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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식 주례를 하게 될 때마다 오래 전에 작고하신 선배 한 분의 일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문학평론가이고 대학교수이셨던 그 분은 40대 초반 시절부터 결혼식 주례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주로 고교와 대학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였는데, 한번은 부인이 나이도 많지 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주례 서기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정색을 하고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나 같은 진국이 결혼식 주례를 서야 허는 겨. 내가 외도를 허나, 노름을 허나, 마누라헌티 술 주정 한 번을 헌 적이 있나. 나 같은 사람이 주례를 서야 결혼을 허는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겨."

좀 우스운 말이긴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상기할 때마다 절로 엄숙해지는 자신을 느끼곤 합니다. 그 선배의 멋진 성품과 삶의 속내를 잘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되새기곤 합니다. 그 선배가 주례를 한 많은 결혼식의 당사자들이 그분의 소망과 확신대로 한결같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나도 결혼식 주례 경험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직 많지는 않고 손가락 꼽을 정도에 불과하지만, 결혼식 주례를 맡을 때마다 그 선배의 일화를 떠올리곤 하는 것은, 나도 그 선배처럼 '진국'이고자 하는 마음, 진국인 나의 주례로 말미암아 신랑 신부가 복을 받고 일생 동안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때문일 듯도 싶습니다.

나의 결혼식 주례 첫 번째와 두 번째 경험은 1995년 서산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와 두 번째 주례는 한 날 한 장소에서 연속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물론 나로서는 그 연속 주례가 전혀 뜻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은 일이었지요.

첫 번째 주례를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닌 이웃 동네에서 한다는 것이 뭔가 좀 아쉽고 서운해지는 마음을 안고 그 날 일찌감치 서산의 예식장엘 갔지요. 내 평생의 첫 주례라 긴장감도 컸고, 내 나름대로 의미를 키우기 위해서 적잖이 고심하며 주례사 준비를 열심히 해 가지고 갔던 거지요.

그런데 내가 주례를 할 결혼식의 바로 앞에 예정되어 있는 결혼식이 정해진 시간을 넘기고도 자꾸만 지연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바로 앞 결혼식의 주례 모습을 살펴보면서 '공부'를 좀 할 요량으로 일찍 갔던 것인데, 내 기대와는 딴판으로 주례할 분이 오지를 않아 그런 지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황은 지연으로 그치지 않고 아주 엉뚱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식이 계속 지연되자 다급해진 예식장 주인이 내게로 와서 주례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주례 경험이 없는 내 사정을 말하며 고개를 저었지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잘 아는 사이이기도 한 예식장 주인의 다급한 부탁을 끝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 결혼식 시간이 코앞에 닥쳤으니 주례사를 짧게 해달라는 부탁까지 받고 나는 결국 전혀 예정에 없던 주례로 나의 첫 주례를 장식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예정에 없던 주례를 하자니, 내 최초의 주례를 이상하게 빼앗긴 형국이 되어버린 주례 예정 결혼식의 신랑 신부에게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도 크더군요. 그들을 위해 애써 준비했던 주례사의 일부를 다른 신랑 신부에게 먼저 들려주는 것도 미안하고….

며칠 후 그 결혼식의 주례 약속을 펑크낸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지요. 지역사회의 유명 인사이신 분인데, 내게 미안함을 표하면서 자신이 그 날 예식장을 잘못 알고 다른 예식장으로 간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옛날처럼 주례를 '모시지' 않고 그저 '세우는' 시절이라 주례가 스스로 예식장을 찾아가야 하니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 절로 웃음이 나오더군요.

이렇게 결혼식의 첫 주례와 두 번째 주례는 연속으로 이웃 동네인 서산에서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계속 우리 동네에서 주례를 하는 것을 나는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내게 주례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나는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대개는 국회의원이나 군수를 비롯하여 사회적 직함이 덩두렷한 사람들에게, 더러는 은사 관계 등 인연을 고려하여 주례를 부탁하기 마련인데, 사회적 직함이라곤 고장의 문학회장이라는 것밖에는 없는 가난한 소설가에게 와서 주례를 부탁하니, 정말 고맙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이번에도 그런 고마운 마음을 안고, 결혼식 날이 '예수부활대축일'임에도 쾌히 주례를 하기로 응낙을 했지요. 예수부활대축일은 그리스도교의 존재 근거가 되는 날로, 나 같은 천주교 신자에게는 일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지요. 더욱이 나는 성가대 봉사를 하는 처지이고, 또 부활대축일 교중미사 중에 거행되는 세례식에서 지난해 여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고 있는 당질 며느리가 두 어린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는 날이고, 내가 다른 두 아이(형제)의 대부도 서게 된 관계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결혼식 주례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주례를 맡게 되면 매번 신랑 신부에게 부탁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자신의 반려에게 주고 싶은 말이나 양가의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을 간단히 적은 글을 달라는 것이지요. 결혼식을 거행하는 그 중요하고도 거룩한 자리에서 주례가 그 글을 읽는다면, 결혼식이 한결 빛이 나리라는 생각 때문에 하는 일이랍니다. 주례가 자기 말만 길게 하는 것보다는 신랑 신부의 마음을 적은 아름다운 글을 또박또박 듣기 좋게 읽어준다면 결혼식이 좀더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리라는 생각인 거지요.

