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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은 행복했다... 전기철의 <도시락>

▲ 전기철의 <도시락>
ⓒ 현재
시인이자 평론가인 전기철(49)이 남도의 끝자락에서 보낸 가난한 유년을 떠올리며 <도시락>(현재)을 펴냈다.

소설과 수필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글쓰기를 통해 전기철은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과 꿈은 자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꽁보리밥과 짠지뿐인 도시락을 먹고도 더 큰 세상을 향해 꿈을 키우며 무럭무럭 자란다.

밥이 곧 생존의 문제이던 1960년대를 지나온 전기철에게 도시락은 따뜻함과 소박한 풍요로움에 다름 아니다. 어쩌다 학교가 일찍 파하는 날이면 삼삼오오 뒷동산에 올라 나눠먹던 그 시절 도시락은 오늘날 그 어떤 산해진미에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 아니었을까. 동시에 그 도시락은 콧물 훌쩍이던 가난한 시골아이 전기철을 시인으로 만든 힘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집 뒤주에서 퍼낸 쌀을 찐빵으로 바꿔먹고, 그래도 돈이 남으면 어른들의 눈을 피해 도둑영화를 보러 다니던 전기철의 유년. 누가 그의 어린 시절을 컴퓨터 게임과 패스트푸드 속에서 사는 요새 아이들보다 불행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추억과 낭만이란 가난을 양분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책을 접한 소설가 송기원은 "내게도 도시락은 따뜻함에 다름 아니었다"며 "편편마다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는 말로 <도시락>을 추켜세웠다.

김순덕이 바라본 미국... <마녀가 더 섹시하다>

▲ 김순덕의 <마녀가 더 섹시하다>
ⓒ 굿인포메이션
"내가 알고있는 미국의 모습은 과연 진실일까?"

2001년 7월부터 1년간 동아닷컴에 연재되면서 수많은 네티즌들을 웃기고 울린 '김순덕의 뉴욕일기'가 책으로 묶였다. 이름하여 <마녀가 더 섹시하다>(굿인포메이션).

'열두살짜리 테러리스트', '조기유학 언제 보내야 좋을까', '평등의 신화를 깨라' 등의 소제목으로 묶인 글들은 저자가 뉴욕주립대학교 방문연구원으로 있던 2001년과 2002년 사이에 쓴 것들이다. 김순덕은 이번 책을 통해 평등과 자유, 인권과 복지의 천국으로 이해되고 있는 미국의 숨겨진 이면을 거침없는 필치로 해부하고 있다.

김순덕은 "소수의 백인들만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에서 흑인이나 히스패닉의 평등과 자유란 허위의 개념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국가 실질수입의 47%를 최상위층 1%가 독차지하는 미국에서 행복한 노동자란 허위의 개념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가 관심을 가지는 '미국 조기유학'에 대해서도 김순덕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좋은 프리스쿨에, 좋은 스포츠센터에, 좋은 피아노선생을 찾아"다니고, "학군이 어디냐에 따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 값이 2배나 차이나는" 미국의 실상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지난 3월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개시되면서 전세계는 반미열풍에 휩싸였다. 비판을 위해서는 비판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법. <마녀가 더 섹시하다>는 정치적 문제가 아닌, 미국의 사회·문화적 병폐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세밀한 망원경의 역할을 해줄 듯하다.

독특하게도 취미를 '도발(挑發)'이라고 말하는 저자 김순덕은 1983년 기자 일을 시작해 생활부, 문화부, 기획 특집부를 두루 거쳤다. 현재 동아일보 논설위원.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제목 <마녀가 더 섹시하다>는 "착한 여자만을 요구하는 세상에 대한 항변"이라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 세상이 요구하는 '여자'가 아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인간'으로 살아온 저자와 썩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나이키'와 '갤러그' 시대로의 회귀... 박현욱의 소설 <새는>

▲ 박현욱의 <새는>
ⓒ 문학동네
2001년 <동정 없는 세상>으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현욱(37)이 두 번째 소설집을 냈다.

'나이키' 운동화와 전자오락 '갤러그'로 상징되는 1980년대.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고교생들의 소소한 일상을 맛깔 나는 문체로 버무린 <새는>(문학동네).

전작부터 이번 책까지 박현욱의 소설을 관통하는 힘은 '재미'다. 일단 펴들면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박현욱의 입담은 자연스레 김유정의 능청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그가 <새는>을 통해 복원해낸 80년대 청춘사(靑春史)는 자주 배꼽을 잡게 만들고, 가끔 가슴을 찡하게 한다. 나처럼 30대 중반의 독자라면 "그래, 나도 이랬지"라며 스스로 무릎을 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은호는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고, 게다가 편모 슬하에 집까지 가난하다. 그 별 볼일 없던 은호가 '첫눈에 반한 사랑' 은서 때문에 클래식기타를 배우고, 독서토론회 참석을 위해 카프카 <성>과 카뮈 <이방인>을 읽고, <정석수학>과 <성문기본영어>에 매달리는 모습은 '사랑'이 왜 위대한가를 구구한 설명 없이도 고개 끄덕이게 한다.

은호와 은수의 사랑을 축으로 양념처럼 섞여드는 여러 사건들. 여배우 소피 마르소와 피비 케이츠의 코팅사진을 보물처럼 들고 다니고, 영국밴드 '듀란듀란'의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의 근사한 금발을 부러워하며,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또래의 여학생을 꼬시고, 다락방에 숨어 도둑담배를 피우는 소설 속 인물들은 왜 그렇게 우리가 지나온 고교시절과 닮았는지.

지고지순(?)했던 은호의 첫사랑은 결국 은수의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로 허망하게 끝난다. 하지만, 사랑이 끝났다고 세상도 끝이 날까?

천만에. 책의 제목으로 차용한 송창식의 노래 <새는>의 가사를 보라. '새는 노래하는 이유도 모르면서 노래'한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을 모르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그리워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알지도 못하는 걸 잃었다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느 날 문득 '내게도 청춘이 남아있을까'라는 생각에 심란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치료제가 돼줄 것이다.

새는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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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마녀가 더 섹시하다

김순덕 지음, 굿인포메이션(2003)


도시락 - 가난한 우리동네 이야기

전기철 지음, 유도공 그림, 현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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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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