제로 남는다 하겠다. 그리고 끊이 없이 나를 그 '이유'에 빠트린다. 또한 그 이유에 빠져 있을 때 잊지 말아야 할 내 소망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정(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이다.

끝으로 분단이라는 아픔이 또다시 한반도에 먹구름을 짙게 몰고 오는 현시점에서 한반도를 뒤돌아 볼 수 있게 해준 조정래의 한반도 삶에 대한 한국현대사의 고민과 문학으로의 승화에 박수를 보낸다.

한강 - 전10권 세트 - 반양장본

조정래 지음, 해냄(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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