그런데 주례의 그런 사전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거나 약속 이행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두 번째 주례 때만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신부자리는 글을 쓰지 않고 신랑자리만 글을 썼는데, 그것도 보통 글이 아니라 시 형식의 글이었습니다. 신랑자리는 그것을 두 개나 썼는데, 하나는 자신의 반려에게 주는 것이었고, 하나는 양가의 부모님께 드리는 글이었습니다.

시 낭송에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난 나는(한국의 많은 시인들과 소설가들이 나의 시 낭송 실력을 잘 알고 있지요) 신랑자리가 적어온 두 개의 시 형식의 글이 내용도 좋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낭독을 잘하여 그 결혼식의 분위기를 한결 좋게 만들었던 것을 지금도 즐겁게 기억합니다.

나는 이번에도 우리 집을 찾아온 신랑자리에게 글 부탁을 했지요. 잔뜩 기대를 머금고 부탁을 했는데, 그가 순순히 응낙을 해서 내심 기뻤지요. 그런데 그 태도와는 달리 신랑이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결혼식 이틀 전인 금요일 저녁까지 친필로 쓴 글을 가지고 오거나 그게 어려우면 메일로라도 보내 주기로 한 약속이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전화조차도 없어서 여러 가지로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주례를 잘 보기 위해서 (나의 주례로 말미암아 신랑 신부가 평생 동안 복을 받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나름껏 준비를 잘했습니다. 며칠 전에 천주교 신자로서 '판공성사'를 잘 받기 위해 판공 날 아침에 목욕을 한 것처럼 이 날도 목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17년 전 내가 결혼을 할 때 입었던 양복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입었습니다. 결혼식 주례가 아니더라도 이 날은 예수부활대축일이어서 그 옷을 입었을 테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몇 벌의 양복들 중에서 유일한 순모 검정색 양복인 그 옷을 나는 진심으로 아낍니다. 17년 전의 혼인성사 때 처음 입었던 옷을 나는 애지중지하면서 아주 중요한 날이나 행사 때만 꺼내 입습니다. 예수부활대축일과 예수성탄대축일에는 꼭 입으니 일년에 최소한 두 번은 입는 셈입니다. 그 외로는 결혼식 주례를 할 때 입는 거지요. 그밖에 단 한번, 1999년 11월 '충청남도문화상' 수상식 때 입었는데, 그건 우선 계절적으로 부담이 없는 덕이기도 했지요.

내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을 고이 간직하면서 그 옷을 결혼식 주례를 할 때마다 입는다는 것도 조금은 의미가 있을 듯싶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착하고 올바르게 부부의 도리(더 나아가 자식의 도리와 부모의 도리)를 다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주례)의 음덕이 새 부부에게도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거기에는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기도를 했습니다. 아침마다 하는 통상적인 '아침기도' 외에 내가 오늘 주례를 해서 결혼식을 성사시키게 되는 새 부부를 위해서 기도를 했지요. 그들이 비록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내가 믿는 하느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부활성야 장엄미사에 참례했기 때문에 대축일 미사에는 참례하지 않아도 되지만 가족과 함께 교중미사에도 참례를 했지요. 성가대 봉사를 하며, 미사 중간의 세례식을 지켜보며 세례식 자리에서의 대부의 소임을 다하고, 영성체 직전에 성당 안을 빠져나왔지요. 그리고 예식장에 결혼식 예정 시간 5분 전에 도착해서 숨을 돌리고 여유 있게 주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사회자와 예식장 도우미에게 주례가 모자를 쓰는 게 좋은가 벗는 게 좋은가 물으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쓰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내 머리칼의 부실 상태를 염려해서보다도 30년 가까이 모자를 쓰고 살아온 내 '멋(?)'을 헤아려 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습니다. 하객들에게 나의 착모에 관해 양해를 구하고 계속 모자를 쓴 채로 주례를 진행했지요.

