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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정치 수배자 박상현씨는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공개 결혼식 참가 행진'을 벌였다. 사진은 12일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려오는 박상현씨와 경희대 학생들.
한총련 정치 수배자 박상현씨는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공개 결혼식 참가 행진'을 벌였다. 사진은 12일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려오는 박상현씨와 경희대 학생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엄마!"

"아이구, 어떻게 왔어…"


주르륵, 굵은 눈물줄기가 어머니의 진달래빛 한복 저고리 위로 떨어진다. 곱게 화장한 어머니의 얼굴은 금세 눈물로 뒤범벅이 된다. 갑작스레 마주한 아들, 어머니는 그 아들의 손을 감싸안고 놓을 줄을 모른다.

"별일 없이 잘 왔어? 친구들이랑 같이 왔니? 몸은 괜찮지?"

무사한 지, 잘못된 데는 없는지 어머니는 아들의 안부부터 살핀다.

"항상 옆에 있어도 보고 싶죠. 그거 말해야 뭣하겠어요."

어머니는 아들을 그저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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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천용자씨는 아들 박상현씨를 보자 마자 와락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천용자씨는 아들 박상현씨를 보자 마자 와락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천용자(51)·박상현(23·경희대 관광학부 휴학)씨 모자는 '정치 수배자 가족'이다. 박씨가 지난 2001년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이들 모자는 '이산가족'이 됐다. 이적단체로 낙인찍힌 한총련의 대의원이 됐다는 이유로 박씨가 국가보안법 상 수배자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로 박씨는 집이 아닌 학내 수배학생들의 숙소인 '생활방'에서 3년을 내리 머물고 있다.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이다. 그러던 박씨가 이날(12일)엔 학교 밖을 당당히 나섰다. 친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갈 수 있을까.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면서 혼자서 고민 많이 했죠. 그런데 주위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형 결혼식인데 가야하지 않겠느냐. 우리랑 같이 가자'고 용기를 줬어요."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한총련 수배학생들에게는 남 모르는 고민이 하나씩 늘어간다. 박씨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전쯤 학교로 직접 찾아온 어머니에게서 형의 결혼 소식을 들었지만 고민이 앞섰다. 수배자의 몸으로 형의 웨딩마치를 직접 볼 수 있을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제게는 하나 뿐인 형이 결혼을 하니 각별한 날이죠. 더군다나 아버지가 안 계셔서 가족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빈자리를 만들면 안되잖아요. 우리 집의 새 식구가 된 형수 얼굴도 꼭 보고 싶었고요."

고민 끝에 그는 아예 공개 참석을 선택했다. 결혼식 참석 전에는 학내에서 간단한 기자회견도 갖기로 했다. 이 자리를 통해 현재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학우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결혼식장에서의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같은 과 선·후배를 비롯 100여명의 학생들이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한 친구는 결혼식장에 입고 갈 양복을 내줬다. 총학생회에서는 이날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결혼식장까지 학생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협조했다.

유난이라면 유난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유난스런 공개참석을 선택한 이유도 있다.

"내 양심을 지킨 죄로 수배자가 됐고 이는 비단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는 이어 "우리와 같은 수배학생이 176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이 땅의 진보와 민주주의의 수준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예"라면서 "이를 공론화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인권 변호사였던 대통령 믿어 봐야죠"
수배자 어머니의 눈물

▲ 천용자씨.
ⓒ오마이뉴스 김지은
박상현씨가 수배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마음을 졸이며 사는 사람은 어머니 천용자(51)씨다. 12일 아들을 마주한 천씨는 "항상 곁에 놔둬도 또 보고 싶은 게 자식인데 그 마음 말해 무엇하겠느냐"며 눈물을 쏟았다.

천씨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상현씨의 건강. 고등학교 재학 시절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터라 학교 생활방의 잠자리가 늘 마음에 걸린다며 애를 태웠다.

"겨울되면 춥지나 않을까 걱정이고, 명절이 되면 얘가 학교에서 혼자 어찌 보낼까 속상하고, 이렇게 경사스런 날도 제대로 얼굴조차 볼 수 없으니 가슴 졸이고… 엄마 마음 다 똑같지요."

하지만 수배생활을 하는 아들을 부끄럽게 여겨본 적은 없다. 천씨는 "처음 상현이가 수배생활 시작했던 때는 주위에 제대로 말도 못하고 속을 끓였지만 요즘엔 상현이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아니 친지들에게도 떳떳하게 말한다"며 "대통령께서도 인권 변호사였으니 상현이 같은 억울한 학생들 처지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 김지은 기자
이는 그가 수배생활을 하면서도 끝내 자수할 수 없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지킨 일이 결코 '범죄'가 아니라는 믿음에서다.

이 때문에 최근 강금실 법무장관의 '자수하면 불구속 수사를 하겠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불구속'이라면 결국 한총련 수배자들의 죄를 인정한다는 얘긴데 우리는 범죄인이 아닙니다. 불구속이 아니라 '불기소'가 돼야 해요."

하지만 그는 새 정부에 거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더구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한총련 수배 문제의 시급한 해결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후 그를 비롯한 수배 학생들은 언론 보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대통령도 한총련 문제에 대해 많이 인식을 하고 계시다는 얘기니까요. 보수적인 사람들의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의 개혁 마인드를 끝까지 지켰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곧 한총련도 합법화되겠죠. 한총련 이적규정은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느냐의 문제이니까요."

