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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암봉(609m). 뒤쪽에 무등산이 보인다.
ⓒ 최연종
화순의 진산(鎭山, 지난날 도읍이나 성시(城市) 등의 뒤쪽에 있는 큰 산을 이르던 말-편집자 주)으로서 무등산의 지붕으로 불리는 만연산(668m).

만연산은 무등산에서 뻗어온 능선이 화순읍을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다. 날카로운 바위 봉우리들이 솟아 있어 험해 보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부드러운 능선들이 반긴다. 만연산은 크게 두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낮은 봉우리는 날카로운 암벽이 많아 남성미를 풍기는 반면 정상은 부드러운 여성적인 멋이 배어있다.

▲ 암봉으로 올라가는 철계단.
ⓒ 최연종
흔히 화순읍에서 바라볼때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를 정상으로 잘못 알기 쉬우나 정상은 무등산 방향으로 1km남짓 떨어져 있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609m)는 철계단이 설치될 정도로 가파른 암봉(岩峯)으로서 등산의 묘미도 즐길 수 있는데다 주변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자주 찾는 곳이다.

▲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 최연종
초소가 있는 산마루에서 정상까지는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다. 만연산 정상(668m)에 서면 무등산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안양산 능선을 타고 장불재로 이어지는 백마능선이 바로 지척에 있는 것이다.

▲ 약수터 주변의 등산로.
ⓒ 최연종
만연폭포에서부터 큰재에 이르는 등산로는 산보삼아 오가는 등산객들로 늘 붐빈다. 최근에 만연산을 올랐다면 확 달라진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등산로 곳곳에 가로등이 세워졌는가 하면 단풍나무와 은행나무숲이 생겨 만연산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현재 만연산을 생태공원으로 가꾸는 사업들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큰재∼도깨비 도로 주변에는 산수유, 야생화, 산철쭉 단지가 들어선다. 만연산은 리기다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는데 등산로 주변에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를 심어 봄에는 새싹을 보고 여름이면 녹음을 즐기고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을 볼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 놓았다.

▲ 약수터 주변에 철쭉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 최연종
뿐만 아니라 계곡을 따라 기능성 산책로를 만들고 산책로 중간에 생태보와 나무다리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주변 습지에는 연못을 파고 주변에 꽃무릇 등 야생화를 심어 만연산은 화순의 알프스로 바뀌고 있다. 약수터 주변에는 철쭉이 꽃망울을 터뜨려 등산길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 만연산 서쪽 기슭에 있는 만연사.
ⓒ 최연종
만연산 서쪽 기슭에는 8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만연사가 있다. 만연사는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의 제자 만연선사(萬淵禪師)가 1208년 창건했다고 전해오며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비중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었다. 학당암, 동림암, 침계암, 연혈암 등 4개의 부속암자가 있었으나 6․25때 불타고 말았다. 최근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했다. 산내 암자로 선정암(禪定庵)과 성주암(聖住庵)이 있다. 성주암은 관리가 제대로 안돼 지금은 폐허가 되다시피 방치된 상태.


▲ 다산이 만연산 동림암에 머무른 내용을 적고 있는 독서기비.
ⓒ 최연종
다산 정약용은 부친이 화순 현감을 지낼때 만연사 동림암에 머문 적이 있으며 국창 임방울 선생은 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전한다. 만연 저수지에서 사찰 입구방향으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옛 동림암 자리가 있으며 옆에 다산 선생 독서기비(讀書記碑)가 세워져 있다.

독서기비에는 다산이 17세 되던 해인 1778년 겨울에 형과 함께 암자에서 40일간 머무르며 ‘맹자’를 읽는 등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다산은 스님들이 부모형제 처자들과 지내는 즐거움도 없는데다 술 마시고 미녀들과 노는 재미도 없는데 산속에서 생활한 이유를 몰랐으나 만연산 동림암에 머무르며 스님이 된 이유를 알았다고 말하고 있다.

▲ 보물로 지정된 만연사 괘불.
ⓒ 최연종
만연사에는 부처의 형상을 그려 야외에 걸 수 있도록 만든 괘불이 있다. 이 괘불은 삼베자락에 길이 8m, 너비 6m에 이르는 대작으로 조선 후기 정조 7년(1783) 비현(丕賢) 스님이 제작했다. 임진왜란 이후 나타나는 적록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다 괘불 아래 부분에는 제작연대 등이 기록돼 있어 조선후기 불화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괘불은 지난해 7월 국가지정 보물 제1345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 괘불을 거는 당간지주(괘불대).
ⓒ 최연종
대웅전 앞에는 괘불을 거는 당간지주(괘불대)가 만연사의 내력을 말해주듯 의연하게 서있다. 괘불대의 높이는 175cm로 비교적 큰편이고 괘불을 보관하는 괘불함은 길이만도 674cm나 된다.

▲ 만연사 서쪽 계곡 건너편에 있는 부도밭.
ⓒ 최연종
사찰 입구에 있는 곧게 뻗은 전나무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만연사 창건을 기념해 진각국사가 손수 심었다고 전하지만 8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만연사의 창건연대와 달라 진각국사가 심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만연사 서쪽 계곡 주변에 있는 암자터에도 둘레 3.5m, 수령이 480년이나 된 전나무가 있다. 이 전나무 밑에는 6기의 부도가 있는데 이 곳은 스님들이 열반에 이르면 다비식을 했던 곳으로 안타깝게도 덮개돌이 대부분 훼손됐다.

▲ 만연산 정상에서 바라본 수만리 마을(안양산).
ⓒ 최연종
만연산 산행은 폭포를 지나 큰재를 거쳐 가는 길이 가장 많이 이용된다. 단지 정상을 쉽고 빨리 오르고 싶다면 수만리 4구 흑염소 목장 쪽에서 오르는 코스를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하다. 이외에도 만연사 옆 선정암을 돌아가는 길과 만연저수지에서 성주암쪽으로 가는 코스가 있다.

▲ 성주암 인근에 있는 옛 암자터.
ⓒ 최연종
만연저수지에서 성주암 방향으로 곧장 올라가면 신도들이 공들여 쌓은 돌탑들과 반반한 터에 큰 암벽이 웅크리듯 자태를 뽐내고 있어 산행 길에 들려 볼만한 곳이다. 아마 만연사의 부속 암자가 있었던 자리 인것 같다. 암벽사이에서 흘러드는 샘물은 약수로 이용되는데 물맛이 달착지근하다. 바로 옆으로 등산로가 있지만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발길은 뜸한 편.

▲ 등산로 입구에 있는 만연폭포.
ⓒ 최연종
만연산 등산로 입구에는 만석이와 연순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만연폭포가 있다. 폭포라고 해봐야 사람의 손길을 탄 인공폭포지만 이 폭포수를 맞으면 신경통이 낫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여름이면 물을 맞기 위해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많다.

만연산은 주민들의 편안한 쉼터로 이용되면서 가족단위 산책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새 옷으로 갈아입을 것으로 보여 기대가 되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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