그리스도교 성경의 창세기 편에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먼저 흙으로 남자를 빚으시고 그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찌 보면 그 선후(先後)와 방식에 대해 남녀 불평등의 관점을 결부시킬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그 말씀에서 공연히 남녀 차별적인 관점을 부각시키려 드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성경 말씀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이라는 뜻이지요.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 하나에 불과하다는 뜻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는 본디 한 몸이다, 그러므로 동등한 인격체로서 서로 사랑하며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니 참으로 의미 있고 재미있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사람, 또는 결혼과 관련하여 좀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이지요. 한 몸 안에 남성과 여성이 다 있으니 사람은 완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완전한 인간은 방자해진 나머지 신들을 능멸하게 되었지요.

이에 문제를 느낀 제우스신과 여러 신들이 모여서 인간을 징계할 방책을 논의합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을 둘로 나누기로 결정합니다.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 놓아야 인간이 겸손해지고 신을 능멸하지 않으리라는 결론이었지요.

그리하여 신의 벌로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된 인간은 그때부터 원래 한 몸이었던 자기 짝을 찾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원래 한 몸이었던 자기 짝을 제대로 잘 찾은 사람들은 다시 일심동체를 이루며 평생을 행복하게 잘 살고, 원래 한 몸이었던 자기 짝이 아닌 엉뚱한 짝을 잘못 찾은 사람들은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좀더 전진적인 사고(思考)를 유인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짝을 찾고 만나 결혼을 한 사람들은 원래 한 몸이었던 자기 짝을 정확히 잘 찾은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하는 것이고 두 몸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니, 거기에는 장엄한 책임과 의무가 동반하게 마련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할 의무, 서로 감사하고 신뢰하고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지요. 그 의무가 무거운 짐으로만 느껴지거나 또는 가볍게 여겨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세태가 하도 고약하게 변해서 이혼하기 위해 결혼한다는 가설도 존재합니다. 장난처럼 결혼하고 장난처럼 이혼을 하는 풍경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비윤리적인 것이 문명적인 것으로 둔갑을 하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종교적인 심성이 가장 강한 민족이라고 평가받는 우리나라가 '이혼 선진국'으로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국민 다수가 종교를 가진 나라치고는 기현상이 아닐 수 없지요.

결혼은 조물주의 섭리를 확인하고 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사람은 자신의 반려를 통해서도 신의 뜻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반려를 사랑하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며, 자신의 반려와 가정을 사랑하는 것은 뜻 있고 가치 있고 올바른 모든 일의 기본 조건이 됩니다.

나는 이번의 결혼식 주례 때도 주례사를 하면서 위에 적은 사항들을 신랑 신부와 하객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17년 전 결혼식 때 입은 양복을 애지중지하며 결혼식 주례 때마다 꺼내 입는 사실과 그것에 담겨져 있는 내 소망을 이야기했고, 그리스도교 성경과 그리스 신화 속에 있는 인간 창조 또는 결혼 관련 이야기를 소개했고, 간곡한 어조로 신랑 신부에게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고 신뢰하고 존경하며 살기를 당부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의무감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지요.

그리고 결론으로 나는 두 사람이 원래 한 몸이었던 자신의 짝을 정확히 잘 찾은 케이스임을, 그래서 결혼 생활이 평생토록 행복할 것임을, 그들의 행복이 부모 형제들에게 고루 나누어지는 삶을 살 것임을, 또 그들이 원래 한 몸이었던 자기 짝을 정확히 잘 찾은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결혼식 주례를 맡을 때마다 신랑 신부에 대한 기대만큼 모종의 부담감을 갖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하고 만약에 파경이라도 빚게 된다면 참으로 무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일 것 같습니다. 천주교 신앙 안에서 새 영세자의 대부를 비교적 많이 서게 되는데, 신앙 생활을 포기하거나 엄발나는 대자를 볼 때 갖게 되는 자괴감보다도 파경을 보는 안타까움이 더 클 것 같습니다.

내가 결혼식 주례를 맡았던 부부들 중에서는 아직 결혼 생활이 잘못된 사례를 듣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런 소식은 한 번도 듣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도 늘 기도합니다.

내가 모처럼 만에 주례를 맡았던 2003년 4월 20일의 결혼식에서 새 부부가 된 신랑 김신일(태안화력본부 직원)씨와 신부 송정아씨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복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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