"수배해제 되면 어머니 곁 떠나고 싶지 않다"
30분만에 돌아서야 했던 가족과의 재회


한총련 정치수배자로 3년째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박상현씨.
한총련 정치수배자로 3년째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박상현씨. ⓒ 오마이뉴스 김지은
한편 12일 오후 2시, 박씨는 그를 따라나선 선·후배 100명과 함께 "경희대 정치수배자 박상현, 친형 결혼식 공개참가"라고 적힌 펼침막을 든 채 학교를 나섰다. 이후 전세버스에 몸을 실은 지 약 1시간 뒤, 그는 형의 결혼식이 열리는 경기도 고양시 내의 한 웨딩홀에 도착했다.

박상현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결혼식장에 들어섰다. 결혼식은 이미 시작돼 있었다. 식장으로 들어선 그는 어머니의 얼굴부터 찾았다.

"엄마!"

맨 앞자리로 나아간 그가 슬쩍 어머니를 불렀다. 박씨의 얼굴을 확인한 어머니는 그를 와락 끌어 안았다. 웨딩마치를 하던 중 박씨의 얼굴을 확인한 형 박주현(28)씨도 이내 미소를 지었다.

상현씨를 발견한 친지들도 반가움을 표했다. 하지만 친지들도 안부 걱정이 앞선다.

상현씨를 3년만에 본다는 이모 천용혜(42)씨는 박씨를 보자마자 다가와 손부터 잡았다. 천씨는 "아니 얼마나 착하고 반듯한 앤데, 이 멀쩡한 애를 나라가 수배자로 만드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천씨는 "곧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며 박씨를 다독였다.

박씨를 보자 마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안부를 묻는 숙모 문미영(43)씨도 "내 마음도 이런 데 어머니 마음은 어떻겠느냐"며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건강하기만 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날 형의 결혼식 후 박씨는 무사히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형과 형수에게도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박씨가 결혼식장에 머문 시간은 단 30분.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수배생활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날 박씨는 결혼식에 참석, 무사히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채 30분이 안돼 자리를 떠야 했다.
이날 박씨는 결혼식에 참석, 무사히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채 30분이 안돼 자리를 떠야 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그는 친지들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넙죽 절했다. 돌아서는 그를 잡아 어머니는 언제 준비했는지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 넣었다.

"마음 아프지만 보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어머니는 다시 눈물 바람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식장을 나선 박씨의 마음도 좋지만은 않다.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기 전 박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엔 정말 잠깐 얼굴만이라도 보면 좋겠다는 바람 뿐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와 보니 마음이 그렇지가 않네요. 오랜만에 어머니랑 밥도 먹고 싶고 친지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싶구요. 어느새 훌쩍 커 버린 사촌 동생들이랑 오래 얘기도 하고 싶네요."

못내 아쉬운 기색이다. 그런 그에게 "수배가 해제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3일동안 꼼짝도 않고 집에만 있을 거예요. 어머니 청소도 도와드리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구요. 어머니랑 같이 텔레비전도 보고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내내 붙어 있고 싶어요."

일반인들에게는 '일상'일 뿐인 '간절한 소망'을 안고 그는 다시 '창살없는 감옥' 속으로 걸어 들어 갔다.

"안타까운 사정에 '경호' 나섰다… 부당한 수배생활 어서 끝나야"
100여명 인원 함께 이동한 '공개 결혼식 참석 행사'

▲ 박상현씨가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까지.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날 박상현씨가 형의 결혼식장에 들어서기까지 약 3시간 동안 100여명의 학생들이 전세버스 두 대에 몸을 나눠 싣고 함께 움직였다. 박씨의 사정을 알게된 선·후배들이 '혼자서는 보낼 수 없다'며 '경호'를 자처하고 나선 것.

이날 박씨와 함께 학교를 나선 윤정원(19·관광학부 1년)씨는 "선배 얘기를 듣고 무척 안타까워 어떻게 해서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기꺼이 나섰다"며 "무엇보다 한총련이 합법화 돼 수배가 해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민숙(22·외식산업학과 3년)씨도 "이렇게 돕게 돼 기분이 좋다"며 "우리의 동행이 힘든 수배생활을 하는 당사자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주고 그의 어머니께는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위안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평소 박씨를 곁에서 지켜봐 왔던 학생들은 "안타깝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이날 결혼식장까지 동행했던 오동주(외식산업학과 4년)씨는 "상현이는 허리 디스크(요추후방전위증)까지 앓고 있어 더 안타깝다"며 "학교에서도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할 때가 많아 보기에 안쓰럽고 무엇보다 수배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오씨의 곁에 있던 양승훈(외식산업학과 4년)씨도 "항상 학교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고 학교 안에만 있어야 하는 걸 볼 때마다 답답하다"며 "그래도 올해는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경희대 총학생회에서는 이날 박상현씨의 결혼식 공개 참석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대식(26·조리과학과 4년) 총학생회장은 "한달 전 박상현씨로부터 사정 얘기를 듣고 '공개 참가 행사'를 추진했다"며 "이 기회를 통해 한총련 합법화 문제와 한총련 수배 문제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조건없는 정치수배 해제가 당장 이뤄져야 한다"며 "신체의 자유를 거부하고 양심의 자유를 선택한 정치수배자들에게 새로운 봄을 안겨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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